네번째 주제 - 아빠가 아빠에게 (서현석)

by 부산물고기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아빠요”

내가 어렸을 적, 어머니가 나에게 자주 묻는 질문이었다. 장난으로 던진 질문이셨겠지만, 한번씩은 정말로 서운하셨다고 한다. 한번은 어머니께서 목욕시켜주며 “엄마가 좋지?”라고 물었는데 어김없이 “아빠가 더 좋아”라고 대답을 했고, 그럼 목욕하지 말고 나가라는 어머니의 말에 주저없이 물을 뚝뚝 흘리며 밖으로 나가버렸다고 한다. 그날은 참 많이 서운하셨는지 최근까지도 종종 말씀하시곤 한다.

저 날이 기억나는건 아니지만, 그 질문에 ‘아빠’라고 늘 대답했던 기억은 난다. 솔직히 말해서 아버지가 어머니보다 좋았던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늘 저렇게 대답한 것은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군인들이 사는 관사나 아파트, 복지회관 등에서 주로 생활을 했는데, 늘 사람들이 ‘너는 이름이 뭐니?’라고 묻지 않고, ‘너희 아버지가 누구시니?’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정작 아버지를 별로 보지 못했다. 아버지 시대의 직장인들은 누구나 그랬겠지만, 늘 아침일찍 출근하셔서 저녁 늦게 돌아오셨고, 일요일도 교회에 나가셨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는 어린 시절 내게, 사람들은 다 알지만 나는 잘 모르는, 신비한 존재이자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와 함께 축구 연습을 했던 날, 아침 산책을 했던 날이 또렷하게 기억이 나는건, 그런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낫설고 귀한 날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게 있다면, 난 아버지를 정말 존경한다.

어렸을 적 아버지는 나에게 슈퍼맨 같은 존재였다. 무엇이든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힘도 너무 쎈 탈인간급 존재였다. 어렸을 적 누나와 2층침대를 썼는데, 난 일어나면 곧잘 침대 밑으로 들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어느날 평소처럼 침대 바닥에 들어가 놀고 있었는데, 나오려 하자 그새 머리가 커졌는지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었다. 갑작스런 공포감이 엄습해 오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나타나 침대를 들어버렸고, 나는 무사히 나올 수 있었다. 아버지가 슈퍼맨이라고 머리에 각인된 첫번째 사건이었다. 그 다음은 아버지 친구분들과 가족단위로 강가에서 놀고 있던 어느날이었다. 햇살이 너무 좋았기에, 아이들은 수영을 하고 어른들은 약주를 한잔씩 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천막 아래서 낮잠을 주무시고 계셨다. 근데 갑자기 어떤 아저씨가 물에서 어푸어푸 하며 살려달라고 외치셨다. 남자어른들이 다섯쯤은 있었는데, 모두 주저하고 있었다. 와이프분으로 예상되는 분이 “여보옷!!!!!!!!” 이라고 외치며 뛰어 들어가셨고, 이내 똑같이 어푸어푸하며 살려달라고 외치고 계셨다. 애 어른 할것없이 모두가 멈춰 있던 그 상황에서, 갑자기 내뒤에 있는 누군가가 물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낮잠자던 아버지였다. 셋다 어느 한순간 물속으로 사라졌고 놀란 어머니는 아까의 데자뷰처럼 “여보옷!!!!!!!” 하며 물에 뛰어 들으셨다. 그때 아버지가 두분을 업쳐들고 물밖으로 튀어 오르셨고, 뭍에 다다르자 나머지 성인 남성들이 뛰어들어 물에 빠진 부부를 부축해서 나왔다. 아내분은 울며 남편을 혼냈고, 어머니는 조용히 아버지를 뒤로 불러내 혼내셨다. 아버지에게 괜찮냐고 물었을 때 셔츠 가슴팍을 만지작거리시며 “담배가 졎었네”라고 대답해 주셨다. 지구에 소행성이 떨어질 위기에 처해도, 아버지가 우주선을 타고 날아가 부셔버리고 오시고선 인터뷰에서는 공기가 없어 담배를 못태웠다고 말할 것만 같았다. 면접을 준비할 때, 예상 질문으로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많은 이들이 스티븐 잡스나 유재석/강호동의 러더쉽에 대해 분석 후 대답하는게 유행이었는데, 나는 한결같이 아버지라고 준비하고 있었다. 지금 또한 그러하다.

물론 아버지와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고등 시절, 힙합에 빠져 있던 난 옷차림이 아주 헐렁했다. 친척분들이 모여 있던 어느날, 나는 한껏 옷을 넉넉히 입고 쇠떵이들을 몸에 치장 후 집으로 들어오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내 바지를 내려버리셨다. 바지가 엉덩이와 똘똘이에 걸쳐져 내 다리길이가 60센치밖에 안되 보였는데, 사실 다리가 길다는 걸 보여주고 싶으셨나 보다. 아버지의 보수적인 성향이, 조금 다른걸 시도해보고자 하는 나와 아직도 간혹 마찰을 빚고 있다. 근데 치욕으로 분노해 있던 내 마음이 누그러진건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 주말즈음, 아버지가 풋살하는 영상을 우연히 틀어 보게 되었다. 화면속 아버지는 열심히 뛰어다니기는 했으나, 딱 봐도 센스는 없어보였다. 영상속에서 튀는 한 아저씨가 있었는데, 축구를 좋아하는 매우 높은 직급의 아저씨로 보였다. 대충 봐도, 본인이 축구하려고 들러리들로 채워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버지는 다른 분들이 슈팅을 하려 하면 달려들어 저지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분이 슈팅자세를 취하면 뒤로 돌아 엉덩이를 내미셨다. 누나는 그 모습을 보며 깔깔대며 웃었는데, 난 화가 났고 눈물이 주륵 흘렀었다. 나의 히어로가 돈을 벌기 위해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고 계신지, 얼마나 힘들게 살고 계신지 처음으로 본 순간이었다.

나는 아빠가 되면 아버지처럼 되는줄 알았다. 그리고 늙은 아버지는 내가 모시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아버지에게 많은 것들을 의존하며 살고 있다. 경제적 혜택도 결국 아버지가 일구어 놓으신 것들을 받은 것이고, 맞벌이 부부라는 명목으로 준원이를 부모님이 키워주신다. 노년에 돈쓰면서 여유로운 삶을 사셔야 하는데, 자식한테 양도하랴 손자보랴 경제적 시간적으로 빠듯한 삶을 계속 살고 계신다. 못해드린게 많아 죄송스러운데 시간은 야속하게 계속 흘러간다. 벌써 암수술을 두차례나 하셨고, 올해 칠순이 되시면서 더욱 할아버지의 모습이 짙어지고 있다. 감사하면서도 표현하지 못하는게 남자들의 세상이다.

‘아버지, 오래오래만 사세요. 많이 안바라고 준원이 손자까지만 보세요. 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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