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버지에게
언제부터 나는 아빠의 삶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까요?
어린 시절엔 대부분의 아이들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라는 물음에 '엄마' 라고 대답하는 게 싫어서 '난 아빠가 더 좋아' 라고 대답을 했는데, 어쩌면 그때부터 난 아빠가 더 좋은 이유를 찾기 위해서 아빠의 삶을 깊숙이 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노력했던 거 같아요.
가부장적이셨던 할아버지를 긴 세월 모시고 살면서 (저와 형은 물론 좋았지만 ) 할아버지를 모시며 힘들었을 엄마의 마음과 힘듦을 헤아리려 함과 동시에 그 사이에서 꽤나 곤란 하셨을 아빠의 삶도 생각하곤 하였죠. 그때는 사실 아빠의 마음도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기 에도, 또 생각하기에도 힘들었지만 조금씩 어른이 되다 보니 그 마음을 알아가고, 그 가늠할 수 없는 희생과 사랑의 크기에 대해서 더 깊게 생각하게 되었죠.
저는 아직도 아빠랑 함께 남포동에서 삼계탕을 먹던 그 날이 머리 속에 남아있어요. 아빠랑 단둘이 저녁을 먹은 그날이요. 아빠랑 둘이 밥을 먹는게 꽤나 어색 할 꺼라 생각했는데 저는 그 날 저녁이 참 좋았어요. 아빠랑 단둘이 삼계탕을 먹으면서 소주를 먹는데 그냥 그 국물이 엄청 따뜻하게 느껴졌어요. 술을 잘 못하시는 아빠의 빨개진 얼굴도 참 좋았고요. 그래서 그때 전 아빠를 업어 드리고 싶었어요.'아빠 아들이 이렇게 컸어요. 아빠 보다 술도 잘 먹고, 술에 취한 아빠를 업고 집에 들어갈 만큼 말이죠' 라가 말 하면서요. 그리고 아빠에게 든든한 아들이 되고 싶었어요.
아빠의 수연 축하 영상을 만들며, 아빠의 옛 사진을 보며- 아빠가 나의 나이일 땐 어떤 모습으로, 또 어떤 삶을 사셨을까 혼자 상상도 해보았고- 또 제가 커 감에 아빠가 포기해야 했을 수많은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되었죠. 겪어보지 않았기에 그 희생의 크기, 아빠의 젊은 날이 잘 상상이 되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아빠의 사진을 볼 때면 계속 눈물이 나려고 해요. 왜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직도 대학교 3학년 때 아빠의 차 트렁크를 열었을 때가 기억이 나요. 그때 저는 한창 배드민턴에 빠져서 이 라켓, 저 라켓- 이 장비, 저 장비를 살 때였죠. 아빠가 트렁크안에서 뭘 좀 가져다 달라고 하셔서, 트렁크를 열었을 때- 저는 아빠의 테니스가방을 보았죠.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보았던 그 가방을요. 헤지고 낡은 그 가방을 아빠는 20년이 넘는 시간 쓰고 계셨죠. 그리고 여전히 출근을 할 때면 값비싼 가방이 아닌 노트북을 사며 받은 노트북 가방을 들고 지하철을 타셔서 일본어 공부를 하며 출근을 하시는 아빠의 모습을 보며 저는 또 반성하고, 반성을 하게 돼요. 그러고 나서는 손자가 온다고 가구점에서 아기 의자와 책상을 사두시고, 또 장난감을 뭐 살지 고민하시는 아빠의 모습에서 가끔은 아빠가 할아버지가 되 신게 슬프기도 합니다.
제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게 된 후 매달 부산을 갈 때면 부산역 플랫폼에서 혼자 서서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자를 맞이하는 아빠를 볼 때마다 저는 항상 집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함께 그 자리에서 항상 서 있어 주시는 아빠의 든든함에 나는 아직도 어린 둘째 아들이구나 안심하곤 한답니다.
그리고 기차 도착 몇 분 전부터 그곳에 서서 지나가는 기차 창문 하나 하나 유심히 살폈을 아빠의 모습에 또 괜스레 마음이 찡-해지곤 했어요.
저도 어느덧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는데, 여전히 한 아이의 아빠 보다는 아빠의 아들이 더 익숙해요. 어쩌면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그 가장의 무게가 두려워서 조금 더... 항상 내 앞에서, 뒤에서, 옆에서 있어 주신 아빠와 엄마라는 가정의 그늘 속에서 벗어나기 싫어하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또 새삼 가장이란 무게를 견디었던 아빠의 삶에 대해서 감사하게 됩니다.
미국에서의 삶을 살아가며, 제 가슴 속 가장 죄송한 것은 귀여운 손자가 자라는 모습을 자주 보여드리지 못하는 점. 그것이 정말 죄송해요. 아들이라고 효도를 해본적도 별로 없고,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대부분의 어버이날 때 약속드린 거라곤 '아빠, 이제 형과 안 싸우고 사이 좋게 지낼께요.' 였는데- 이제 손자가 태어나서 어쩌면 제가 드리지 못한 기쁨과 행복을 드릴 수 있었는데 그 효도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거 같아 아들은 항상 죄송해요.
아빠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아 죄송하지만, 앞으로 저는 아빠에 대해서 더 알아가고자 합니다.
어렵겠지만 저도 재이에게 아빠처럼 훌륭한 아빠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건강 하셔야 해요. 행복 하셔야 해요. 그리고 언제나 아들의 아빠로 있어 주셔야 해요.
아빠는 저에게 최고의 아빠이니까요. 사랑해요.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