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터비즈 Aug 01. 2020

기업이 유행을 선도하는 방법은?

유명 게이트 키퍼를 활용해 트렌드를 주도하는 법


수십억 네티즌들이 블로그, 유튜브 등 각종 콘텐츠 사이트를 통해 본인만의 창작물을 생산하고 있는 현재는 '아이디어 과포화' 시대라 볼 수 있다. 이런 시대일수록 큐레이터, 극장주, 백화점의 MD처럼 수많은 글, 작품, 상품 중에 쓸 만한 것을 골라 알기 쉽게 정리해 주는 사람들, '게이트 키퍼'의 역할이 중요하다. 결국 이 게이트 키퍼가 트렌드 리더 혹은 트렌드 세터라 불리는 이들이 된다.

 

DBR 186호는 기업이 유행을 선도하려면 가스통 갈리마르, 리오 카스텔리,안나 윈투어 같은 유명 게이트 키퍼를 활용해 이들과 소통하며 트렌드를 읽으라고 제안한다.

 

*게이트 키퍼(Gatekeeper): 독재국가에서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 기사 내용을 삭제하는 일을 맡아 처리하는 사람이란 의미로도 사용됨. 인터넷 시대에선 일반적으로 트렌디한 아이디어의 편집자 역할 맡는 사람을 지칭.


트렌드 리더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직업의 사람들이 떠오르나. 아마도 대부분은 창의적인 일을 하며 먹고사는 사람들을 떠올릴 것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새롭고 기발한 멋을 추구한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것은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새로운 패션, 예술, 소리, 디자인을 개발해 유행을 이끄는 사람들이 주목을 받는다.

 

역사적으로 오랜 시간동안 새로운 유행을 창조하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라이프스타일을 세팅하는 실험적인 사람들이 '아방가르드'를 이끄는 문화적 리더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아이디어 과포화 시대로 급속하게 접어들면서 재밌는 현상이 벌어진다. 라이프 스타일을 선도하는 역할이 아방가르드 예술가에서 게이트 키퍼라 불리는 그룹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수십억명의 네티즌이 누구나 블로그, UCC(User-Created Content) 영상 플랫폼, 각종 포털 등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매일 같이 뿜어낼 수 있게 되면서부터 트렌드 리더라 불리는 집단이 이동하고 있다.

 

아이디어 홍수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은 안목 있는 누군가가 그 많은 아이디어 중에서 유용하고 감동적인 것만을 추려내 보기 쉽게 정리해 보여주길 바란다. 사람들의 이런 요구에 따라 다양한 산물 중 쓸 만한 것들을 뽑아 멋진 조합으로 보여주는 게이트 키퍼 업종이 크게 부상하고 있다.

 

게이트 키퍼의 역할은 마치 색안경과 같다. 안경 렌즈 모양과 색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이듯 게이트 키퍼들이 아이디어의 산물을 조합하는 방식에 따라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 또한 달라진다. 따라서 기업이 신세대의 소비 트렌드에 발 맞춰 상품 개발과 판매에 성공하려면 게이트 키퍼들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다가올 유행에 대비해야 한다.

 


프랑스의 가스통 갈리마르, 게이트 키퍼의 시대를 열다

가스통 갈리마르

 

게이트 키퍼 시대를 연 사람은 20세기 초 프랑스의 가스통 갈리마르다. 그는 프랑스 대표 출판사 에디숑 갈리마르의 창업자다. 인쇄물 시대에 가장 중요한 문화의 게이트 키퍼는 수많은 뉴스, 유행, 상품, 아이디어 중 필요한 것들만 추려서 대중에게 전달하는 잡지, 신문, 출판사 편집장들이었다. 이러한 필터링 작업은 정보의 홍수로 결정 장애를 겪는 수많은 현대인에게 복음과도 같은 것이었다.

 

프랑스는 세계 최초로 시민혁명에 성공해 언론의 자유를 보장받았고 시민혁명에 성공해 일반 시민들도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따라서 프랑스의 젊은이들 가운데는 글을 써서 돈과 명예를 얻고자 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만큼 읽을 만한 가치가 없는 형편없는 글들이 많았고 독자 입장에서는 수많은 글 중 옥석을 가려내기 어려웠다. 이때 이러한 대중의 통점을 이해하고 비즈니스의 기회로 만든 사람이 바로 갈리마르 출판사의 창업자인 가스통 갈리마르다.

 

갈리마르는 글을 읽고 발간되는 책도 급격히 늘어나면서 많은 독자가 좋은 책 고르기를 어려워하며 문예지의 추천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1910년 갈리마르는 베스트셀러 작가 친구 두 명과 공동 투자로 NRF출판사를 세웠다. 갈리마르는 성공 잠재력이 높은 작가를 발굴해서 잡지에 등단시키고 잡지의 수요를 NRF출판사의 책 구매로 연결시켜 높은 수익을 창출했다.

 

갈리마르의 출판사는 좋은 글만 낸다는 소문이 돌면서 프랑스 독자는 갈리마르의 안목만을 믿고 이 출판사에서 나온 책은 웬만하면 다 사서 읽는 독서 문화가 형성되기까지 했다. 독자 사이에서 '갈리마르의 작가'란 타이틀이 곧 문학적인 성공의 징표로 부상하기도 했다.


▲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책을 낸 유명 작가들. 왼쪽부터 순서대로. JMG 르 클레지오(노벨상 2008년), 세계적 베스트셀러 <어린 왕자>의 저자 생텍쥐페리, 앙드레 지드(노벨상 1947년), 장-폴 사르트르


본인이 직접 글을 쓰거나 창작물을 만들지 않아도 뛰어난 창작품을 고를 줄 아는 '안목'만으로도 세상 사람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하나의 본보기가 된 갈리마르의 뒤를 이어 프랑스에선 수많은 게이트 키퍼들이 쏟아져나왔다.

 

 

뉴욕 예술의 게이트 키퍼, 리오 카스텔리

리오 카스텔리


프랑스에서 뉴욕으로 건너가 뉴욕의 게이트 키퍼 시대를 연 사람은 리오 카스텔리다. 오늘날의 뉴욕 스타일이라 하면 잭슨 폴락,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같은 예술가들을 떠올리기가 쉽다. 여기서 이 작가들의 예술적 아이디어가 뉴욕 스타일을 대표하게 된 데에는 뉴욕의 게이트 키퍼 시대를 연 리오 카스텔리의 공로가 크다.

 

가스통 갈리마르가 생텍쥐페리나 사르트르의 글과 같은 좋은 작품을 발굴해 프랑스 문학의 세계화를 일궈냈다면, 리오 가스텔리는 뉴욕의 아방가르드 예술 사조를 편집, 조합해 뉴욕 스타일의 세련미를 만들어 냈다.

 

파리에서 은행원으로 일했던 리오 카스텔리는 예술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뉴욕의 'The Club'이란 예술가 클럽에 가입했다. 이 클럽은 훗날 현대미술의 사조를 창조한 로버트 라쉰버그, 빌렌 드 쿠닝, 프랭크 스텔라 등이 모여 실험적 예술을 추구하던 모임이었다.

 

카스텔리는 예술가는 아니었지만 이 클럽 멤버가 돼 뉴욕 미술의 새로운 트렌드를 남들보다 먼저 읽을 수 있는 안목을 갖춘다. 카스텔리는 은행원으로 일하며 쌓았던 비즈니스 감각과 이 안목을 바탕으로 뉴욕 예술가들의 전시회를 주선해 주기 시작했다. 1957년에 그는 아예 직접 카스텔리 갤러리를 운영하기도 했다.

 

당시 예술가들은 본인 이름을 알릴 기회를 엿보며 각지에서 뉴욕으로 건너왔다. 수많은 예술가가 뉴욕에서 활동하며 수많은 작품들을 쏟아내자 옥석을 가려 편집해줄 사람이 필요해졌다. 게이트 키퍼가 필요해진 것이다.

 

이때 카스텔리는 이 기회를 포착했고 뉴욕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을 팝아트, 콘셉트 아트, 미니멀리즘과 같은 개념으로 나누어 미술 애호가들이 취향에 맞는 작품을 손쉽게 찾을 수 있게끔 범주화 했다. 리오 카스텔리는 이렇게 뉴욕의 유행 메이커가 됐다.

 

카스텔리 갤러리


카스텔리의 게이트 키핑 파워는 뉴욕 부동산 시장까지 영향을 미쳤다. 현재 뉴욕에서 부동산 값이 가장 높은 동네 중 하나가 '소호'라는 지역이다. 불과 몇 십년 전만 해도 소호는 선박들이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들이 즐비했던 슬럼 지역이었다.

 

그런데 1970-80년대 카스텔리 전 부인 소나벤드와 카스텔리가 소호에 갤러리를 열면서 뉴욕의 예술가들이 너도나도 잇따라 소호로 모여들었다. 이 바람을 타고 전 세계 예술품 수집가들이 소호의 창고를 사들여 럭셔리하게 개조했고 소호의 슬럼은 한순간에 뉴욕에서 가장 핫 한 부동산 시장이 됐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실제 주인공, 아나 윈투어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좌), VOGUE 2020 매거진 커버

 

할리우드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21세기 게이트 키퍼의 위상을 보여준다. 이 영화 이전까지만 해도 문화를 소재로 하는 영화에서는 주로 유명 화가, 사진가, 디자이너 같은 '크리에이티브'들의 생애를 위주로 다뤘다.

 

하지만 이 영화는 남이 만든 옷을 평가하고 편집해서 세상에 알리는 패션 잡지 편집장의 생활상을 보여줬다. 실제로 영화 속 패션 잡지 편집장 역할은 실제 뉴욕의 유명 패션 잡지 <보그>의 편집장인 안나 윈투어를 모델로 했다.

 

안나 윈투어는 영국 해럴드백화점을 시작으로 여러 패션 잡지에서 일하며 패션에 관심이 많고 경제적 여유도 있는 젊은 여성들에게 시간을 최소화하여 올바른 패션 정보를 찾아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포착한다. 부유층을 겨냥한 패션 잡지인 <보그>로 일자리를 옮긴 그녀는 처음으로 럭셔리 패션이 아닌 파격적인 믹스매치를 시도해 보수적인 패션계의 큰 가십거리가 된다.

 

특히 직장을 가진 프로페셔널 여성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안나 윈투어는 다양한 의상을 센스있게 매치하는 방법을 잡지의 표지에 선보였고 <보그>는 뉴욕 여성들의 대표 잡지로 떠오르게 된다. 안나 윈투어의 게이트 키퍼 역할은 크게 부상했고 그렇게 영화 '악마를 프라다를 입는다'의 주인공 모델이 된다.




1997년 웹 블로그란 새로운 게이트 키핑 분야가 생겼다. 누구든 원하면 자기 의견을 인터넷에 올릴 수 있는 문화가 낳은 산물이다. 지금에와서 그 명맥은 유튜브, 인스타그램과 같은 플랫폼과 SNS로 이어진다.

 

전달 매체가 지면이나 전파 TV에 한정돼 있던 과거와는 달리 온라인이 커뮤니케이션의 주요 창구로 활용되는 오늘날 정보의 생산량은 비약적으로 늘었다.

 

매일 수백만 개의 새로운 정보가 이런 새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시대이다. 자연스레 정보의 옥석을 가려주는 게이트 키퍼의 위상이 과거보다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유행을 예측하는 일은 어떤 기업에게든 어렵고도 중요한 과제이다. 이에 많은 기업은 이미 유명 게이트 키퍼를 트렌드의 풍향계로 활용하며 그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게이트 키퍼는 넘쳐나는 정보를 단순히 정리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유행이 될만한 재목을 선별해 이를 알리는 역할을 수행한다. 게이트 키퍼를 잡는 것이 비즈니스 트렌드를 이끌어 나가기 위한 필요충분적 조건이 된 이유이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186호

필자 문화전략가 조승연



인터비즈 박소영 김재형 정리
inter-biz@naver.com




매주 한 건씩 수요일 오전에 발송하는 인터비즈 뉴스레터는 그주의 핵심 트렌드 키워드와 테마를 가지고 험난한 비즈니스 세계를 분석합니다. 매주 인터비즈의 뉴스레터를 받아보고 싶다면 아래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 인터비즈 뉴스레터 신청하기





작가의 이전글 트럼프 지지자 이웃과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