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테크(샤넬+재테크)'라 불리며 7조원대 성장 예상되는 중고시장
구매하자마자 더 비싸게 되팔 수 있는 물건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바로 달려가지 않을까? 최근 샤넬이 가격을 올린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백화점이 문을 열기도 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실구매자들은 물론 재판매, 즉 '샤테크(샤넬+재테크)'를 목적으로 한 이들 다수가 이 행렬에 동참했다. 일단 사놓으면 돈을 버는 것이나 마찬가지란 인식 때문이다.
리셀(resell·재판매) 시장에선 명품뿐 아니라 스니커즈가 새로운 아이템으로 각광받고 있다. 일명 '스니커테크(스니커즈+재테크)'로 불리며 시장이 점차 커지는 추세다. 스니커즈 리셀은 개인 간 중고거래 수준을 넘어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전 세계 리셀 시장은 20억 달러(약 2조40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국내에서도 이미 스노우, 무신사 등이 앞다투어 이 시장에 진출했다.
스니커즈 리셀 시장의 작동 구조는 단순하다. '구매 후 웃돈을 얻어 되판다.' 당연히 모든 스니커즈가 리셀의 대상이 될 순 없다. 디자인이 예쁘고 다른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이어야 하는 것은 기본, 명품처럼 희소성이 있어야 한다. '한정판'은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수단이다.
나이키는 2016년 영화 '백 투 더 퓨처2'의 주인공 마티 맥플라이가 착용한 스니커즈에서 영감을 받은 신발 '나이키 에어 맥(MAG)'를 선보였다. 영화와 비슷하게 신발을 신으면 자동으로 끈이 조여진다. 이 신발은 89켤레 한정판으로 출시됐다. 신발은 50달러(6만원), 응모권 가격은 10달러(1만 2000원)였다. 스탁엑스에서는 현재 5만 달러(60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유명인이나 명품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 역시 운동화에 가치를 더한다. 나이키는 지드래곤(GD)이 전역하자마자 그와 콜라보한 '에이포스 1 파라-노이즈'를 출시했다. 발매 당일 홍대 매장 앞에 줄이 400m 늘어서 마니아들뿐만 아니라 대중의 관심을 모았다.
빨간색 로고가 들어간 버전은 818족 한정으로 21만9000원에 판매되었는데, 풀린 즉시 가격이 15배 치솟았다. 반 년이 지난 지금도 스탁엑스와 크림에서 200-300만원대의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아디다스가 프라다와 손잡고 내놓은 슈퍼스타 한정판, 나이키와 디올이 만나 만든 조던1 역시 스니커즈 마니아들을 들썩이게 했다.
손에 넣기만 하면 웃돈을 얹어 팔 수 있기 때문에 한정판 제품 구매부터 경쟁이 치열하다. 과거엔 대개 오프라인 매장에서 선착순으로 판매했지만 과도한 줄서기에 따른 불편함과 공정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래플(raffle)'이 도입됐다. 정해진 시간에 온·오프라인에서 응모한 뒤 당첨되는 구매하는 방식이다.
오프라인 응모권 추첨이나 선착순 판매 시에는 매장 스태프들이 대기자들의 '드레스 코드'를 확인하기도 한다. 지난해 조던1 레트로 하이 'TRAVIS SCOTT' 발매 시에는 조던 신발을 신은 사람만 구매할 수 있었다. 중복 응모나 여러 켤레 구매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신분 확인도 철저히 한다.
'스니커테크'란 신조어가 보여주듯, 재판매 시장이 형성되면서 국내외에 스니커즈 리셀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시장 규모도 점차 커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투자은행 카우언앤드컴퍼니는 글로벌 리셀 시장이 2025년 7조원 규모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2019년 추산한 시장 규모(2조4000억원)보다 약 3배 성장할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한국 영화산업이 지난해 최다 극장 관객 수에 힘입어 처음으로 6조원을 넘어선 것(영화진흥위원회의 2019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감안하면 스니커즈 리셀 시장의 성장세를 간과하기 어렵다.
대표적인 스니커즈 리셀 업체로는 미국의 스탁엑스(stockX)가 있다. 스탁엑스에선 바로 구매와 입찰 두 가지 방식으로 제품을 살 수 있다. 먼저 리셀러가 제품과 원하는 가격을 등록한다. 이때 자신이 원하는 가격을 제시한 구매자가 있으면 즉시 판매할 수 있다. 구매자 역시 원하는 가격의 제품을 바로 구매하거나, 입찰에 참여해 원하는 가격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
거래가 성사되면 판매자는 스탁엑스로 제품을 보낸다. 가품 여부 등의 검사를 마치면 스탁엑스가 정품 보장 태그를 붙여 구매자에게 배송한다.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지점에서 거래가 이뤄지고, 참여자가 많기 때문에 운동화 가격이 주식처럼 움직인다. 이렇게 형성된 시세는 추후 다른 거래자들에게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된다.
스탁엑스는 스니커즈 외에 가방, 시계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월 방문자 1500만명, 월 거래액 1260억원의 리셀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지난해엔 창업 3년 만에 기업 가치 1조원을 넘어섰다.
중국에서도 스니커즈 리셀이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차오셰(炒鞋)’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투기성 주식거래를 뜻하는 '차오구(炒股)'에서 유래한 것으로 투기의 중국식 표현인 '炒'에 신발(鞋)이 합쳐진 말이다. 중국에서도 '두(毒)' ' NICE' 등 리셀 전문 앱이 인기를 얻고 있다. '두(毒)'는 지난해 1억 달러 투자를 받기도 했다.
중국 컨설팅 회사 Ai Media Consulting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스니커즈 리셀 시장 규모는 10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2015년 이후 연평균 성장률이 35% 넘는다.
국내에서도 스탁엑스와 같이 이용자 편의성과 거래 안전성을 보장하는 스니커즈 중고거래 중개 플랫폼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엑스엑스블루( XXBLUE)는 미술품 경매사 서울옥션 관계사 서울옥션블루가 2019년 론칭한 플랫폼이다. 스니커즈 뿐만 아니라 스트리트 웨어(street wear), 아트 토이 등의 거래도 연결한다. 지난 4월엔 서울 강남에 오프라인 플랫폼인 '드롭 존(Drop zone)'을 열어 차별화를 꾀했다. 낙하지점을 뜻하는 드롭 존은 판매자가 온라인에 물품을 등록한 뒤 매장에 가져다 두는 공간이다. 기존에 이뤄지던 직거래 방식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올해 들어 여기에 네이버 자회사 스노우와 온라인 패션몰 무신사도 뛰어들었다. 지난 3월 스노우는 스니커즈 리셀 플랫폼 크림(Kream)을 선보였다. 회원 550만명의 무신사는 곧 스니커즈 중개 앱 '솔드아웃'을 출시할 계획이다. 출시 이벤트로 앱 사전예약을 받고 있는데 14일 현재 사전예약인원이 7만 4000여 명에 이른다.
그밖에 프로그, 아웃오브스탁 등이 리셀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아웃오브스탁의 설립자 브라이언 앤드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제품의 본질 가치를 제조업자가 제시하는 시대는 지났다. 소비 심리와 트렌드를 반영한 2차적으로 생성되는 가치, 프리미엄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비즈 박은애 김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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