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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비즈 May 18. 2020

A급 기업이 굳이 B급 마케팅에 뛰어드는 이유?

MZ세대의 성장으로 일시적 트렌드가 아닌 '기본'이 된 B급 마케팅

SSG 닷컴이 공개한 병맛 광고로 특히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다. 
주호민 작가의 머리를 계란으로 표현한 병맛 광고 출처: SSG 닷컴


신세계가 운영하는 이커머스 'SSG닷컴'은 지난 3월 이른바 '병맛' 광고를 공개했다. 웹툰 작가 이말년과 주호민이 등장해서 짧은 대사 몇 마디로 웃음을 준다. 이말년 작가가 '쌀'을 외치자 1인 다(多)역을 하는 주호민 작가가 트럭 안에서 벼를 베고, '계란'을 외치자 주호민 작가 30명이 동글동글 나타나는 식이다.


"이게 광고가 된다고? " 싶던 병맛 광고는 어느새 트렌드가 됐고, 심지어는 당연한 마케팅 기법이 됐다. 가벼운 유머와 엉뚱함으로 무장한 병맛은 치밀한 서사나 완성도를 거부한다. 데이터 과잉 시대 속에서 지나치게 많은 서사를 강요 당하는 사람들에게 병맛은 강렬하고, 획기적이다. B급 감성이 사람들을, 나아가 이제는 기업들 사이를 어떻게 파고 들었는지 살펴보자.



'A' 보다 나은 'B' .. 이제 B급 감성은 트렌드가 아니라 기본 ?


B급 마케팅은 한 마디로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다. 이게 마케팅은 맞는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닌지 싶을 정도로 가볍지만 그래서 더 머리에 콕콕 박힌다. 의도적으로 촌스러운 이미지들을 섞기도 하고, 황당한 주제를 결합하기도 한다.

B급 감성으로 충만한 LG생활건강의 광고의 한 장면이다. 유명 크리에이터와의 협업으로 만들었다. 대기업 브랜드가 직접 파격적인 영상을 컨펌했다는 점에서 당시 크게 이슈됐다


"아니, 씨X 일을 무슨 불토에 시키냐고! 나는 완전 돈만 주면 되는 줄 아나 본데. 맞아요, 맞습니다. 

정확히 찾아오셨네요. 역시 돈이 최고야, 짜릿해, 언제나 새로워! 

… LG생활건강 마케팅부서는 X됐따리. 적어도 컨펌만은 한다고 했어야해따리."


2018년에 인기를 얻은 '본격 LG 빡치게 하는 노래'라는 영상이 대표적이다. 이 영상은 1분 32초 분량 중 1분 9초를 토요일에 업무를 준 광고주(LG생활건강)를 원색적으로 욕하는 데 할애한다. 그러다가 남은 23초 동안 이 회사의 세탁세제를 홍보하며 끝난다. "이게 광고 맞나? "싶은 생각이 들지만 광고 맞다. 그래서 더 새롭고, SNS를 통해 번지면서 홍보 효과가 극대화되기도 한다.


출처 : 버거킹


가장 익숙한 건 영화, TV 프로그램, 만화 등 문화 콘텐츠 패러디를 활용한 마케팅이다. 지난해 영화 타짜에서 배우 김응수가 맡은 '곽철용' 역이 다시 큰 인기를 끌었다. 햄버거 업체 버거킹은 이를 빠르게 잡아내 곽철용의 명대사 "묻고 더블로 가"를 응용해 광고를 만들었다.


SNS 상에서의 유행어와 신조어를 패러디하기도 한다. 편의점 CU는 급식체를 활용해 'ㅇㄱㄹㅇㅂㅂㅂㄱ'라는 이름의 케이크를 내놓기도 했다. 패러디를 활용하면 소비자들의 공감을 유도하기도 쉽고, 그에 따라 콘텐츠의 반응을 극대화할 수 있다.


출처 : 유튜브 '충주시'


이질감 역시 B급 마케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영 어울리지 않는 촌스러운 합성이나, 글과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 배열 등이 있다. 이질적인 두 주제를 결합시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LG 생활건강 '홍보'와 '광고주 욕'이 합쳐진 것과 같다.


대표적인 병맛 감성 '충주시' 유튜브도 이러한 이질감을 잘 활용했다. 딱딱하게 느껴지는 공공기관에서 만든 유튜브인데 대놓고 "시장님이 시켜서 억지로 하는 유튜브"라고 하는 등 황당함으로 큰 웃음을 주고 있다. 충주 구치소 편에서는 구치소 관련 내용인데 중간에 도망을 치기도 하고, 교도관의 사랑을 받는 팁을 알려달라고 말하기도 하는 등 B급 감성이 충만하다.


한편, '새우의 자존심을 세우다', '바나나 먹으면 나한테 반하나' 등 언어유희를 활용하기도 한다. 가벼운 말장난은 단순히 웃음만 주는 게 아니라 애써 외우지 않아도 저절로 해당 내용이 머릿속에 각인되는 효과를 준다. 나아가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따라하면서 해당 상품의 인지도나 광고의 지속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내용도 없고, 완성도도 떨어지고.. 그래서 좋다 !


B급 마케팅의 인기는 MZ 세대(밀레니얼 세대 + Z 세대)의 성장과 맞닿아있다. 통계청의 2019년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1980~2004년생을 포괄하는 MZ 세대는 국내 인구의 33.7%(약 1750만 명)를 이룬다. 사회 내에서 MZ세대의 영향력이 확장되면서 그들에게 인기가 많은 병맛을 필두로 한 B급 마케팅도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MZ세대의 주 활용 플랫폼인 SNS 상에서 B급 마케팅은 힘을 얻었다. 콘텐츠의 휘발성과 단발성이 강한 SNS에서 강렬하고, 단순한 병맛 광고들은 큰 인기를 끌었다. 크게 주의력과 집중도를 필요로 하지 않기에 이동 시간 짬짬이 봐도 훅 사로잡을 수 있었다. 심지어 '공유' 기능 덕에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고,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웹툰 '소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병맛 광고의 경우 '짤방(짤림 방지의 준말. 아무런 상관없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올리는 것)'이나 '급식체(급식을 먹는 세대인 10대들이 주로 사용하는 문체)'가 사용된다. 밑도 끝도 없이 제품을 강조하거나 기승전결을 무시한다. 인터넷이나 SNS 문화가 만들어낸 문화적 특성과 관련이 있다.


한편, 가식에 대한 염증 역시 병맛이 인기를 끄는 중요한 원천이다. 병맛은 어떤 감동도 교훈도 주지 않는다. 줄 수 없는 게 아니라 주지 않는다. A 에서 B로 이어지는 당연한 서사를 희화화한다. 갖은 치장과 격식에 지친 사람들은 병맛에 열광했다.


병맛은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도 않고, 완성도가 높지도 않다. 기존의 서사를 파괴하면서 재미를 극대화한다. 만일 B급 감성이 보편화되고 어느 순간 잘 다듬어진 병맛이 등장한다면? 사람들은 다시 흥미를 잃고 C급, D급을 찾아 헤맬지 모른다.



나는 B, B, B 급 인생 ~ A가 되고 싶은? 아니, B로 남고 싶은 ! 


디지털 시장이 확산되면서 B급 마케팅은 더욱 큰 인기를 누릴 것으로 보인다. 시장이 성장하면서 콘텐츠 포화상태로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평범한 콘텐츠로는 공감과 반응을 끌어내기 어렵다. B급 마케팅 특유의 독특함은 '짧고 굵음'이라는 트렌드에 부합해 살아남을 것으로 보인다.

(왼)은 1인용 욕조, (오)는 DIY 미니어처다. 해당 용품과 전혀 맞지 않는 내용을 유머러스하게 적어놓았다.


특히 점차 커져가는 SNS의 영향력 아래서 B급 마케팅의 활용 가능성도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에는 광고인 듯 광고 아닌 듯 SNS의 밈을 활용한 유머글 형태로 올라오기도 한다. MZ 세대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같은 형태의 마케팅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단, 유머글 혹은 이슈로만 소비되고 막상 광고 효과는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실제로 화제는 됐지만 잊혀진 광고들이 여럿 있다. 대표적으로 롯데리아의 크랩 버거가 있다. 배우 신구의 "니들이 게 맛을 알어? "라는 명대사를 남기면서 이 광고는 단숨에 히트쳤다. 하지만 정작 크랩 버거는 그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하고 단종됐다.


B급이 남발되면서 오히려 그 영향력은 다소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기성 광고 사이에서 특색이 있던 B급 광고가 난무하면서 독특함이 사그라들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병맛 또한 반복되면 매너리즘으로 전락해 사람들이 싫증을 느끼게 될 지도 모른다.



인터비즈 윤현종 조지윤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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