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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비즈 May 31. 2020

PD 때려치고 나와 100억짜리 '푸드테크' 만든 청년

축산업에 뛰어든 두 청년 사업가 이야기.. 정육각과 육그램


여기 두 청년 사업가가 있다. 이들은 각각 미국 유학과 방송 PD를 포기하고 느닷없이 창업을 선언했다. 그것도 수학·과학 수재에겐 뜬금없어 뵈는 '축산업'이란다. 축산업계 종사자들은 이들을 "축산의 'ㅊ'도 모르는 풋내기", "금방 떨어져나갈 것"이라 평가했다. 하지만 그들은 축산업에 자신들의 강점을 녹여내 새로운 비즈니스를 개척하는 데 성공했다. 축산 스타트업 '정육각'과 '육그램'의 사례를 통해 1차산업과 IT산업의 성공적인 콜라보레이션을 살펴보자.



축산업계의 마켓컬리 '정육각' 신선 넘어 '초(超)신선'으로 고객 마음 사로잡다

정육각의 김재연 대표│출처 DBR


카이스트에서 응용수학을 전공한 김재연 정육각 대표는 2016년 미국 국무성 장학생으로 선발돼 미국 유학을 앞두고 있었다. 당시 김 대표는 유학을 떠나기까지 남은 시간동안 무얼할까 고민하다가 평소 좋아하던 돼지고기를실컷 먹고 떠나자는 생각을 했다. 친구들과 3주동안 전국의 유명한 고깃집을 찾아다니며 식도락 여행을 떠난 그는 안양의 한 도축장까지 찾아갔다. 갓 잡은 고기 맛은 어떨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축장에서 판매하는 고기의 최소단위는 20kg. 대략 40~50인분은 될 만한 양이었다. 김 대표는 하는 수 없이 20kg를 구입한 다음 친구들이나 이웃들에게 나눠주었다. 주변인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김 대표에게 고기의 구입처를 묻는 질문이 쇄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유학가기 전 잠깐 고기 장사를 해볼까'하는 마음으로 사업을 시작했다가 유학까지 포기한 채 사업에 매진하게 된다. 그렇게 탄생한 회사가 지금의 '정육각'이 되었다.

정육각의 돼지고기, 소고기, 달걀, 우유 등은 모두 '초신선' 컨셉을 고수하고 있다.│출처 로켓펀치, 정육각 인스타그램


정육각의 키워드는 '초신선'이다. 도축 4일 미만의 신선한 고기를 유통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 원칙을 실행에 옮기려면 기존 축산업 유통 과정의 상당부분을 간소화 해야했다. 김 대표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축산 농가와 직접 계약을 맺고, 정육각이 원하는 조건의 돼지를 키우기 위한 환경을 조성했다. 또한 직접 육가공 공장을 세웠다. 정육각의 돈육은 이 곳에서 자체적인 세절 작업을 거치게 된다. 정육각의 돈육은 자체 온라인몰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김 대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생산 시스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IT를 접목한 것이다. 정육각은 JIT(Just In Time)방식으로 상품을 관리한다. 말 그대로 주문이 들어옴과 동시에 가공, 포장, 배송 등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JIT 방식을 활용하면 재고처리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정육각의 '초신선' 돈육 역시 JIT 방식을 통해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정육각은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생산 및 포장 시간을 최소화해야 했고, 포장 무게가 다른 모든 상품을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어야 했다. 이 과정을 가능케 한 비결은 '머신러닝'이다. 축산 스타트업이지만 전체 직원의 30% 가량이 소프트웨어 개발자이거나 개발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또한 고객 주문 패턴 분석, 날씨나 구제역 발생 알림과 같은 변수를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자체 알고리즘도 개발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정육각은 현재 재고가 거의 남지 않는 수준으로까지 정교해졌다.


정육감 김재연 대표의 목표는 전체 프로세스에 빅데이터와 IT를 적용한 공장 자동화 시스템을 완성하는 것이다. 정육각의 사업초기 재구매율은 30% 정도였지만, 현재는 80%가 넘는 수준이다. 사업 초기만 해도 김 대표는 축산의 'ㅊ'자도 모르던 신출내기 CEO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강점과 축산업을 접목시켰고, 끊임없이 새로운 방식을 개발해냈다. 그 결과 정육각은 연 매출 100억 원 가량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육그램'&'육월' : B2C, B2B 거쳐 F&B사업까지..? "푸드테크, 끝이 없어요"

육그램 이종근 대표│출처 IT동아


육그램의 이종근 대표는 MBC 보도국에서 PD로 근무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가 축산 스타트업을 창업한 이유는 그저 '고기가 좋아서'였다. 육그램은 '1%의 고기를 추구한다'라는 의미로, 고기 한 근의 1%인 6g에서 사명을 따왔다.

초반 육그램은 극소량의 고기를 맛볼 수 있는 '미트 샘플러'를 기획, 판매했다. 늘어가는 1인 가구가 다양한 부위를 부담없이 즐기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기존 오프라인 정육점보다 40% 가량 저렴하게 정육을 '마장동 직구(직접구매)'할 수 있는 '마장동 소도둑단' 등 신선하고 재미있는 아이디어로 고객 유치에 성공했다.


육그램 '마장동 소도둑단'│출처 소도둑단 페이지


2018년 하반기부터 육그램은 B2C를 넘어 B2B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소규모 식당이 주요 타깃층이었다. 육류를 취급하는 식당에 납품되는 고기는 보통 최소 20kg부터 주문이 가능했다. 당일 배송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육류 메뉴의 비중이 작거나 가게 규모가 작은 식당의 경우 육류 20kg를 주문하면 재고 처리가 늘 골칫거리였다. 테이블 순환이 빠르거나 육류 사용량이 많은 가게의 경우에는 고기가 소진되면 조기 마감을 해야만 했다. 육그램은 이런 문제점을 파악한 뒤 소규모 식당을 위한 비즈니스를 펼쳤다. 육류의 최소 주문 단위를 기존 관행을 깨고 5kg으로 낮추었다. 또한 서울 지역 내에서 주문 당일 배송 서비스를 운영하기도 했다.

레귤러식스 바리스타 로봇이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주고 있다│출처 레귤러식스 페이스북


육그램은 B2C, B2B를 거쳐 또 다시 사업 범위를 확장하는 중이다. 가장 최근에는 F&B로 영역을 넓혀 외식 사업도 경영 중이다. 이종근 대표는 전통주 전문 외식기업 '월향'과 함께 '육월(육그램+월향)'이라는 이름의 푸드테크 스타트업을 설립하고 1000여 평 규모의 푸트코트 레스토랑 '레귤러식스'를 개점했다. 이 곳에서는 로봇 바리스타가 직접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주고, 로봇이 주문한 음식을 서빙해준다. 또한 레귤러식스의 모든 입점 매장은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해 가상화폐로 결제가 가능하다. 가장 미래지향적인 외식 공간을 만들어 낸 것이다.


레귤러식스의 음식 서빙 로봇│출처 레귤러식스 페이스북


이 대표는 스스로 AI나 블록체인의 '덕후'까지는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면서 얻은 기술적 지식을 식품 산업에 효율적으로 적용하고 싶었다. 그 결과 육그램의 거래처 중 한 곳이었던 월향의 이여영 대표와 함께 '육월'을 창업했고, 30여 가지의 IT 기술이 접목된 '첨단 식당' 레귤러식스의 문을 연 것이다. 특히 육월의 IT 기술을 활용한 고기 숙성 과정은 매우 기술집약적이다. 육월은 전국 고기 숙성 장인들의 노하우를 디지털화하여 AI에 학습시킨다. 이를 바탕으로 고기를 숙성시키는 냉장고와 컴퓨터를 연동한다. 장인의 손맛을 기술로써 재현해내는 것이다. 육월은 끊임없이 장인의 손길을 재현해내려 실험을 거듭하고 있으며 상반기 내로 이 기술을 선보일 예정이다.


축산업이라 하면 '오래된 산업'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정육각'과 '육그램', '육월' 등의 스타트업은 그러한 선입견을 깼다. 오히려 축산업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축산업뿐만이 아니다. 농업, 어업, 임업 등의 1차 산업이야말로 첨단 기술과의 협업을 통해 생산성을 극대화해낼 수 있는 분야다. 오랜 노하우와 높은 기술력이 만나 일구어 낼 새로운 비즈니스에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다.


인터비즈 박윤주 윤현종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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