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심리학으로 본 남여의 소비심리
진화론적 시각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 여러 행동 양상의 차이가 나타난다. 최근 유통업계에서 중요한 소비층으로 부상한 남성 고객 사이서 '여미족(Yummy)'이 주목되고 있다. 젊고(Young) 도시(Urban)에 거주하는 남성(Male)을 가리키는 말로 각 영어 단어의 앞 글자를 따서 생겨났다. 대도시에 거주하며 럭셔리 상품을 구매할 의사가 강한 남성 소비자를 뜻하는 단어다. 비슷한 말로는 패션과 미용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성들을 일컫는 '그루밍족'이란 말이 있다. DBR 206호에서는 여미족, 그루밍족으로 대변되는 남성들의 소비심리를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2010년부터 지난 5년간 롯데백화점의 전체 고객에서 남성이 차지하는 숫자는 매년 10% 이상씩 증가하고 있다.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 모두 전체 고객 중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과거 20%대에서 2015년에 30%대로 상승했다. 특화된 명품관으로 프리미엄 백화점을 표방하는 한화 갤러리아 백화점은 2013년 2% 수준에 그치던 남성 매출 신장 비율이 2015년에는 약 14%로 성장세를 보였다.
주요 백화점들은 이러한 추세에 힘입어 남성 고객을 위한 다채로운 상품을 선보였다. 갤러리아 타임월드는 남성 고객을 위한 남성 의류, 오디오, 전동 킥보드, 블루투스 스피커, 에어휠, 드론, 전기자전거, 변신로봇 등 다양한 상품을 출시했고 이 상품들은 각각 월평균 10% 이상의 신장률을 보였다. 비단 국내 유통업계서만 나타나는 소비 패턴은 아니다. 국내외 할 것 없이 전 세계적으로 남성이 소비시장에서 주축으로 올라서는 현상은 점차 강해지고 있다.
신규 소비층으로 급부상한 남성 고객들 사이에서도 핵심층은 바로 '여미족(Yummies)'이다. 젊고(Young) 도시(Urban)에 사는 남성(Male)이다. 자기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패션 상품을 비롯한 다양한 명품 소비에 관심을 보이는 남성을 뜻한다. 패션시장 내에서 여성 고객이 포화상태에 도달한 유통업계 입장에서 여미족의 출현은 단비와도 같다. 전 세계적으로 여미족이 수십조 원 규모의 럭셔리 상품 시장을 재편하고 있다. S 백화점 남성관의 리뉴얼 전후 매출을 연령대별로 비교해보면 30대가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여미족의 출현은 미혼인 남녀의 나이대가 점차 높아지는 현상과 관계가 있다. 1967년 25세-34세 사이 미국 여성 중 7%, 같은 연령대의 미국 남성 중 14%가 미혼이었다. 하지만 2001년 40세-44세 사이에 이르러서야 남성 중 14%, 여성 중 10%만이 미혼 상태로 남아있다. 한국도 만혼이 사회적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듀오휴먼라이프연구소에 따르면 평균 결혼 예상 연령이 남성은 34.8세, 여성은 33.7세인 것으로 파악됐다.
여미족의 명품 소비 경향성은 상징적인 번식 경쟁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명품은 이성에게서 매력적이란 평가를 받는 하나의 방법이다. 고급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만으로도 남성의 신체적 매력이 향상된다는 얘기다. 한 실험에서 비슷한 조건을 갖춘 남성과 여성에게 한 번은 고급 자동차(벤틀리)에, 다른 한 번은 일반 자동차(포드)에 타고 사진을 찍도록 했다. 그리고 그 사진을 이성인 실험 참여자에게 보여주며 매력 정도를 평가하게끔 했다. 그 결과 여성들은 동일한 남성일지라도 고급 자동차에 탑승했을 때 더 매력적이라 평가했다.
그렇다 보니 여미족의 과시적 소비 경향도 짙어질 수밖에 없다. 여성에게 매력을 어필하려면 말이다. 이런 과시적 소비는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고급 스포츠카(포르쉐)를 몰 때 남성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상승했다. 포르쉐가 마치 성적 신호로서 효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된다.
진화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과시소비 행동 이외에도 남녀 간에는 여러 양상에서 차이가 존재한다. 아래에서는 규칙에 따라 일을 수행하는 '체계화 능력', 생애에 걸쳐 달라지는 '자기존중감', '사회성', '스포츠에 반응하는 태도'를 기준점으로 남녀 간에 확인되는 차이를 살펴보았다.
위 그림은 성차가 나타나는 대표적인 수행 능력에서 남녀의 점수 분포를 비교한 결과다. 여성은 남성보다 공감하기 점수가 더 높고 남성은 규칙에 따라 작동하는 시스템을 이해하는 능력인 체계화 점수가 더 높다. 남성이 체계화 점수에서 여성보다 높은 점수를 보이는 것은 남성이 여성에 비해 수학, 물리학 및 공학 분야에 뛰어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전통적으로 수학, 물리학 및 공학 분야에서 남자 대 여자의 비율은 약 9:1이었으며 이런 추세는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 예컨대, 미국 국립과학재단이 수행한 조사에 따르면 생물학자의 약 23%가 여자인 반면 물리학자는 겨우 5%, 공학자는 3%에 그쳤다.
남성의 자기존중감 점수는 생애 전반에 걸쳐 여성보다 높다. 남녀 간 자기존중감 점수 차이는 배우자나 지위를 놓고 경쟁하는 청소년기와 성인 초기에 가장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이 검사 결과는 자기 보고 식 검사로 남성이 객관적으로 여성보다 자기존중감이 높은 게 아니라 남성 스스로 그렇게 믿고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이 연구결과가 뜻하는 바는 유의미하다.
남성의 자기존중감은 줄곧 여성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다가 60대를 지나면서부터 남녀 간 격차가 급격히 줄어든다. 남성이 85세가 되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20대 때의 절반 이하로 감소하면서 공격성은 감소하고 옥시토신으로 애정과 감정에 더 민감해진다. 자연스레 이 시기에 접어들면 남자와 여자는 가장 유사해지고 자기존중감 측면에서도 사실상 차이가 사라지게 된다.
'사회적'이란 용어의 개념을 가깝고 친밀한 1:1 관계라 정의한다면 남성보다는 여성이 더 사회적이다. 그런데 사회를 더 큰 규모의 집단으로 정의하게 되면 그 반대다. 남성이 여성보다 더 사회적이다. 여성은 일대일로 연결된 소규모 형태의 가까운 관계에서 사회성이 발달한다면 반면 남성은 많은 사람들과 연결된 대규모 조직에 더 잘 맞게끔 사회성이 발달했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른 형태의 사회적 관계를 향유한 결과 노년기에는 남성은 여성에 비해 고독에 더 취약하다. 50-60대 남성이 여성보다 스스로 보고한 자기존중감 수준이 더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이 객관적으로 여성보다 자기존중감 수준이 더 높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스포츠는 전형적인 대규모 사회적 상호작용 방식이다. 남성이 여성보다 스포츠에 더 큰 매력을 느끼는 이유도 사회에서 대규모 관계를 맺는 걸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여성 관점에서 스포츠는 생물학적 가치와 실용적 가치가 전혀 없는 쓸모없는 짓이다. 반면 남성은 누가 더 잘하는지 증명하는 데서 스포츠의 매력을 경험한다. 생물학적 측면에서 살펴보아도 여성보단 남성이 스포츠를 더 즐기기에 구조화돼 있다. 남자는 자신이 실제로 움직이지 않아도 운동선수가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스릴을 경험할 수 있다. 실제로 컴퓨터 게임에 집중한 소년의 뇌를 fMRI로 측정해보면 게임 캐릭터의 움직임에 상응하는 뇌 속 신경세포가 활성화된다. 여자의 뇌에서도 해당하는 반응이긴 하나 남자에게서 상대적으로 두드러진다.
▷ 여미족의 명품 소비 경향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 때 이성에게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기 위한 과시 행동이다. 진화심리학을 통해 여미족을 연구한 고영건 교수는 이를 짝짓기 전략의 일환이라고까지 본다. 여미족의 명품 구매에 깔려있는 기본적인 동기는 과시에서 비롯된다는 걸 영업전략에 활용해볼 수 있다.
▷ 체계화 사고에서 나타나는 남녀 차이가 소비 동기에서의 차이를 만든다. 남성은 여성보다 수학, 물리학 및 공학 분야에서 필요한 사고력에 기초한 활동을 더 좋아한다. 체계화된 사고를 기반으로 소비욕구를 갖는 남성의 동기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상품의 예로는 가상현실 VR 안경, 드론, 기능성 로봇 등을 들 수 있다.
▷ 남성을 주 고객으로 한 상품을 마케팅 할 때는 체험형 매장을 확대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여성과 달리 남성은 신체적으로 사고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설득에 유리하다. 글로벌 자동차 회사인 BMW는 한국의 남성 소비자를 위해 체험형 매장 형태로 세계 최초 BMW 모토라드 카페를 오픈해 신형 모델을 전시함과 동시에 제품 상담을 진행했다.
▷ 10대 후반에서 70대 이전까지의 남성 고객을 위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할 때는 자존심을 강조하는 내용의 상품광고로 소구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하지만 70대 이후 남성에게 자존감을 강조하는 내용은 잠재적인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 노년기 남성을 상대로 마케팅할 때는 이들이 느끼는 고독 문제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노년기 남성은 테스토스테론의 감소로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다. 또 노년기 이전까지의 남성은 주로 여러 사람들과 연결된 대규모 조직에 더 집중했었다가 노년기에 접어들면서는 가까운 관계에 집중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 남성 고객 위한 마케팅 전략에서 평등(equality)보다는 공평(equity)의 가치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남성 고객을 상대로 보상 시스템을 만들 때에도 구입 액수에 비례하여 대우해 주는 것을 더 선호할 것이다. 물론 여성 고객은 그 반대다. 백화점 내 남성관과 여성관 체계를 차별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필자 고영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서울삼성병원 정신과 임상심리레지던트
인터비즈 박소영 김재형 정리 inter-biz@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