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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비즈 Jun 18. 2020

뉴욕 맨해튼에 위치..구매는 못하는 삼성 리테일 숍

삼성전자가 물건 팔지 않는 매장을 운영하는 이유


국의 아마존을 시작으로 다양한 e-커머스 업체들이 등장하면서 한때 '오프라인 매장 종말론'이 대두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기업들의 오프라인 매장 활용법을 보면 오프라인 매장은 위기를 극복하고 나름의 살길을 찾고 있는 모양새다. 일례로, 뉴욕에 위치한 나이키(NIKE)의 플래그십 스토어 '하우스 오브 이노베이션(House of Innovation)'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융합된 대표적인 공간이다. 플래그십 스토어란, 시장에서 반응이 좋았던 기업의 주력 제품들을 통해 브랜드 인지도와 이미지를 극대화한 매장을 의미하는데 나이키는 총 6층으로 구성된 하우스 오브 이노베이션 스토어를 통해 고객에게 다양한 체험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고객은 온라인에서 본 제품을 실제로 착용해보기도 하고, 뉴욕 인근 거주민들의 데이터 분석을 토대로 한 제품 진열을 통해 좀 더 효율적인 동선으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출처 나이키 공식 홈페이지


해외 사례뿐만이 아니다. 국내 기업들도 오프라인 공간을 단순 제품 판매를 위한 공간이 아닌 제품의 스토리를 전달하고 고객들이 해당 제품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브랜딩 공간으로 꾸며 활용하고 있다. 오프라인 공간이 브랜드 콘셉트가 잘 드러나는 '체험'을 고객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충실히 한다면 당장 그곳에서 판매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향후 온라인이나 다른 곳에서 매출을 이끌어낼 수 있다. DBR 277호에 실린 내용을 바탕으로 디지털 시대에 혁신적인 공간 디자인을 한 국내 기업 사례를 소개한다. 원문 기사 더보기


국제도서전에 등장한 가전업체 부스,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다 


지난 6월, 코엑스에서 서울국제도서전(Seoul International Book Fair, SIBF)이 열렸다. 서울국제도서전은 매년 수만 명이 참가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책 관련 페스티벌이다. 특히 올해 행사의 경우 사전 신청자만 6만 명 이상으로 작년에 비해 참가자가 두 배에 달했다. 한강과 같은 유명 소설가부터 출판사가 특별하게 내놓은 인기 도서와 관련된 다양한 굿즈(goods)를 만날 수 있는 이곳에 출판업과 무관한 삼성전자가 참여해 관람객의 눈길을 끌었다.

서울국제도서전(Seoul International Book Fair, SIBF)에 참가한 삼성전자의 쿠킹 스튜디오/ 출처 삼성뉴스룸


삼성전자는 『치킨인류』의 저자이자 ‘누들로드’, ‘요리인류’ 등의 음식 관련 다큐멘터리 제작으로 유명한 이욱정 KBS PD와 함께 ‘요리인류 오픈키친’이라는 이름으로 행사장 한편에 있는 요리 관련 서적 코너에 쿠킹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관람객들은 전시 기간 동안 '책과 음식의 만남'이라는 주제 아래 유명 셰프들과 요리책 저자들이 삼성전자의 맞춤형 냉장고 비스포크(BESPOKE)와 셰프 컬렉션 오븐, 전기레인지 인덕션 등을 활용해 다양한 요리를 시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삼성전자는 자체 유통 채널인 디지털 플라자를 떠나 SIBF에서 자사 제품을 선보임으로써 제품을 통한 '라이프스타일'을 소비자들에게 보여주었다. 이는 제품 판매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고객들에게 자연스러운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으로 읽힌다. 관람객들은 쿠킹 스튜디오에 방문해 맛있는 요리가 조리되는 모습을 보면서 전문가들로부터 레시피나 조리 정보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 나도 저런 주방을 갖고 싶다’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아무것도 팔지 않는 매장, 여기선 '체험'만 하세요 


삼성전자는 이보다 먼저 미국에서 '체험 공간'을 만들어 소비자들을 공략해 왔다. 2016년 2월부터 뉴욕 맨해튼 첼시 인근 핫플레이스에서 운영되고 있는 1600평의 ‘Samsung 837’ 매장이 그 예다. 삼성이 지속적으로 “이 공간은 물건을 파는 리테일 숍(retail shop)이 아니다”라는 점을 언론에 강조해온 것처럼 Samsung 837 매장은 ‘어떠한 물건도 팔지 않는 매장(A store that doesn’t sell anything)’이다.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삼성의 최신 IT 기기들을 '체험'할 수는 있으나 '구매'할 수는 없다. 판매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Samsung 837 매장 외관/ 출처 삼성뉴스룸


이곳은 일종의 ‘디지털 놀이터(Digital Playground)’다. 방문객들은 끊임없이 매장 내 공간에서 다양한 디지털 기기를 가지고 즐겁게 놀고, 이러한 행위들을 자발적으로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찍어 SNS를 통해 친구들과 공유한다. 예를 들어 방문객들은 1층 4D VR 체험 공간에서 롤러코스터를 가상현실로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으며, 삼성 837 매장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소설 갤럭시'에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속 자아, 일명 '소셜 셀프'를 만날 수 있다. 소셜 갤럭시는 갤럭시 S6와 갤럭시 노트5, 태블릿, 삼성 디스플레이와 거울 등 300여 개 기기로 이뤄진 터널로, 방문객이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등록하면 자신이 그간 올린 게시물이 이 미디어 터널에 펼쳐진다. 방문객이 경쟁사인 애플 휴대폰을 가지고 있더라도 상관없다. 매장에 들어가면 최신 삼성 휴대폰을 언제든 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좌) 4D VR을 체험하고 있는 방문객들, (우) '소셜 갤럭시'/ 출처 삼성뉴스룸


삼성전자는 이렇게 판매 목적이 아니라 그들의 제품을 다양한 방식으로 즐겁게 가지고 놀 수 있게 꾸민 편안한 공간들을 미국과 일본에 공격적으로 열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애플 휴대폰이 대표적으로 잘 팔리는 지역이다. 이런 곳에서 단순히 판매용 매장만 열어서는 시장을 뚫을 수 없다고 판단한 삼성은 갤럭시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즐거운 경험을 제공해주고 그 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브랜드 가치를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강력한 경쟁자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라고 봤다.


낡은 대중목욕탕이 그들만의 '쇼룸'이 되다 


수입 유명 브랜드들이 피 튀기게 경쟁하는 선글라스 시장에서 한국 토종으로 승승장구하는 브랜드가 있다. 바로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다. 젠틀몬스터의 성공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 것은 바로 독특한 '공간 마케팅'이다. 젠틀몬스터의 공간 전략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제품의 판매처라는 이미지를 가능한 숨기려 노력하는 오프라인 플래그십 쇼룸 스토어 ‘배쓰하우스(Bathhouse)’ 다. 둘째는 제품을 판매하지 않고 오직 브랜딩을 위해 존재하는 콘셉트 스토어 ‘배트(BAT)’다.

배쓰 하우스/ 출처 동아일보


배쓰하우스는 서울 계동 길에 자리 잡은 낡은 상용 목욕탕을 개조한 공간이다. 배쓰하우스에 들어가 보면 보일러실, 사우나실 등이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고 과거 욕탕으로 사용되던 장소에 선글라스, 안경 같은 아이웨어 제품들이 놓여 있다. 젠틀몬스터는 이런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공간을 통해 '독창성', '예측 불가능성'이라는 브랜드 콘셉트를 자연스럽게 노출한다. 젠틀몬스터는 이를 ‘창조된 보존’이라 말한다. 창조와 보존은 얼핏 상반되는 개념인 듯하지만, 이 둘이 만났을 때 예상치 못한 파격에서 오는 새로움에 사람들은 환호한다.


(좌) 농장 속의 카페(Coffee in the Farm), (우) 코믹북, 더 레드(Comic Book, The Red)/ 출처 젠틀몬스터 페이스북


아이웨어 제품 없이 오직 브랜딩만을 위해 존재하는 배트도 특이하다. 배트는 주기적으로 콘셉트를 달리하면서 젠틀몬스터가 추구하는 브랜드 가치를 공간에 담아내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가령, 대중들에게 친근한 소재인 카페를 재해석해 ‘농장 속의 카페(Coffee in the Farm)’를 만들어 운영하거나 ‘코믹북, 더 레드(Comic Book, The Red)’라는 콘셉트로 소비자들이 친근하게 느끼는 드래곤볼이나 슬램덩크와 같은 유명 만화책들의 표지를 모두 빨간색으로 특별 제작해 배치함으로써 공간 자체를 세련되게 재해석했다. 이렇게 공간 자체에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오브제들을 만들고 직접 소비자를 참여시킴으로써 젠틀몬스터는 소비자들이 좀 더 브랜드 정체성을 밀도 깊게 체험하도록 공간을 구성한다.




이처럼 디지털 시대에 특색 없는 대규모 오프라인 공간들은 사라지고 있지만 오히려 흥미로운 오프라인 공간은 더 늘어나고 있다. 디지털 변혁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제 기업은 단순 제품 판매만이 아니라 제품의 이야기가 잘 전달될 수 있는 브랜딩 공간을 만드는 것을 고려해봐야 한다. 브랜드의 핵심 가치를 고객들에게 경험을 통해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공간 말이다. 디지털이 더 이상 전통적인 오프라인 공간을 '위협'하는 존재가 아닌, 오프라인 공간을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동반자' 같은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면 말이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277호
필자 이승윤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
인터비즈 김아현, 장재웅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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