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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비즈 Jun 25. 2020

할리우드 의상 디자이너가 우주복을 디자인한 이유

'스페이스X' 우주복 디자인 속 숨은 일론 머스크의 철학


5년쯤 전이었다. 헐리우드 영화 속 의상을 디자인하는 호세 페르난데스(Jose Fernandez)에게 전화가 왔다.


“여긴 스페이스X인데요, 혹시 우주복 디자인해 주실 수 있나요?”

“스페이스X가 뭔가요? 새 영화인가요?”

“(긁적)…”


여기서의 스페이스X는 얼마 전 우주비행사 2명을 국제우주정거장에 보내는 데 성공한 일론 머스크의 바로 그 스페이스X다. 그런데 왜 스페이스X는 미항공우주국(NASA)과 같은 우주복 디자인 경험이 있는 과학자 조직이 아닌 헐리우드 의상 디자이너에게 의뢰를 하려 한 걸까?

유인 우주선 크루드래건_출처: NASA


우선 페르난데스의 이력을 살펴보자. 페르난데스는 배트맨부터 시작해 X맨과 어벤저스까지 수많은 슈퍼히어로의 의상 디자인을 맡았던 헐리우드 최고의 의상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인기 팝 음악 듀오 다프트 펑크의 헬멧도, 블랙팬서의 헬멧도 다 그의 작품이다. 그래도 진짜 우주복 디자인이라니… 뭔가 관련은 있어 보이지만 공상 과학과 진짜 과학은 다르지 않을까.


어쨌든 스페이스X가 우주 여행 기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페르난데스는 한 번 해보겠다고 답했다. 문제는 시간이 2주뿐이 남지 않았다는 점. 그래서 그는 전체 우주복을 만들 시간은 없지만 헬멧만 한 번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스페이스X는 페르난데스를 포함 모두 6명의 디자이너로부터 시안을 받았다. 뚜껑을 열어보니 머스크가 유일하게 좋아한 건 페르난데스의 헬멧이었다. 이후 페르난데스는 머스크와 6개월 동안 함께 스페이스X 우주인이 입을 우주복을 디자인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5월 30일 우주비행사 더글러스 헐리(Douglas Hurley)와 로버트 벤켄(Robert Behnken)이 입고 스페이스X 유인 로켓 크루 드래곤에 탄 바로 그 우주복이다.

크루 드래곤에 탑승한 우주비행사 두 명이 호세 페르난데스가 디자인 한 우주복을 입고 있다. 출처_NASA


페르난데스는 한 인터뷰에서 “머스크는 우주복이 실용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멋져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머스크가 예로 든 건 턱시도였다. 어떤 사람이건 턱시도를 입으면 멋져 보인다는 게 머스크의 지론. 스페이스X의 우주복은 턱시도 같아야 했다. 입으면 영웅같이 멋져 보여야 했다. 그래서 둘은 일단 멋있는 우주복을 디자인 했고 스페이스X는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통해 해당 디자인을 우주 여행에 적합한 옷으로 만들었다.


이들이 만든 우주복은 지금까지 NASA 우주인들이 입었던 우주복과는 달라 보였다. 미쉐린 타이어맨 같이 부피가 크고 멋대가리 없던 우주복이 아니었다. 옆에 아래쪽까지 어두운 패널로 되어 있어 몸통을 더 가늘어 보이게 만들고 어깨 선을 똑바로 펴 보이게 했으며 쇄골에서 무릎까지 공기역학적으로 만들었고 무릎 높이의 슈퍼히어로 부츠를 매치했다. 진짜 헐리우드 SF 영화나 슈퍼히어로 영화에 나올 법한 우주복이었다.


물론 이 우주복은 우주 유영을 위한 ‘완전군장’형 우주복은 아니다. 로켓을 타고 우주정거장까지만 가면 되는 우주복이었다. 그래서 전통적인 우주복에 매달린 호스나 손잡이, 철사는 보이지 않았던 거고 더 멋지게 디자인될 수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머스크는 왜 멋진 우주복을 원했던 걸까? SF 비평가 게리 웨스트팔(Gary Westfahl)에 따르면 우주 프로그램이 정부 주도로 이뤄졌을 때는 우주복이 매력적일 필요는 없었다. 우주복은 그저 편하고 안전하면 됐었다. 하지만 민간 기업이 우주 여행 사업에 뛰어든 뒤엔 얘기가 달라졌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은 멋진 우주복을 만들어 고객에게 어필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바로 머스크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그가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에서 ‘보이는’ 부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항상 인식해왔다. 스티브 잡스에 버금갈 정도로 디자인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있으며 이를 구현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들여왔다. 한 인터뷰에서는 시간의 80%를 엔지니어링과 디자인에 쓴다고 한 적도 있다. 그가 만드는 테슬라에서 나오는 자동차나 스페이스X 관련 디자인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약간 의외라고 할 수 있는 헐리우드 영화 의상 디자이너와 함께 우주복을 디자인 했던 것이다.

일론 머스크_출처: AP 뉴시스


창의적이 되기 위해서는 비전문가 또는 초보자처럼 문제를 공략하는 역량과 즐기는 태도가 있어야 하며 편견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하지만 비전문가들에 의한 새로운 문제제기는 보통 전문가들에 의해 묵살 당하곤 한다. 또 창의성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들여 다른 분야와 ‘이종교배 (Cross-Pollination)’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 말은 쉽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긴 하다.


머스크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우주복을 만들기 위해 어쩌면 전혀 다른 분야의 전문가인 헐리우드 의상 디자이너에게 일을 맡긴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머스크는 사실 창의성의 정수를 파악하고 있었던 셈이다. 스페이스X가 민간 기업으로서는 최초로 우주비행사 2명을 국제우주정거장에 보내고 테슬라가 최고의 전기자동차를 만들 수 있었던 건 바로 머스크의 이런 창의성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뉴욕타임즈는 스페이스X의 우주복이 사라지다시피 한 웨어러블 IT기기에 대한 수요에 불을 붙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프 베조스의 우주기업 블루 오리진이 어떤 우주복 디자인을 들고 나올지 궁금해 했다. 베조스도 이런 쿨한 디자인을 할 수 있을까.


※ 참고 글

- 뉴욕타임즈: Elon Musk’s SpaceX Suit Is Like a Tuxedo for the Starship Enterprise

- 블립매거진: Jose Fernandez: The man sculpting and shaping the most iconic characters in film

- 월스트리트저널: How to Be Creative


필자 김선우
약력
-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인문지리학과 졸업
- 워싱턴대(시애틀) 경영학 석사
- 동아일보 기자
- 새로운 삶을 발견하기 위해 현재 미국 시애틀 근처 시골에서 작은 농장 운영 중
<40세에 은퇴하다> 작가


인터비즈 김재형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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