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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비즈 Jul 03. 2020

저희 서점은 한달 동안 한 종류의 책만 팝니다

서촌 '한권의 서점'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법


온라인 서점에 밀려 동네 서점들이 사라지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동네에 서점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독립서점’으로 불리는 곳들인데, 주인의 색깔을 오롯이 드러내는 큐레이션을 무기로 한 공간이다.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느낄 수 없는 경험을 찾아 기꺼이 시간을 투자해 찾아가고, 온라인 서점의 할인 혜택도 포기한다.


서촌에 있는 ‘한권의 서점’은 독특한 콘셉트로 주목받는 서점이다. 한 달에 한 권만 선정해 소개하고 판매한다. 처음 보는 콘셉트는 아니다. 일본 도쿄에 있는 모리오카 서점은 이미 매주 한 권의 책을 판매하는 걸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독립서점 중에도 이따금 한 권만 파는 실험을 한 곳들이 있다. 중요한 건 한 달에 한 권을 판다는 콘셉트 자체가 아니다. 어떻게 한권의 서점이 독자들이 책 한 권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공간을 꾸려가고 있는가다.


책 속으로 들어온 듯한 공간


서점 전경. 출처 한권의 서점 인스타그램


한권의 서점은 내부가 한 눈에 들어오는 아담한 공간이다. 누군가는 요즘 유행하는 독립 서점을 기대하고 들어갔다 실망할 수도 있다. 이곳엔 책이 가득 꽂힌 서가도 다양한 책이 진열된 테이블도 없다. 다 합쳐 봐야 책이 열 권 정도 비치되어 있을 뿐이다. 그것도 같은 종류로만.


사실 이곳에선 책보다 다른 데 먼저 눈길이 간다. 처음엔 창문에 적혀 있는 단어, 그 다음엔 쇼윈도(?)에 진열된 물건들에. 12월에 방문한 한 권의 서점 유리창엔 ‘한때’라는 단어와 함께 ‘나를 추억해내고 싶을 때. 물건을 꺼내보고 손에 쥐고 어느새 모아보니 나를 기억하는 한때’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유리 너머 쇼윈도엔 자칫 잡동사니처럼 보일 수 있는 유리컵, 파우치, 시계, 노트 등이 진열돼 있었다. 모두 12월의 책 <여행의 물건들>을 설명하는 요소들이다.


출처 인터비즈


한권의 서점에선 매달 그 달의 단어를 정하고 거기에 어울리는 책을 선정한다. 키워드는 서촌의 특성, 서점 이름과의 통일성 등을 고려해 ‘하나’라는 개념과 맞닿아 있는 것을 고른다고 한다. 지난달 키워드는 ‘한번쯤’, 10월의 키워드는 ‘일기’였다.


* ‘한권의 서점’이 선정한 키워드와 소개한 책들

첫 번째, 1mm <도쿄의 디테일>
두 번째, 내 일 <매일의 빵>
세 번째, 일부 <일간 이슬아 수필집>
네 번째, 일기 <베를린 일기>
다섯 번째, 한번쯤 <잘 돼가? 무엇이든: 각본집과 그림책>
여섯 번째, 한때 <여행의 물건들>


쇼윈도와 내부는 책에 나온 장면을 뚝 떼어 놓은 듯 꾸민다. 쇼윈도와 마찬가지로 내부 벽면에도 다양한 물건들이 설명과 함께 진열돼 있었다. 예를 들어, 나이키가 적힌 하얀색 봉투 옆엔 ‘난 이 쇼핑백을 갖기 위해 검정 나이키 티셔츠를 구매했다’란 설명이 붙어있다. 저자가 여행하면서 모은 것들을 소개하는 책 <여행의 물건들> 속 바로 그 물건이다. 텍스트와 이미지로 접한 물건을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볼 수 있게 했다.


서점 내부 전시. 출처 인터비즈


나이키 쇼핑백 이야기를 담은 책 <여행의 물건들> 중


책의 특성에 따라 매번 전시의 구성이 바뀌는데, 이경미 감독의 각본집을 소개한 11월의 경우 영화 속 장면의 소리를 들어볼 수 있게 한편에 아이폰과 헤드폰을 놓았다. 또, 영화 속 한 장면을 재생하면서 그 장면의 콘티를 배치해 두 가지를 비교해 볼 수 있게 했다.


더불어 이경미 감독, 각본집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린 수명 작가, 그리고 책을 기획한 이로 편집자와의 짤막한 인터뷰도 읽어볼 수 있도록 비치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이야기 뒤편, 창작자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출처 한권의 서점 인스타그램, 인터비즈


출처 인터비즈


전시를 둘러보고 책을 구매해 나갈 때도 책의 여운을 그대로 가져갈 수 있다. 포장 덕분이다. 한권의 서점을 매월 책에 따라 포장을 바꾼다. 12월엔 작가가 여행 중 구매한 컴포지션 바스키아 책 표지를 본떠 만들었다.


작가가 구매한 전시품과 책 포장지. 출처 인터비즈


책을 매개로 한 만남의 자리


솔직히 한 달에 한 권도 보기 힘들 때가 있잖아요.
한 권만이라도 온전히 보았으면 하면 바람에서 여러 가지 기획을 하고 있어요

이곳을 운영하고 있는 스테이폴리오의 김완석씨 설명이다. 한권의 서점의 역할은 전시가 구매로 연결되게 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밤 읽는 밤’ ‘낮의 낱말’이라 명명한 오프라인 행사도 진행한다.


밤 읽는 밤에선 주로 작가와의 만남을 진행하고, 낮의 낱말에선 책과 관련한 글 쓰기 모임을 진행한다. 글 쓰는 법을 알려주는 수업이 아닌, 서로 글을 쓰며 감상을 나누는 자리다. 책 한 권을 놓고 네다섯 번은 곱씹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셈이다.


11월에 진행된 '밤 읽는 밤' 이경미 감독과의 만남(좌), '낮의 낱말'에서 쓴 글은 서점 내부와 웹페이지에 게재돼 다른 사람들과 공유된다. 출처 한권의 서점 인스타그램


또, 전시에서도 독자들을 책 속으로 끌어들이는 기획을 시도 중이다. 12월엔 물물교환의 장을 마련했다. 남들이 봤을 땐 별 거 아니지만 자신에겐 소중한 이야기가 담긴 물건을 서점에 있는 다른 물건과 바꿔 가는 것. 여행에서 만난 물건에 얽힌 에피소드를 풀어낸 책을 읽으며 ‘나도 그런 물건이 있는데’란 생각을 했을 독자들을 책으로 그리고 이 서점으로 다시 한 번 더 걸음하게 하는 요소다.


출처 인터비즈


벽엔 '소소한 규칙'이 써있다. 마음에 드는 다른 사람의 물건을 발견하면 그 물건과 전 주인의 이야기를 가져간다. 대신 서점에 비치된 종이에 자신이 물건을 만난 날짜, 떠난 날짜 그리고 물건에 얽힌 이야기를 적고 물건을 놓아둔다. 출처 인터비즈


이 서점의 숨겨진 목적은 호텔 컨시어지?


한권의 서점은 개인이 아닌 스테이폴리오(STATFOLIO)란 회사가 운영하고 있다. 스테이폴리오는 ‘파인 스테이(Fine Stay∙숙소)’를 큐레이팅해 소개하는 회사다. 고객들은 스테이폴리오가 발굴한 또는 직접 운영하는 숙소를 사이트에서 예약할 수 있다. 한권의 서점은 스테이폴리오가 서촌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5개의 스테이(누와, 일독일박, 서촌영락재, 썸웨어, 아담한옥)의 컨시어지 역할을 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누와 내부 모습. 스테이폴리오는 한옥 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서촌 내 한옥과 구옥을 스테이 공간으로 바꾸고 있다. 출처 스테이폴리오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선 ‘수평적 호텔’과 ‘서촌유희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서촌은 아직까지 ‘동네’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곳이다. 낮은 건물들이 구불구불 골목을 이루고 있어서다. 스테이폴리오는 이곳에 숙박 시설을 운영하며 ‘수평적 호텔’ 개념을 도입했다.


수평적 호텔과 서촌유희 개념도. 출처 서촌유희 홈페이지


통상적으로 호텔은 모든 시설이 수직으로 한 데 모여있는 건물이다. 만약 이 호텔의 각 요소들이 수평적으로 곳곳에 흩어져 있다면 어떨까? 식당, 상점, 카페 등이 숙소 대문을 걸어나가야 있다면? 이러한 수평적 호텔을 묶는 개념이 ‘서촌유희’다. 그렇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서촌의 곳곳을 돌아다니게 될 테니 말이다.


한권의 서점은 이 프로젝트의 한 축으로, 사람들에게 서촌 곳곳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밖에 스테이 폴리오는 편집숍인 ‘서촌도감’과 창작자 커뮤니티인 ‘서촌창작소’ 등을 서촌에서 운영 중이다.)


김완석 씨는 “서촌 주민과 관광객 모두 편하게 들어오고, 또 그들과 밀접하게 만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기 위해 서점을 만들었다”며 “누구라도 편히 들어와 책뿐만 아니라 ‘서촌 맛집 알려주세요’ 등 서촌에 대해 편히 묻고 답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획됐다”고 말했다.


일독일박 풍경. 출처 스테이폴리오


한권의 서점은 서점 공간 큐레이션은 물론, 스테이폴리오에서 운영하는 북스테이(book stay) ‘일독일박’에 비치될 책을 선정하고 있다. 또, 숙소를 예약한 손님들과 소통하면서 자연스럽게 서촌을 알리는 역할도 담당한다.


일독일박 숙박객들은 제공된 쿠폰으로 근처에 있는 바 참(Bar Cham)에서 웰컴 드링크를 마시고, 서촌유희에서 만든 서촌 골목 지도를 보고 주변을 구경한다. 일부 가게에선 일독일박에서 제공한 쿠폰을 제시하면 약간의 '덤'을 받을 수도 있다. 호텔에 묵을 때 숙박객들이 웰컴드링크 쿠폰이나 내부 레스토랑을 이용할 때 할인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




한권의 서점은 서점 자체로도, 수평적 호텔의 컨시어지로도 살펴볼 것들이 많은 공간이다. 이곳은 서촌이라는 동네에 녹아 들어 정체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나가다 우연히 들어오는 사람들보다 "인스타에서 봤어요"라며 부러 서점을 찾는 이들이 늘었다.


아직 수평적 호텔로서 주변과의 관계는 느슨한 편이다. 시작한지 몇 개월 지나지 않았기에, 앞으로 '마을 호텔'로 발전해나갈 수 있을지 이 프로젝트의 향방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인터비즈 박은애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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