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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스머프 Apr 28. 2021

책리뷰2화 : 책 쓰는 책

읽기만 하면 누구나 책을 쓸 수 있다고??

최근에 내 손에 들려 있는 책들은 대부분 실용서였다. 그 책을 쓴 작가는 실용서라고 생각하고 쓰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실용서였다. 왜냐하면 실제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돈은 되지 않지만 나 자신이 세상에 하고 싶은 말들을 할 수 있는 창구로서 열어놓은 -재미를 철저히 상실한- 방송들의 대본을 쓰기 위해 필요한 부분을 찾는 데 사용한 것이다. 그렇게 발췌 형식으로 읽은 책이 수백 권은 되지 않을까 한다.


http://www.podbbang.com/ch/1777510


재미있는 사실은 그 발췌 형식의 독서가 꽤나 많은 양의 지식을 얕게나마 머릿속에 두는데 굉장히 효과가 있었다는 점이다. 어느 분야든 기본 이상의 소양으로 주절댈 수 있는 뻔뻔함이 생겼다. 물론 상대가 깊이 물어오면 뒤로 스윽 물러나 앉게 되지만 어느 분야에 대해서도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보다는 깊이 있는 대화가 가능하다.

그러다가 이런 지식들을 잘 정리하면 하나의 책이 되지 않을까 하는 무모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그러면 가볍게 읽을 만한 지식 큐레이팅 도서를 출품할 수 있을 것이란 꿈을 머릿속에 그렸다. 그런 꿈을 머릿속에 둔 채 서점을 찾았다가 들고 나온 책이 바로 오늘 소개할 '책 쓰는 책'이다.


유시민 작가의 '역사의 역사'처럼 뭔가 역설적인 매력을 풍기는 이 책은 실용서 그 자체였다. 표지 디자인은 원고지를 연상케 했는데, 그 위에는 무서울 정도로 상업적인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읽기만 하면 누구나 책을 쓸 수 있는 책 쓰는 책"

결과적으로 이 책을 제작한 출판사와 작가의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판매 전략은 성공한 셈이다. 결국 내가 사들고 나왔으니.


게다가 이 책의 목차는 아주 죽여줬다. 나같이 책을 쓰고 싶은데, 습작만 하고 주저하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그냥 둘 수 없을 정도로 화려했다. 


"내 삶의 주인으로 사는 최고의 방법, 책 쓰기"

"작가는 책으로 자신을 증명한다"

"책쓰기와 글쓰기는 완전히 다르다"

"문장이 아니라 책의 구조를 만드는 일상 루틴"

"단계별 책 쓰기 실전 노하우"


솔직히 이 정도면 사실 책을 안 쓰기도 어렵다. 수저로 밥을 떠 먹이는 수준이 아니라 입에 넣고 턱을 오물오물해주는 수준까지 가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특히 서점에서 제목에 끌려 책을 대충 훑어보다 이 책을 사들고 나오게 한 문구는 위의 문장 중에 세 번째, "책쓰기와 글쓰기는 완전히 다르다"였다.

나 스스로도 절실히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단순히 글이 모여 책이 된다면 나는 이미 80권 정도는 낼 수 있었다. 글의 양을 보자면 a4 용지에 10pt로 빼곡하게 적어놓은 것만 1000장이 넘는다. 원래 다양하게 글 쓰는 일로 생계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많은 글을 썼지만 책은 한 권도 없다. 그래서 글쓰기와 책쓰기는 다르다는 말에 '완전히' 공감했다.  


하지만 난 이 책을 다 읽고도 책을 쓰지 않았다. 여전히 습작 중이다. 사실 내 개인적인 문제일 확률이 더 크다. 의지박약, 혹은 게으름.


이런 식의 자기계발을 위한 실용서를 다 읽고 나면 늘 드는 감정 중 하나가 바로 위에 한 말과 같은 자기 비하다. 그 감정의 핵심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왜 저들처럼 하지 못 하는가?'다. 독자들이 자책하고 못난 자신을 돌아본 뒤 의지를 다잡고 다시 펜을 잡는 모양새가 이런 책을 쓴 저자들의 의도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처럼 애초에 대강은 알고 있으나 실천하는 방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사람들은 그저 '넌 왜 이 책의 저자처럼 일단 시작해보지 못했니?'라는 질타만 스스로에게 하게 될 뿐이다.


그렇다고 이 책을 쓴 저자의 진정성이나 책 내용의 유용성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철저히 나에게 좀 안 맞았다는 것뿐. 모르긴 해도 이 책을 읽은 누군가는 작가의 길에 들어선 사람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 저자는 작가지망생을 작가로 만드는 강연이나 강의를 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고, 1994년부터 책을 써온 베테랑 저자이다.

요즘에 범람하는 글쓰기 책 작가처럼 일주일 만에 책 한 권쓰기를 권장하는 사람도 아닌 데다 이런 실용서는 처음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로도 스스로를 인문학 저자라고 밝히고 있다. 


문장 하나하나에 정성이 느껴질 정도로 자신이 아는 한 최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 것이라는 걸 의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그도 나를 책의 저자로 만들지는 못했다. 


생각해보니... 이건 분명 내 탓이다. (뭐지? 또다시 스며드는 이 자괴감은?)


알고 보니 저자 김경윤은 나처럼 브런치 작가였다. 실천하는 사람을 비판하려 하는 것 같은 이 글을 쓸 의지가 갑자기 싹 사라진다. 의지박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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