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분씩이면 118개 원소가 머릿속에 들어온다고? 왜 들여놔야 하지?
딱 하나만 묻자. 당신은 원소노트가 필요한가?
나는 필요했다. 이 책 역시 나에게는 실용서였다. 40이 넘은 나이에 중고생이나 볼만한 원소노트를 읽는 것은 다른 목적이 있지 않고서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읽을 계기가 생겨서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나이를 막론하고 흥미로울 것이라 확신한다. 학창 시절에는 그저 화딱지만 나게 하던 화학과 원소주기율표가 이 책을 읽어 가면서 흥미롭게 다가왔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왜 선생님들은 그렇게 꼭꼭 감추고 있었던 것인지 의아하기도 하다.
수소, 헬륨, 리튬이 우주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존재한 원소라는 것을 알았다면, 우주 전체 질량의 90% 이상이 수소와 헬륨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헬륨이 그저 목소리를 웃기게 하거나 풍선을 띄우는 것보다 더 위대한 기체라는 것을 알았다면, 붕소가 바퀴벌레 퇴치를 어떻게 하는지 알았다면... 그렇다면 나는 그때 그 화학 시간에 잠들지 않았을 것이다.(자...장..담할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 제작하는 방송을 준비하기 위해서 보기 시작했다가 단 하루 만에 완독을 해버린 '원소노트'. 한때 너무 답 안 나오는 세상살이가 힘들어서 고등학교 1학년용 수학 문제집을 사서 풀어본 적이 있는데, 생각보다 재밌었고, 결국은 답이 나온다는 사실과 (학창 시절에는 절대 보이지 않았던 그 망할 놈의) '원리'라는 것이 문제를 풀수록 보이는 그 경험이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희열을 가져다주었다.
원소노트를 읽어가면서 느낀 희열도 그와 비슷했다.
"난 문과라서 숫자는 몰라.", "난 문과라서 과학은 몰라.", "난 문과라서 화학은 예전에 포기했어."
이런 말들을 마치 자랑처럼 해대던 내가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조금만 신경 썼더라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재밌게 배울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후회되고 그걸 당연하듯 여겼다는 게 안타깝다.
시쳇말로 머리가 팽팽 잘 돌아가던 어린 시절에는 도저히 보이지 않았던 것이 나이가 들어서는 보이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그건 역설적으로 느려진 머리 회전 속도 때문일 것이다. 너무 빠르면 못 보고, 때로는 안 보고 지나가는 것이 많기 마련이니까.
일찍이 장기하가 말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빨리 가다가는, 죽을 만큼 뛰다가는 사뿐히 지나가는 예쁜 고양이 한 마리도 못 보고 지나치겠네."라고.
그렇게 여유를 잃고 앞만 보고 달리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나라 전매특허인 극단적 입시위주 교육제도 아니겠는가. 그런 입시위주의 교육 때문에 효율성을 따졌고, 더 성적이 잘 나오는 문과를 선택했으며 수학과, 화학, 물리 등과 담을 쌓아도 되는 이유를 받아들였다. 그래 이 모든 건 사회 탓.
하지만 살면서 나는 의외로 수학과 과학이 재밌고, 생각보다 계산적인 사람이며, 감성이라곤 없는 사람이라고 느껴왔다. 물론 평생 역사와 글쓰기 좋아했고, 한때 매일 시를 쓰기도 한 감성파였던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그보다 먼저 우주의 원리에 대해 궁금해하고, 무언가 증명하며 말하길 좋아했으며, 지금도 감성보다는 논리와 수리로 설명하는 것에 더 끌린다.
중고생용 원소노트를 보면서 밀어뒀던 자아를 찾아가는 것 같은 이 느낌은 뭔가 웃기긴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지금 애매모호하고 답이 없는 상황에 지쳐있다면 전혀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 짓이지만 답이 나올 것 같은 걸 해보자. 그곳에 의외의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