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란스머프 Mar 21. 2022

퇴사만 30번, 습관적 퇴사자의 고백

2. 퇴사하는 방법

40대가 된 지금도 만나는 몇몇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들 중 몇몇은 당장이라도 직장을 때려치고 싶다는 말을 한다. 그래서 때려치라고 열과 성을 다해서 조언하면 늘 때려치지 못하는 이유를 댄다. 


아이가 있으면 아이 때문에, 아이가 없으면 아이 없을 때 돈을 모아야 되어서,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으면 현재의 직급이나 형편 때문에... 그만 두지 못할 이유는 수만 가지다.


그러나 30번 퇴사한 사람으로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퇴사하지 않는 이상 퇴사하지 못한다. 

뭔 X소리냐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당신이 일을 너무 잘해서 동종업계의 스카웃을 통해 연봉 대폭 상승을 약속받고 이직하는 것을 노린다면 이야기는 좀 다르다. 하지만 그게 아닌 모든 경우에 퇴사라는 건 준비가 있을 수 없다. 그냥 퇴사하는 거다.


이직을 하려면 퇴사가 필수 코스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퇴사는 뒤로 미루고 이직부터 준비한다. 물론 그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확률상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고, 이 끔찍한 회사를 계속 다녀야 될 이유만 계속 쌓이게 된다. 그러면 떨어지는 자존감과 퇴사에 대한 두려움은 점점 더 커지고, 결과적으로 '드~러워도' 회사를 다니는 결정을 하고 만다.


그러나 이 결정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우선 나 대신 일할 사람의 기회를 빼앗는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바로 내가 퇴사하고 싶은 이 회사는 모두가 퇴사하고 싶을 것이라는 착각이다.


지금 퇴사를 고민하는 당신에게는 너무 싫고 힘든 그 자리가 누군가에게는 '내가 저 사람 정도면, 저 일 정도면 버틸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자리일 수 있다. 물론 그 사람이 실제 일을 해보면 다를 수 있지만 실제로 해보지 않고는 그 고충을 이해하기 힘들다. 


내가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는 그 회사의 실질적인 1인자인 상무이사도

나도 회사 다니기 싫어.
누군 다니고 싶어서 다니는 줄 알아?


라고 말했다. 나는 적어도 그 사람만은 회사 다니는 게 좋길 바랐지만 어쩌면 그 사람이 가장 회사에 진절머리가 나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 사람은 대표 외에 경영진의 최고 자리였고, 40대 초반 나이의 여성이 도달하기 힘든 위치에 있었다. 게다가 하는 일은 적어도 10년간은 인이 박히도록 했을 행정처리가 전부처럼 보였다. 그 사람은 대표의 허락 없이는 아무리 작은 결정이라도 내리지 않는 상무였고, 부차장급, 심지어 과장, 사원급의 일도 대체로 "난 아무것도 몰라."라고 말하는 게 전부였다. 그래서 나는 저 사람보다 쉽게 돈 버는 사람, 혹은 편하게 월급 받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했다.


하지만 그 자린 나의 생각보다 훨씬 고되었던 것 같다. 어느 날, 내가 진행하던 일이 어이없게 돌아가는 것을 느끼고 상무를 찾아갔다. 어차피 얘기해 봤자 해결되는 것은 없을 것을 알았지만 조직에 맞는 절차가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 대표가 내린 결정인 걸 알면서도 - '어떻게 이런 결정을 할 수 있냐', '나는 이렇게는 일할 수 없다'라고 따졌다.


그 말을 듣고 그 사람은 너무도 진심 어린 얼굴로 "나도 회사에서 하기 싫은 일해요. 어떻게 회사에서 하고 싶은 일만 해요? 나도 아침마다 진짜 나오기 싫고 일도 하고 싶지 않지만 참고하는 거예요."라고 외치듯 말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합리적인 방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얘길 했는데, 그 사람은 회사에서는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 한다는 얘길 꺼내서 이야기의 궤도를 벗어났다. 나에게는 그냥 그 사람이 평소에 누구라도 잡고 하고 싶었던 하소연처럼 들렸다.


세상에는 직접 당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또 깨닫는 순간이었다. 저 사람도 하고 싶지 않았구나. 저 사람도 때려치고 싶구나.

그리고 이유는 또 있다. 당신이 핑계 댈 때 사용하는 상대가 느낄 비참함이다. 애들 때문에, 아내 때문에, 혹은 남편 때문에, 부모 때문에... 이렇게 '때문에'의 제물이 된 그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당신을 괴롭히는 상사와 회사일의 동조자가 되었다. 어느 순간 당신이 정말 생의 위기까지 몰렸을 때, 당신은 회사보다 당신을 회사에서 나오지 못하게 한 그 사람들을 원망할지도 모른다. 그 사람들에게 과연 물어봤는지 한 번 되묻고 싶다.


실제로 한 친구에게 되물었는데, 그 친구는 아내에게 자신의 심정을 전했고 아내의 대답은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 나는 그게 좋아."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 친구는 말이 그렇지 막상 그만두면 다를 것이라며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나는 그것이 얼마나 상대를 무시하는 말인지 말해 줬지만 그 친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대화의 시작은 

나 정말 죽고 싶을 만큼 회사 다니기가 싫어. 

였다.


결과적으로 그 친구는 자기 목숨보다도 가족이 소중하다는 말을 했다고 여길 테지만, 실상은 가족들이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거였다. 그 친구는 목숨이 달린 정도로 생계가 막막한 상황도 아니었다. 호주에서 살면서 대출이 많다고는 하지만 12억, 9억짜리 집을 두 채 가지고 있었고, 복지제도가 잘 되어 있어서 밥 굶을 일, 아이가 교육을 못 받을 일이 없다고 수차례 나에게 말했다. 또한 기본 급여가 세서 몸을 쓰는 일을 하면 얼마든지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자신은 죽음을 생각할 만큼 힘들지만, 퇴사하면 부담이 될 대출금을 갚기 위해 집을 처분할 생각도 없었고, 전혀 다른 일로 전향하고자 하면서도 아무것도 준비하고 있지 않았다. 그 친구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진중하고, 생각이 깊은 친구여서 허투루 죽을 만큼 힘들다는 말을 할 리가 없었다. 


자기가 죽으면 대출금이고 집값이고 다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녀석은 계속 

얌마, 쉽지가 않아. 말처럼...

이라고만 반복해서 말했다.


이제 좀 퇴사하지 않으면 퇴사하지 못한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을까?

사람은 자신을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제일 모른다. 어쩌면 나는 죽을 만큼 싫은 회사를 목숨을 걸고 다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목숨 걸지 말고 퇴사하자.


뒤는 어떻게든 살아지니까.


작가의 이전글 퇴사만 30번, 습관적 퇴사자의 고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