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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스머프 May 15. 2022

퇴사만 30번, 습관적 퇴사자의 고백

3. 집안일의 벽

예전에 사회 운동을 하다가 너무 지쳐버려서 그 계(?)를 떠난 한 여성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꽤나 심도 깊은 이야기였고, 그 이야기는 아주 당연하게도 차에서 이루어졌다. 보통 이성과의 대화는 운전하면서 심도가 깊어지기 마련이니까.


그때 그 여성은 남성들이 집안의 생계를 이어가야 한다는 암묵적인 짐을 지고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야기인즉슨 "누가 자기더러 먹여 살려달라고 했나?"였다.


나는 그 여성의 이야기에 100% 동의한다. 내 머릿속의 인식은 요즘 시대에 남자가 돈 벌고 여자가 살림한다는 식의 이미지가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믿을 수 없다는 쪽에 가깝다. 그런데 문제는 이상과 현실의 차이다.


퇴사자가 된 이후 나는 일을 얻었지만 일부러 재택근무만 얻었다. 집에서 가만히 컴퓨터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내가 퇴사 전에 꿈꾸던 일의 형태였고, 그런 일을 얻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알고 보니 자율성이 매우 떨어지는 인간이었고, 집에서 일하는 것은 자질구레한 집안 일도 병행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집에는 강아지라는 요상한 생물이 둘이나 있다.

왼쪽 카이, 오른쪽 망고 ㅋㅋ

이 녀석들은 내가 없으면 그냥 잠만 자지만 내가 집에 있으면 두 시간마다 뭔가 달라고 떼를 쓴다. 자질구레한 집안일이란 강아지 돌봄이 70% 정도 차지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 녀석들을 무시하고 내 작업방으로 들어가 글을 쓰려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 내가 없는 것처럼 인식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녀석들은 꽤나 영리했다. 문을 닫고 들어간 지 3분도 지나지 않아서 끼잉 소리와 문을 박박 긁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5분 동안 가만히 참다가 결국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바닥이 미끄럽지 않게 매트를 깔아 주어야 했고, 녀석들이 좋아하는 쿠션과 이불을 매트 위에 올려주어야 했다. 나의 아내는 그 모습을 '아방궁'이라고 불렀다. 녀석들이 아방궁에 들어와서 하는 일이라곤 그냥 자는 것뿐이었다. 간혹 내 무릎에 앉겠다고 보채고 뭔갈 달라고 보채는 시간이 있지만 그 외에는 그저 잔다.

아방궁이란 건 이름에서 느껴지는 포스와는 달리 별게 없다.

그냥 잘 거면서 왜 그렇게 들어오겠다고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잠자리라면 내가 있는 방이 아니라도 마련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녀석들은 늘 그런 패턴을 유지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의례히 아내가 출근하면, 나는 아방궁을 만들고 녀석들은 아방궁에서 잠을 잔다.


그렇게 강아지들과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아내를 주 보호자로 여기던 녀석들이 점차 나를 주 보호자로 여기게 되었다. 물론 주말에는 아내 옆에서 떠나질 않고 꼭 붙어있지만.


사실 가장 큰 문제는 나다. 녀석들이 너무 귀여워서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냥 웃음이 나고... 귀여워서 끌어안고 싶고... 뭐 그렇다. 그러니 일에 집중하기가 참 어렵다.

역시 ㅎㅎ

또 하나 큰 문제는 자질구레한 집안일이 강아지 케어만이 아니라는 거다. 집에 있으면 무조건 삶의 흔적이 남는다. 경험상 남자가 집에 있을 경우 그 흔적은 더 많다. 나는 내 흔적이어서 크게 문제될 게 없지만 직장에서 돌아온 아내는 그 흔적들이 달갑지 않다. 흔적의 대부분은 털 종류인데, 아내는 그 털을 집어내는 선수였다. 덕분에 나는 틈만 나면 청소기를 돌려야 한다.


게다가 강아지들의 배변판을 갈아주고, 간식도 주고 밥 먹은 후 설거지하고 하면 하루동안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서너 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책상 앞에 앉는다고 바로 일이 되는 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해서 하는 말이다.

이런 것들을 다 핑계로 치고 넘어가더라도 최종적으로 남은 문제가 있다. 결정적으로 나는 집안일을 아내보다 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것을 성차별적 발언이나 전통적 성역할 규정에서 나오는 고정관념쯤으로 판명 내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아내보다 집안일을 못한다.


결혼 후 삼 년이 지난 지금까지 언제나 설거지는 내 담당이었지만 그럼에도 아내는 나의 설거지를 여전히 탐탁지 않아한다는 게 그 증거이다. 게다가 각종 털을 찾아서 버리는 데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나는 아무리 보려고 애를 써도 보이지 않는 터럭을 귀신 같이 찾아내서 보란 듯이 모아 놓는데 그 양이 상당하다. 길이를 봐서 나에게서 떨어졌다는 것이 분명한 것들이었다.  

나는 결정해야 했다. 집안에서 계속 터럭을 떨어뜨리면서 아기(강아지)들과 함께 행복하지만 집중이 안 되는 시간을 보내야 할지, 아니면 어디라도 나가서 일을 하고 마친 뒤에 집에 들어와야 할지를.


나는 후자를 택했다.


바야흐로 퇴사자가 집에서 나오는 순간이었다.


퇴사자 아웃 더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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