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조선의 여성①
내가 좋아하는 역사는 이미지가 아니다. 그것은 상상이나 상징이 아니었고, 또 일부러 주입하지 않아도 인간세상이라면 그럴 법한 이야기들이다. 따라서 역사를 알아가며 가장 크게, 그리고 자주 깨닫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미지를 줄기차게 전 사회적으로 주입받은 역사가 있다. 바로 조선시대 여성의 역사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여성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이미지를 한 번 생각해보자. 일단 억압이 심하다. 게다가 한이 서려있다. 또 주체적이지 못하고 수동적이며, 일부종사一夫從事 라는 신념을 품고 은장도를 가슴 깊숙이 간직한 여성상이 떠오른다. 조선시대의 세워진 수많은 열녀문은 주체적이지 못한 여성들이 세상을 떠난 남편만 바라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혹은 완고한 시댁에서 강제로 목숨을 끊게 한 여성억압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전제하자. 그런 면이 아예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 예가 있고, 여성에 대한 억압이 굉장히 심했던 예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예들은 조선시대 여성의 아주 단편적인 모습만을 보여준다는데 문제가 있다.
조선시대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크게 달라진 계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다. 이것은 큰 전쟁을 치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지극히 자연스런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큰 전쟁을 치르면 아무래도 남자들이 많이 죽기 때문에 성비가 여성쪽으로 치우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여성의 사회적 지위도 낮아진다. 임진왜란에서 죽은 사람은 약 30만 명이라는 집계도 있고, 150만 명에 달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찌됐든 인구가 1,500만도 채 안됐던 시대에 엄청난 인명이 한꺼번에 사망한 것, 그리고 그 대상이 남성에 편중되어 있다는 점은 이후 사회 변화를 이끌었다. 임진왜란 이후 남성이 부족해서 혼인하지 못하는 여성의 수가 많아졌다는 기록은 많다.
필자는 바로 며칠 전 지금으로부터 9년 후면 남성과 여성의 인구 비가 역전된다는 기사를 보았다. 또 20년 후에는 성비가 상당히 틀어져서 100:99.9가 된다는 기사도 있었다. - 이 기사를 잠시만 다시 생각해보면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더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 임진왜란 이후 성비는 최소 10:9이상으로 벌어졌을 것이라고 추계하고 있다. 100:99.9로 남녀성비가 바뀔 것이라는 결과에 마치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보도하는 행태를 보자면, 임진왜란 이후 성비 불균형이 얼마나 사회에 극심한 변화를 가져왔을지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잠깐 다른 길로 빠져서 여성과 남성에 대한 성비가 왜 자연 상태에서 남자가 더 적어지는 쪽으로 가는지 생각해보자. 기사에 따르면 남아선호 사상이 사라져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데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남아선호사상이 사라졌다고 해서 여아선호사상이 생겨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왜 남아가 꾸준히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을 할까? 물론 그동안에 추이를 살펴본 결과 점차 남아가 줄어왔다는 결과가 도출됐고, 그 추세라면 10년, 혹은 20년 뒤 성비 역전 현상이 날 것이라는 결론을 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남아선호사상 없이 가만히 놔둘 경우 여성이 더 많이 태어나거나 덜 죽는다는 전제가 없이는 성립될 수 없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이 원래는 모두 여성의 몸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사람은 염색체의 영향으로 성별이 나뉘는데, 기본적으로 X염색체 하나를 가지고 있다. 그러다가 X염색체가 합쳐지면 여성으로, Y염색체가 합쳐지면 남성으로 변한다. 즉 인간의 기본적 특성은 여성에 가깝다는 뜻이다. 남성은 젖꼭지가 필요 없지만 장식처럼 달려있는 이유는 바로 인간이 본래 여성신체를 기반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남자의 갈비뼈에서 여성이 탄생했다는 성경과는 정반대인 셈이다.
따라서 외부요인이 없는 이상 여성이 더 많은 것이 자연스럽다. 신체적으로도 남성은 아이를 잉태할 수도 없고, 생후에도 직접적으로 양육할 수 없다. 남성은 아이를 임신한 여성을 잘 보살피고, 잘 양육할 수 있도록 돕는 일만을 할 수 있다. 그런 일은 연대하는 집단을 키우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자연 상태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많을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농경사회가 시작되면서 남성의 역할이 조금은 중요해진다. 힘들여 일할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도 남성의 비율을 현저히 높일만한 이유는 안 된다. 시골에 가서 직접 보면 알 수 있지만, 아주 많은 경우 할머니가 농사일을 거의 다 한다.
흔히 원시부족의 남성들이 높은 지위에 있는 이유가 사냥을 잘해서 라고 여기는 경우가 있는데, 사냥으로 얻는 식량은 거의 가뭄에 콩 나는 수준이고 주식은 언제나 여성들이 채집해온 식물이나 벌레들이었다. 인류가 존재한 대부분의 시간동안 남자는 여성에 비해 적었고, 그것이 합리적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300만여년 남짓 되는 인류의 존속기간동안 남성은 아이를 가지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일견 힘이 센 자가 많은 여성을 차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건강한 유전자를 선호하는 여성의 선택이라는 분석이 더 합리적이다.
다시 본래의 이야기로 돌아오자. 전쟁 이후 붕괴된 남녀 성비 때문에 일부다처제에 해당하는 처첩제도가 활성화되기 시작한다. 이 당시의 남자 기근 현상을 배경으로 나온 소설이 바로 ‘가루지기뎐’, 일명 ‘변강쇠뎐’이다. 쓰다보니... 잡설이 너무 길어서 글을 오늘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 해야겠다.
음... 걱정마. 내일은 곧 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