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첫 화의 법칙(3) - 후킹으로 독자의 기대감을 증폭시켜라
첫 화에서는 정말 많은 게 결정된다.
물론 한 작품을 클릭해서 보기까지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제목이다.
제목은 웹소설을 보러 플랫폼에 들어온 사람에게 들이미는 얼굴이자 명함이기 때문이다.
제목을 통해 신원을 확인한 유저들은 안심하고 제목을 클릭해서 작품에게 한 발자국 다가선다.
웹소설에 훈련된 독자들은 제목만으로도,
아, 이 작가는 웹소설 좀 써본 작가구나.
중간에 허무하게 그냥 안 써버리거나
갑자기 휴재하고 도망가지는 않겠네.
라는 기대를 한다.
더도 덜고 말고 딱 그 기대 정도만 충족시켜 주면 유저는 독자가 될 준비를 한다.
애초에 제목을 클릭했다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취향과 작품이 맞아떨어졌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에 그다음부터는 글이 재밌기만 하면 된다.
물론 어느 작품의 독자가 되기로 결심하는 건 그리 쉬운 게 아니다.
보통 독자들은 1화를 클릭하기 전에 시놉시스를 한 번 본다던가, 소제목을 확인한다던가 하는 절차를 한동안 가지고 난 다음, 신중하게 접근한다.
그러다 일단 1화를 눌렀다면, 비로소 작가와 독자 간의 게임이 시작된다.
작가는 어떻게든 2화를 보고 싶다는 감정이 들도록 유도를 하고, 독자는 어떻게든 이 글을 계속 보지 않으려는 핑계를 만들려고 한다.
그런 베테랑 독자에게는 1화 안에도 곳곳에 하차구간이 도사리고 있을 가능성이 충분하고, 이걸 찾아 헤매는 게 바로 웹소설 독자들의 특징이다.
"에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하차구간 찾으려고 글을 보다니... 시간 아깝게 왜 그런 짓을 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작가 입장에서는
독자가 정말로 하차구간만
찾아 헤매는 사람들로 느껴지곤 한다.
실제로 비축분이 떨어진 후 실시간 연재를 하게 되는 작가는 거의 많은 확률로 독자들이 점점 감소되는 현상을 겪게 된다.
분명 같은 작가고, 특별히 달라진 점도 없어 보이는데, 실시간 연재가 시작된 시점부터 독자들은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정말로 작가의 사정을 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물론 실시간 연재가 반드시 나쁜 결과로 이어진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글을 두 번 이상 들여다보는 시간이 없어진다는 건 작가에게는 재앙과도 같다.
어떻게든 그런 사정을 독자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실시간 연재 5편 안에 상당수의 독자들이 떠나는 걸 목도해야 하는 것이 웹소설 작가의 운명이다.
그래서 비축분은 가능한 많이 쌓아 놓는 것이 좋지만...
그게 말처럼 쉽진 않다.
1화 얘기로 다시 돌아가자.
어떻게 보면 웹소설의 모든 회차는 1화다.
회차마다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고 결에는 반드시 다음 편을 보고 싶게 하는 후킹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단행본으로 출시된 웹소설이 좀 어색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회차별로 소비되던 글을 한 권의 책으로 소비하게 되면 너무 지겨울 정도로 후킹이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결국 글이 전체적으로 상당히 촌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왜 이렇게 오버야?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플랫폼 연재를 하는 동안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후킹 없이 끝내면 그게 문제가 되어 버린다.
후킹의 유무로 다음 편에 대한 기대감이 현저하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심한 경우 연독률이 반토막 나는 경우마저 생긴다.
후킹 한 번 안 넣었다고,
그때까지 읽던 소설을 안 읽는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그렇다.
내가 지금은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볼지언정
후킹을 넣는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면
당장 하차하겠다!
하고 독자들끼리 무슨 결의라도 한 것 마냥.
독자들은 기대감을 매 회 원한다.
그중에서도 기대감에 대한 염원이 가장 큰 회차가 바로 1화다.
따라서 작품 전체에 대한 기대감을 최고조로 만들고 끌어나가야만 성공적인 1화가 완성된다.
하나의 예를 들어서 좀 더 쉽게 설명을 해보겠다.
지금 문피아라는 플랫폼에서 유료 작품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전능의 뇌를 얻었다"의 첫 화를 보자.
우선 맨 첫 문장이 인상적이다.
나는 내가 태어난 날을 기억한다.
- "전능의 뇌를 얻었다" 중에서
이후에는 주인공이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음을 알게 해주는 설명이 이어진다.
주인공은 첫 화부터 큰 이유도 없이 비범하다.
만 2살 때 이미 글을 익히고 백과사전을 읽으며 지식을 흡수한다.
그리고 맨 마지막 문장은,
부부는 흐뭇한 얼굴로 책을 탐닉하는 서하를 바라보았다.
- "전능의 뇌를 얻었다" 중에서
이 문장을 보면 독자들은 서하라는 주인공이 앞으로 어떻게 커갈지, 얼마나 많은 지식을 얼마나 빠른 시일에 습득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이 정도는 상대적으로 노골적이지는 않은 후킹이라 하겠다.
[음... 여담이지만 마지막 문장은 비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문장이 "부부는 - 바라보았다.", "흐뭇한 얼굴로 책을 탐닉하는 서하를"로 구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면 서하가 흐뭇한 건지, 부부가 흐뭇한 건지 헷갈리는 문장이 된다.
혼동이 없게 하기 위해서는 "부부는 흐뭇한 얼굴로 서하를 바라봤다. 하지만 서하는 책을 탐닉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렇게 바꿔주는 편이 더 명확하고도 기대감을 분명하게 줄 수 있는 표현이 될 거다.]
이 작품은 유료 작품 중 1위를 수십 일째 수성하고 있는 작품이다.
나 같은 나부랭이 작가의 조언 따위는 전혀 필요하지 않을 만한 작품이라는 거다.
하지만 본업이 글을 편집하는 일이다 보니 이런 글을 보면 걸고넘어지고 싶어진다.
무튼...
이 글의 1화에는 서하라는 주인공이 어떤 계기도 없이 그냥 태어난 순간부터 모든 걸 기억하고 이해할 수 있는 뇌를 가지고 태어난다.
훈련된 웹소설 독자들은 1화를 보면서 작가가 많은 것을 생략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려 한다는 걸 입력한다.
1화에서 주인공의 천재성을 확실히 드러내면서 다음 화에는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까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 1화에는 120개의 독자 코멘트가 달렸다.
대부분이 '잘 보고 간다'는 인사말이지만 주목할 만한 코멘트가 몇 있다.
- 전능 걸리면 일단 멈칫하는데 이것도 양산형 소설인가
- 쌓이면 볼랬더니 30화도 안 된 이 시점에 유료화라니 ㄷㄷㄷㄷ
- 1화 흡입력 지리네 뭔가 가족이 계속 행복한 게 불안한데 설마 사고나서 다 죽진 않겠지?
- 천재물이라는데 전지가 아니고 전능이라서 뭔가 제목과 괴리감이 있어서 안 읽는 중인데 괜찮을까여...
...
이런 댓글을 보면 코멘트를 쓴 독자들이 얼마나 1화에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지 드러난다.
이들에게는 분명 서로 공유하고 있는 '특정단어'나 '스토리라인', '장르적 특성' 등이 존재한다.
'전능'과 '전지'의 차이라든지, 양산형 소설의 특성, 유료화 시기에 대한 이해 등을 모두 알고 있는 거다.
웹소설 독자들은 이렇게나 훈련되어 있기 때문에 어설프게 고인물 작가 코스프레를 하면 금방 들통이 난다.
이런 단어의 뜻을 모르면 작가는 닥치고 있는 게 좋다.
엉뚱하게 해석해서 이상한 댓글을 달면 작가의 웹소설 이해도가 낮다는 걸 들켜버리기 때문이다.
독자와의 소통? 그런 건 안 하는 게 좋다.
다만 댓글을 꼼꼼히 읽어두는 건 작가의 책무 같은 거다.
물론 악플에 상처받을까 아예 안 읽는 작가도 있다고 하지만, 적어도 나는 댓글을 읽고 독자들이 말하는 바에 귀를 기울이려고 애를 쓴다.
이렇게 고인물 독자들이 가장 꼼꼼히 보는 회차가 바로 1화고, 그 1화에서 2화로 고인물 독자들이 넘어가는 순간 연독률은 보장된다.
업계에서는 보통 연독률이 70% 이상 나오면 그 작품은 일단 잘 될 확률이 있다고 본다.
이렇듯 저번 글에서 말했듯이 중요한 건 연독률이다.
웹소설 작가가 연독률을 위해서 후킹을 넣는 건 어쩌면 독자에 대한 예의와도 같다는 말을 남기면서...
그럼 오늘은 여기서 이만.
후~ 길게도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