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퇴사자가 웹소설 작가로 데뷔함

11. 기대감의 법칙(2)

by 노란스머프

* 이 글의 이미지는 제미나이에서 생성했습니다.

앞서 웹소설에서의 기대감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기대와는 다르다고 밝힌 바가 있다.


일반 장르 소설에서는 소위 빌드업이라는 게 필요한 경우가 많다.

물론 웹소설에 빌드업이 없다는 얘기는 전혀 아니다.

사실 아주 촘촘한 빌드업이 필요한데, 이 빌드업은 절대로 느리거나 길어선 안 된다.

설정을 설명하느라 회차를 소비하는 것만큼 답답한 짓은 없다.


소설 서사의 구조를 아주 단순화해서 설명하면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라 할 수 있는데, 웹소설의 서사는 발단(전개, 위기)-절정-결말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Gemini_Generated_Image_52swdy52swdy52sw.png 웹소설의 기대감은 우상향!

발단에 이미 전개와 위기가 다 들어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웹소설 식의 구성으로 한단계를 추가하자면, 발단 다음에 '기대'가 추가될 거다.


발단 - 기대 - 절정 - 결말


이미 완결된 내 소설을 통해서 마음껏 스포를 하며 설명해 보자.


https://novel.munpia.com/402121


우선 이 소설의 제목에는 웹소설 독자들이 기대하는 바가 몇가지 들어있다.


일단 '1950 미국에서'이라는 말에는 이 콘텐츠가 이른바 '검은 머리'류의 소위 '국뽕 콘텐츠'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일반 개인들은 국뽕을 좋아하기도 하고 또 싫어하기도 할 거다.


하지만 웹소설 독자들은 대체역사라는 장르에서 무조건 국뽕을 기대한다.

특히 외국에 나가면 그건 100% 국뽕을 말하는 콘텐츠여야한다.


분명 국뽕 콘텐츠를 좋아하지 않아서
이 소설을 외면하는 독자들은 있다.
그러나 '1950 미국에서'이라는 문구에서
국뽕을 기대하지 않는 웹소설 독자는 없다.


자, 여기서 웹소설의 기대라는 게 무엇인지 좀 구체적으로 느껴질 거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기대는 '바람', '희망', '설렘' 등의 단어를 내포하고 있다.

Gemini_Generated_Image_zehd2szehd2szehd.png

그러나 웹소설의 기대는 그것보다는 '클리셰', '코드', '(장르적)특성'과 같은 단어와 더 잘 어울린다.

'1950 미국에서'라는 단어의 조합만 보고도 떠올리는 웹소설 독자만의 이미지가 있다는 거다.


따라서 그 단어를 쓰는 순간, 작가는 국뽕을 줘야하는 의무가 생긴다.

나는 그 부분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기획 단계에서 이미 흔들렸다.


아마도 웹소설 독자 생활이 길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오류일 거다.

웹소설의 법칙을 기계적으로만 습득한 폐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심지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기대감을 완전히 이해하고 체화하지는 못한 상태다.


다음으로 남은 제목을 보자면 'k-pop식 매니지먼트'인데, 여기서 국뽕이 확정된다.

그리고 확정되는 설정 몇 가지가 더 있다.


주인공이 회귀한 능력자이고, k-pop 아이돌 육성 시스템에 대해 빠삭한 인물이자 매니지먼트를 통해 승승장구할 것이라는 소설 전체 내용까지... 독자는 제목을 보는 순간 한꺼번에 이 모든 걸 머릿속에 그린다.


따라서 제목이 정해진 순간 작가는 출사표를 던진 셈이고,
이 제목에 맞는 이야기를 이어가면 그만이다.

참 쉽죠잉?

sticker sticker


그러나 당시 신인작가였고, 여전히 신인작가인 나는 이런 생각을 이 소설을 연재하는 내내 전혀 하지 못했다.

결국 내 작품에서 독자들이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던 거다.


당시 나는 웹소설 제목을 그냥 어그로 정도로만 여겼고, 일단 어그로로 끌어들여서 독자들이 읽었을 때 재밌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게 녹록치 않았다.


첫 번째, 내가 쓰면서 방향을 잃었다.

두 번째, 기대감이 충족되지 않은 사람들이 댓글에 "제목과 내용이 전혀 상관 없음."과 같은 말을 남기기 시작했다.

세 번째, 주인공이 아무 능력도 없이 회귀한 것만으로 부를 얻는 것이 부당하다는 평이 늘었다.


다행히 이런 현상들이 이어지면서도 나름의 독자들이 확보되고, 추천글이 붙으면서 독자가 늘어나자 유료화까지 이어졌지만 어차피 벌어질 일은 벌어지는 법.


그 중요한 시기에 내가 완전히 잘못된 길을 걷게 된다.

독자들이 기대하는 길을 가기보다 내가 쓰기 좋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것이다.


그 이름도 유명한 '설명충'이 등장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쏟아냈고, 소설은 갈 길을 잃었다.


그 후에는 절단신공이니 어그로니 뭐니 다 통하지가 않았다.

기대감에 대한 배신의 대가를 톡톡히 치른 거다.


나중에 좀 깨달은 바가 있어서 얘기를 다시 재정비한 후에는 떠나간 독자들을 일정 정도 끌어들이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고, 또 마침 기안84가 출연한 '태어난 김에 음악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이 나오면서 내 소설이 좀 관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러한 노력은 부질없는 것이었다.

일단 독자를 모으는 것과 모인 독자들이 계속 읽게 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일이라는 걸 증명하고는 초라하게 끝을 맺었다.


나는 주인공이 한국인으로써 미국 땅에서 k-pop 아이돌 육성 시스템과 같은 매니지먼트를 통해 스타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렸어야 했지만, '팝의 역사교과서'만 만들고 끝을 냈다.

Gemini_Generated_Image_l57f2l57f2l57f2l.png

제목을 다르게 하든지, 아니면 내용을 다르게 하든지 했어야 했다.

아니... 솔직히 내용을 바꿔야 했다.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멀리 온 후였고...


되짚어 보자면, 이 소설을 쓰기 위해 나는 팝의 역사를 공부할 것이 아니라, 아이돌 육성 시스템을 공부해서 적용했어야 했다.


그럼 국뽕이라는 요소도 채울 수 있었고, 'k-pop식 매니지먼트'라는 말에도 충실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연재 당시 내 소설에서 올드팝을 소개하는 것에 '혼자만' 엄청난 재미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원래 역사에서도 유명한 성공을 거둔 가수들을 등장시키고는 예정된 성공의 과실을 따먹기만 하는 주인공을 만들어 버렸다.


물론 그들이 원래 역사에서처럼 비극적인 삶을 살지 않게 해주는 역할을 하긴 했지만 그건 한계가 분명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런 스타들의 비극적인 삶이 있었기에 그들의 곡이 더 위대한 평을 받게 되는 면도 있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일단 소개하기 바빴다.


처음 50화까지의 내용은 독자들의 흥미를 끌 요소가 있었다.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희대의 반항아를 모델로 삼았으니 그의 역사를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재밌었으니까.


제목에서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주지 못했음에도 독자들의 평이 좋았을 정도.


하지만 50화 이후의 이야기는 너무 설명이 많고, 가수에 대한 작가 스스로의 애정과 지식이 떨어지다보니 글은 많되 재밌게 읽을거리는 줄어드는 현상이 일어났고, 그러자 바로 "제목과 내용이 전혀 상관 없음."이 등장했다.


엘비스 프레슬리 때만큼의 임팩트가 없는데 웹소설의 법칙조차 지키지 않고 설명만 해대니 잘 될 수 없었던 거다.


내 작품을 너무 디스하다보니 우울해진다.


그래서 오늘은 여기까지.

sticker sticker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