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분주 Apr 10. 2023

재테크 아닌 죄테크

61

백수 된 지 8개월 차가 되었다.

퇴직금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지만 퇴직금이 바닥날 때쯤 다시 일을 하겠다고 퇴사 전부터 스스로와 약속을 했기에 퇴직금을 아껴야지만 오-래 길-게 백수로 쉬며 놀 수 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놀고먹는 삶이 이렇게 꿀일 줄이야.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욱더 격렬하게 더 가만히 있고 싶다. 


이왕 놀기로 마음먹었으니 쥐새끼처럼 퇴직금만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밤낮이 바뀐 꿀 같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있는 돈을 아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 아이디어는 집에서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비트코인 채굴하듯 소소한 금액을 어디선가 캐내는 것이다. 일명 집구석 경제활동 aka 짠테크.


첫 번째, 외출을 하려면 머리를 감아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안외출 하는 선에서(머리 감기 너무 귀찮... ) 돈을 벌어보도록 하자. '짠테크'를 검색하니 걸으면서 돈을 번다는 캐시워크가 제일 많이 나왔다. 예전에 이 어플을 깔까 말까 하다가 핸드폰 화면을 켜면 제일 먼저 보이는 캐시워크 화면에 '어머 저 여자 하루 100원 벌라고 핸드폰 겁나 흔드나 봐.'라 생각할까 봐 괜한 자존심에 깔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내 폰을 쳐다볼 남이 없으니 당당하게 쉐이킷 쉐이킷.


원래는 바깥에서 정말 걸으며 건강도 챙기고 돈도 모아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머리를 감아야 하니 집안에서 티브이를 보면서 그냥 핸드폰을 허공에 마구 흔들어댔다. 처음에는 숫자가 퐝퐝 올라가는 게 재밌고 손목 스윙만으로 하루 100원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쪼구맣고 소... 소듕한 나의 100원' 싶었는데 며칠 흔들어대 보니 손목터널 증후군이 생길 것처럼 욱신거렸다. 이윽고 몇 백 원 벌자고 몇 천 원짜리 파스를 사는 지경이 돼버렸다. 그래서 최대한 쉽고 편하게 무노동으로 100원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유레카! 난 정말 똑똑해.

치솓아라 나의 숫자용병들이여. 마구 올라라.

근데

안마기 전기세가 더 나왔다.



두 번째, 요즘 야채과일값이 많이 올랐다. 그렇다고 안 먹고살 순 없으니 집에서 자급자족으로 해결해 보기로 했다.

운 좋게 지인한테서 방울토마토 모종 2개를 얻었다. 집에 아무것도 없으니 이왕 소작농을 하기로 마음먹은 김에 장비는 있어야지 싶어 다이소에서 흙, 삽, 장갑, 화분을 샀다. 총 9천 원 들었다. 배보다 배꼽이 큰 것 같은 애매한 기분이었지만 유기농으로 (...?) 키워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끝까지 해보기로 했다. 화분에 모종을 담고 흙 퍼서 넣고 물 주고 햇빛이 잘 드는 볕에 놔뒀다. 며칠이 지나니 열매가 맺혔고 점점 키가 커졌다. 더 높이 자랄 것 같아 급하게 다이소에서 어묵꼬지 같은 걸 사 와서 옆에 꽂아두었다. 쓸데없는 소비 2천 원 추가요.


이런. 점점 잎이 노랗게 변하더니 초록색의 열매들이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그래도 그나마 몇 개는 조금씩 커지고 싱싱하게 자랐다. 왠지 영양분을 주면 더 크고 많은 열매가 맺을 것 같아서 다이소에서 영양제를 샀다. 천 원 또 멍청소비 추가요. 그래도 마트에서 사 먹으면 비싸니 집에서 길러먹는 편이 훨씬 더 저렴하다...라고 착각했다.


며칠 후, 빨갛고 맛있게 익은 방울토마토가 방울방울 매달려 수확시기가 다가왔다는 걸 시각으로 알려줬다. 드디어 나의 인생 첫 내돈내수확 방울토마토! 자급자족의 끝판왕! 공기 좋은 집에서 직접 키운 유기농 신선한 과일!

응. 고작 5개.

장비 구매비 12000원 + 최저임금 노동비 9620원 = 21620원짜리 토마토! 1알에 4324원!

인도네시아 고양이 변에서 추출한 루왁커피 한알보다 더 비싸고 작고 소중한 나의 첫 농작물.

심지어 맛도 없다! 


으헤헤헤헹ㅎㅎ헤


세 번째, 동네 주민센터에서 우유갑을 가져오면 1kg당 쓰레기봉투 2개와 교환해 준다 했다. 재활용으로 지구를 아낄 수 있다는 생각에 부지런히 우유갑을 모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우유갑은 깃털처럼 가벼웠고 1kg를 만들려면 적어도 큰 우유를 35개 정도 마셔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왕 시작한 거 우유갑이 쓰레기봉투로 바뀌는 짜릿함을 느끼기 위해 나는 평소 마시지도 않는 우유를 물처럼 마셨다. 쓸데없이 숨 쉬듯 우유를 마셨다. 신생아로 돌아간 것처럼 하루종일 우유를 씹고 뜯고 맛보고 마셨다. 이것도 모자라 괜히 아파트 쓰레기통 근처를 왔다 갔다 배외하면서 버려지는 우유갑이 없는지 기웃거리기도 했다. 


몇 주 동안 우유갑 1kg를 모으기 위해 몇 만 원 치의 우유를 과도하게 무리하여 마셔댔다. 드디어 목표 무게 1kg가 조금 넘은 1.2kg 도달성공. 얼른 주민센터에서 우유갑을 쓰레기봉투 2장으로 바꿔 받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상하게 기분이 찝찝했다. 호구가 된 기분이었다. 기분 탓이겠지. 비록 몇 만 원을 썼지만 어쨌든 쓰레기봉투 2개를 얻었쨔나 헤헤 900원 벌었다. 나 완전 알뜰한것 같아.

탕-

기쁘지만 기쁘지 않아.




결론은

소비를 해야지 나라 경제가 돌아간다.

그러므로 그냥 나는 돈 쓰면서 살아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3분만 투자하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