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모든 일에는 원인이 반드시 존재한다고 맹신한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엄마의 개똥철학 덕분에 몇 년 동안 내 귀에서 피가 날 정도로 지겹도록 듣는 잔소리가 있다. 그것은 나의 염색.
나에게 닥친 모든 고난과 시련의 모든 원인은 단 하나, 나의 염색 때문인 것이다.
어릴 때부터 염색을 자주 했다. 머리카락이 워낙 새까매서 원래 어두운 얼굴빛을 더 우중충하게 만들었다. 검정뿌리가 정수리에서 자라 나올 때마다 정기적으로 염색을 했고, 평범한 게 싫어서 여러 가지 색으로 자주 많이 계속 염색을 해 엄마가 상당히 못마땅해하셨다. 그러던 찰나에' 내 몸 사용설명서'인가 '엄지의 제왕'인가 엄마의 최고 애정 프로그램에서 염색의 부작용을 한번 보고는 엄마 머릿속에는 염색=사망이라는 이상한 가설이 생겼고 염색은 아주 위험한 것이라는 사실이 엄마 뇌리 속에 단단히 박혔다.
“ 엄마, 나 두통 있나 봐 머리가 아프네. ”
“ 그건 네가 염색을 자주 해서 그래.”
" 그래."
“ 엄마, 나 요즘 눈이 시려. 햇빛이 강해서 그런가?”
“ 그건 네가 염색을 자주 해서 그래.”
" 그건 그래."
기승전염색이다.
어쩌면 엄마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머리 아프고 눈 시린 건 잦은 염색의 부작용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엄마의 기승전염색 개똥철학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 엄마, 나 속이 안 좋아. 입맛도 없어. ”
“ 그건 네가 염색을 자주 해서 그래.”
".... 응?"
“ 엄마, 나 요즘 안 먹어도 계속 살찌는 것 같아. ”
“ 그건 네가 염색을 자주 해서 그래.”
"... 도대체 왜 뭐가?"
" 엄마, 나 무릎..."
" 너 염색 때문.."
“ 엄마, 나.. ”
“ 응. 너 염색”
" 엄마..ㅏ.."
" 염ㅅ.."
말을 못 하겠다 말을.
충치생기고 살찌고 다리에 멍들고 나가기 귀찮고 계단 오르는 게 힘들고 입맛이 없고 악몽을 꾸고 물건을 잃어버리고 달리면 숨차고 늦게 자면 피곤하고 많이 먹으면 배부르고 굶으면 배고프고 빨래 개는 게 귀찮고 일하기 싫고 놀고 싶고 인터넷이 즐거운 건 다 내가 염색을 자주 해서 그렇다고 한다,
... 그냥 그렇다고 한다.
이제 염색 안 한다.
파마도 안 하고 고데기도 안 하고 엄마아빠가 주신 그대로의 곧고 두꺼운 직모의 머릿결을 그대로 살려 살랑살랑한 긴 생머리 상태로 다닌다. 그래서 보는 사람들이 자꾸 연예인 닮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