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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Apr 12. 2023

지금 우리 애아빠 굉장히 화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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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웬만한 상대방의 언어공격에 바로 맞받아칠 자신 있다. 사주팔자도 말로 먹고 살 운명이라 할 정도로 말로써는 누구라도 이길 수 있지만 단 하나의 막무가내 권법 앞에서는 기가 막히고 말문이 막혀 버린다.

그건 바로바로 '지우굉 권법'


"리 애 아빠 -장히 화났어요."


사교육에 몇 년간 일하면서 거짓말하나 안 보태고 한 달에 한 번은 학부모한테 꼭 듣는 권법이다. 이 말은 본인의 요구사항이 제대로 안 먹혔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나오는 일종의 협박이다. 그냥 활자로 보면 저 말이 어때서? 라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학부모들이 말할 때는 단어 하나하나에 빡친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 발음한다.

지그므.. 우리 A ㅐ 아빠 갱-엥장히 화-낫써여..

으르렁 으르렁대.


이 문장이 사용된 예를 들자면,


1. 내 아이의 자존심 지켜 절대 지켜.

내가 일한 대형어학원은 분기별로 레벨업 시험을 친 다음 높은 단계로 올라가는 커리큘럼이다. 물론 대부분이 수월하게 올라가지만 학생의 성적이 부족하면 담임선생님이 어머님께 전화드려 부족한 부분을 설명하고 반복수강을 권유한다.


하지만 그 당시는 대충 흘겨듣다가 막상 시험성적이 안 나오면 학원 탓하며 앞으로 신경 쓸 테니 막무가내로 레벨업 시켜달라 요구한다. 규칙상 그 학생이 관둔다는 협박성 멘트를 날려도 절대 임의로 레벨업 시켜줄 수가 없다. 여러 차례 규칙에 대해 설명해도 통하지 않는 경우, 지우굉권법이 어김없이 날아온다.


" 레벨만 올라가면 집에서 공부시킬게요."

" 안됩니다. 저번부터 레벨업 어려울 것 같다고 여러 차례 말씀드렸는데도 J가 복습해오지 않았네요."

" 한 번만요. 앞으로 시킬게요. 우리 J만 못 올라가면 아이 자존심도 상하고... "

" 올린다 해도 성적이 안 맞아서 J가 수업 따라오기 힘들 거예요."

" 아.  선생님. 한 번만요. 아이 자존심상 학원 끊는다고 할 것 같은데 (1차 협박)."

" 학원 옮기는 것도 고려 중이시라면 어쩔 수 없지만 여기에서는 무리해서 올린 순 없습니다."

" 아.. 진짜. 선생님. 레벨 못 올라간다고 애 아빠 굉장히 화났어요."

"..... (응?)"

" 지금 학원 그만두라고 난리예요. 애 아빠가 화가 많이 났어요. 겨우 말렸어요"

".... (남편이 오징어세요?)"




2. 휴가도 내 꺼 보충도 내 꺼 그냥 다 내꺼.

보통 학생들은 아버님의 휴가에 맞춰 하루 혹은 길게는 일주일 정도 여행을 간다. 오래 수업을 빠지게 되면 보충수업을 해주거나 학원비 차감을 해주지만 하루 개인적인 일 (당일치기휴가, 생일파티, 다른 학원 파티)로 하루 빠진 부분은 일일이 보강해 줄 수가 없다.


400명 가까이 되는 큰 학원이라 놀러 간다고 빠진 학생을 1시간 동안 개인 수업을 해줄 인원도 없다. 본사에서 제공하는 동영상으로 빠진 수업 진도는 관리해주지만 동영상으로 만족하지 않는 몇 명의 학부모들은 역시나 지우굉 권법을 시도한다.


" 어머님, 학원 규정상 개인사정으로 빠진 부분은 보강이 어렵습니다."

" 아... 애 아빠가 겨우 시간 빼서 하루 휴가 갔다 온 거라 어쩔 수 없었네요... 그래도 보강 안될까요?"

" 선생님들 보강 스케줄도 맞추기 어렵고 해서.. 일단 본사 제공 보충 동영상 보고 모르는 부분은 쉬는 시간에 잠깐 체크하는 걸로 할게요."

" 쉬는 시간 말고, 따로 시간 내서 하루 보강 안될까요? 하루 통째로 빠진 건데... "

" 규정상... 어쩔 수 없어요 어머님. 양해 부탁드릴게요."

" 아..... 선생님.. 사실 애 아빠가(보강 안 해줘서) 지금 화가 많이 났어요."

"..... (그럼 주말에 놀러가세여)"




지우굉 권법을 사용할 때, 학부모의 머릿속에는 우리가 학원비를 받는 을이 당연히,

소인, 나리의 분부대로 해드립죠. 굽신굽신.

이럴 거라 생각하고 지우굉 권법이 먹혔다고 룰루랄라 하겠지만 실제로 우리는,


누가 지우굉 소리를 내었는가.

안 보이고 안 들린다. 타격감이 1도 없다.



3. 우리 애가 선생님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잖아욧.

학원은 6개월마다 새로운 반으로 바뀐다. 대부분은 금세 적응하지만 간혹 가다가 선생님이 본인 생각대로 안 맞춰주거나 (비위를 안 맞춰주거나 …) 자기한테 특별한 관심을 충분치 않게 주면 아이들은 선생님이 싫어서 학원 가기 싫다는 표현을 쓴다. 물론 이때도 지우굉 권법을 사용된다.


" 선생님, 우리 애가 원어민 선생님이 자꾸 싫다고 하네요. 어쩌죠?"

" 어떤 부분에 아이가 그렇게 느꼈을까요?"

" 선생님이 자기한테 관심도 없고 재미도 없다고... 자꾸 학원 안 가려고 해서 걱정이에요."

" 그럼 제가 P와 원어민선생님에 대해 따로 이야기해 볼게요."

" 그러지 말고, 그냥 선생님을 바꿔주면 안 될까요? 이야기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 같지 않고..."

" 선생님을 교체하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 원어민 선생님과 P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의논해 볼게요."

" 아.... 자꾸 애기가 원어민 선생님 싫다고 하니 참... "

" 음.. 수업 분위기가 어떤지 선생님과 이야기해 보고 연락드려도 될까요?"

" 아니 그냥.. 바꿔주면 될꺼같은데... 아이가 선생님하고 안 맞는 것 같으니 초반에 빨리 선생님을 바꾸는 게 좋지 않을까요?"

"... (입맛대로 선생님을 고르실꺼면 과외를 하시는 게... )"

" 선생님, 이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원어민 때문에 애가 스트레스받아서 짜증을 내니 애 아빠가 그만두라고 난리예요. 화 많이 났어요 정말."

"......(오은영 선생님을 만나뵙는 게...)"



애 아빠가 화가 난 거랑 학원이랑 무슨 상관인지 가끔씩 의문이다. 자꾸 이렇게 무작정 지우굉 권법을 쓰면 나도 우리 아빠한테 이르고 싶어 진다. 어머님 지금 70대 우리 아빠도 굉-장히 화났어요.

으르렁 으르렁대.


하루는 거짓말처럼, 지우굉 권법을 자주 써먹는 어머님이 지나가는 길에 학원비를 결제하려고 아버님과 학원에 잠시 들렸다. 이때다 싶어 "아버님, 저번에 화가 많이 나셨다고 들었는데 죄송했습니다. 앞으로 더 살펴볼게요."라고 정중하게 말하니 아버님께서,

응. 니가.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

으르렁 으르렁대.



아버님의 화는 단지 어머님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상상이었나 보다.





전화받고 새하얗게 질려버린 나의 얼굴 jpg.

끼야야옷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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