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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Jun 12. 2023

긍정적인 사람은 주변을 변화시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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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간 굉장히 더웠다.

가만히 있어도 더운데 비닐하우스에서 두건에 마스크에 온몸을 꽁꽁 감싸고 과일을 따는 일은 아프리카에서 패딩을 입고 훌라후프를 돌리는 것만큼이나 덥고 괴롭다 그리고 몸과 마음이 지친다. 나는 원래 매사에 조금은 부정적인 사람이다. 어느 정도 부정적인 마음을 갖고 살아야 예상치도 못한 일에 크게 좌절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부정적인 나에게 블루베리 농장에서 일하는 동안 크게 충격을 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미경이모.


미경이모는 내가 삼십여 년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만난 가장 매우 엄청 굉장히 무척 긍정적인 사람이다. 사람이 너무 긍정적이라서 가끔씩 '사람 놀리나?' 싶은 마음이 순간 확 드는 경우도 종종 있다. 미경이모를 통해 긍정적인 사람옆에 있으면 덩달아 같이 긍정적인 사람으로 변화되고 '매우' 긍정적인 사람옆에 있으면 짜증이 치밀어올라 성격이 예민하게 변화된다는걸 알게됐다. 그녀의 긍정적인 마인드는 정말 나를 변시켰다.




미경이모는 말버릇처럼 '행복하다'라고 연발한다. 행복한 상황에 놓여서 행복한 게 아니라 그냥 밑도 끝도 없이 숨 쉬듯 행복하다고 말하는데 자꾸 듣다 보니 행복하다고 자기 체면을 거는 건가 싶은 의심을 할 때가 많다. 물론 긍정적인 미경이모 덕분에 처음에는 '아 나도 행복한 사람인가?' 싶기도 했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은 슬슬 지친다.


이모의 행복전도사 긍정발언이 어이없게 재밌어지기 시작하게 된 것은 불과 2주도 되지 않았다. 하루는 쉬는 시간에 다 같이 모여 간식을 먹고 있는데 모두들 지쳐있는 조용한 상황에 미경이모가 입을 뗐다.


"아- 행복하다. 너무 행복하다. 지금 캐나다에 놀러 온 기분-이야."


이모의 뜬금없는 캐나다 드립에 다들 갸우뚱하며 이모를 쳐다봤다. 사람들의 시선을 느낀 미경이모는 말을 덧붙였다.


"공기도 좋고 나무도 푸르고, 마침 저-기 나이아가라 폭포도 있고, 여기가 캐나다가 아니고 뭐겠어. 우린  행복한거야-."


이모의 손가락 끝을 따라간 우리들의 시선에 들어온 한국산 나이아가라 폭포는,

그냥 시골 물 콸콸콸.

거름냄새는 덤이요.

단언컨대 미경이모는 폭포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게 분명하다.


 깡시골에서 캐나다 바이브를 뽑아내는 미경이모의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그저 놀랍다. 이 날을 계기로 이모는 종종 비슷한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하기 시작했다. 비가 쏟아지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모두들 쪼그려 앉아 비를 피하고 있는데 미경이모는 뜬금포로 꼭 지금 이 순간이 비 내리는 파리 센느강에 앉아있는 기분인 것 같아 행복하다고 했다. 길가에 듬성듬성 핀 노란 잡초꽃을 보며 덴마크 한적한 시골의 정원을 보는 기분이라고도 했으며 점심시간에 배달된 식당밥을 먹으면서 그리스 호텔에서 맞이하는 룸서비스 같다고 했다. 흠. 사실 우리 모두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미경이모가 과연 캐나다, 파리, 덴마크, 그리스를 갔다 온 적은 있는지 의문을 품긴 했다. *이모랑 친한 이모한테 살짝 물어보니 미경이모는 평생 한국을 떠나본 적이 없음.




하루는 저 멀리 다른 고랑에서 블루베리를 따는 미경이모 하이톤 목소리가 유난히 귀에 꽂혔다. 누군가가와 대화하는 소리 같았는데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얇고 애교가 섞였다.


"안녕 뽀삐야. 너 참 예쁘다 아줌마 보러 왔어? 아이고 예뻐 예뻐."

 

잠깐, 농장에 뽀삐라는 이름을 가진 강아지가 있었나. 농장 근처에 강아지가 많긴 하지만 외부인을 극도로 경계하는 아이들뿐이라 비닐하우스 안에 들어온 강아지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한층 고조된 미경이모의 목소리가 강아지에 환장하는 나의 궁금증을 폭발시켰다.


"뽀삐야. 이리 와서 아줌마랑 놀자. 블루베리 먹을래? 따줄까. 이리 와봐."


나도 강아지 만져보고 싶었다. 힘든 이 순간, 강아지의 복슬복슬한 털을 살며시 쓰다듬으면 피로가 풀릴 것 같았다. 도저히 못 참겠다 싶어서 블루베리 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고 부리나케 미경이모에게 달려갔다. '이모 저도요! 저도 뽀삐 만져볼래요!' 설레는 마음으로 호다다닥 뛰어가서 미경이모 발밑을 보니,

안녕하세요 뽀삐입니다.


이런 ㅆ. 놀래라.

만지고 싶은 강아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귀여운 청개구리도 아닌 성인 손바닥 만한 아주 커다란 떡두꺼비가 있었다 두껍두껍. 아… 미경이모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그때부터 미경이모가 비닐하우스 안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다정히 부르며 대화하는 소리가 들리면 백 프로 나방이나 하늘소나 두꺼비 중 하나다. 이제는 믿고 거른다.




나는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걸 좋아한다. 글 쓸 때도 도움이 되고 나중에 시간이 지나 다시 추억을 회상할 수 있어 시간 날 때마다 찍어둔다. 하지만 내 모습이 담긴 사진은 거의 없어 아쉬울 때가 많다. 혼자 사진 찍으면서 돌아다니고 있는 나를 보며 미경이모가 본인은 사진을 잘 찍는 프로사진사라며 내 모습을 찍어서 전송해 준다 했다. 이모는 자신만 믿으라며 본인이 찍어준 사진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했다. 난 순수하게 이모를 믿었다.


그리고 4일 뒤, 이모한테서 카톡폭탄이 왔다.

열심히 일하는 내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보여 지나가는 길에 여러 모습을 많이 찍었다고 사진을 보내줬다. 땀 흘려 일하는 내 모습을 나 스스로 본 적이 없어서 조금은 설레었다. 이모는 나에게 베스트컷이 많아 고르기 힘들었다고 했고 보내준 사진 중 마음에 드는걸 카카오톡 사진으로 해둬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친구들에게도 열심히 일하는 내 모습을 자랑할 생각에 클릭해 보니,

이런 ㅆ.

안녕하세요 달걀귀신입니다 jpg.


이모가 말한 '잘 나왔다'는 기준은 무엇인가. 저런 사진만 30장을 보내줬다. 내가 주인공인지 역광 때문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노란 박스가 주인공인지 모를 사진.

흙밭을 구르는 2등신 코끼리 jpg.


하아. 이모가 의도한 게 무엇일까.

168cm인 나를 2등신으로 찍어줬다. 아니 그냥 등신같이 찍어줬다.

네 년 얼굴 말고 장화가 예쁘네요 jpg.

모가지 댕-강 날리기. 절묘하다.


팔려가는 외노자 김씨 jpg.


난 이모를 잘 모르겠다.

카메라 작동법을 모르는 건지 아님 나를 존나싫어하는지 이제는 정말 모르겠다.




2일 전에 생긴 일이다.

우리 블루베리 비닐하우스  근처에 큰 돼지축사가 있다. 그날은 돼지를 잡는 날인지 남자 일꾼들의 고함소리가 조용한 시골의 정적을 깨더니 이윽고 돼지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난생처음 듣는 기괴하고 슬픈 소리였다. 여러 마리 돼지들의 살려달라는 울부짖는 소리에 이모들 모두 마음이 좋지 않았다. 바로 옆에서 들리는 생생한 소리라 더 마음이 불편했다. 돼지들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1시간가량이 지나 조용해졌고 우리는 쉬는 시간에 모여 앉아 방금 들은 돼지소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미경이모는 너무 듣기 괴로웠다며 가슴이 진정이 되지 않는다 했다. 이탈리아의 어느 어두운 구석에서 울고 있는 슬픈 집시여인의 울음소리 같다 덧붙였다. 아 참. 이모는 이탈리아 가본 적 없음. 돼지 울음소리를 이렇게 가까이 들어보니 앞으로 돼지고기를 못 먹을 것 같다고 동물애호가인 본인은 이 소리를 듣고는 돼지고기를 먹는 상상만 해도 구역질이 날 것 같다고 목메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순간 같은 마음이 들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이 삶인 것을.


본인은 자유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참으로 다행이고 행복하다고 했다. (...아 그놈의 '행복합니다') 인간으로서 다른 생명을 함부로 다루고 살생하는 것은 죄라며 이번일을 계기로 본인은 많이 뉘우쳤다고 했다. 그리고는 하루가 지났고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점심 반찬으로,

안녕하세요 부들부들한 돼지고기 수육입니다. 어서 나를 좝숴주세여.


배달오는 기사식당에서 점심 메뉴로 수육이 나왔다. 그리고 이모들 모두,

돼지수육 한번, 미경이모 한번 번갈아보기.

부모님의 퇴근을 기다리는 아이들처럼 우리들은 미경이모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과연 그녀의 선택은?

야무지게 먹어야지지짖지ㅣ.

존맛탱!


미경이모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웬일로 이 식당에서 고기를 줬냐며 고기가 야들야들하게 잘 삶아졌다 칭찬을 했다 그리고 그날 미경이모는 밥을 야무지게 두 공기를 해치웠다. 고기에 김치를 척척 올려 냠냠 쩝쩝 잘 드셨다. 이모의 돼지에 대한 연민은 하루 치였나 보다 아니면 슬픈 감정 보다 식욕이 더 컸나 보다. 난 정말 이제 미경이모를 잘 모르겠다.



나는 매일 미경이모가 무슨 말을 할지, 이모의 입에서 어떤 불꽃놀이가 터질지 기대하는 재미로 출근한다. 이모의 긍정적인 마인드는 정말..

지친 농장일에 웃음을 주긴한다 낄낄.

아 벌써 빨리 출근하고 싶다.


긍정전도사 미경이모의 에피소드로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

일주일 또 견뎌봅시다!


값진 경험을 하고있는 블루베리농장.

이제 일주일 남았다.


남은 기간동안 어떤 즐거운 일이 생길까.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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