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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Jul 04. 2023

내가 마지막이 될 것같아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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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베리 농장일을 끝나고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 버스 타고 버스 타고 또 버스 타고 부산으로 갔다. 4개월 만에 본 나의 절친 H는 내게 농장일이 많이 고돼서 그런지 얼굴이 많이 상했다고 했다. 오히려 까무잡잡하게 타서 난 내 외모가 더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힝. 돌려깐것인가. 고작 58일 일했는데 무슨 러시아 멸치잡이 3년 갔다 온 사람 대하는 양 수고했다며 굉장히 나를 자랑스러워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항상 언제나 늘 그랬던 것처럼 우리만의 의식을 치렀다. 점심으로 남포동 콩불집에 가서 고기에 밥 볶아먹고 저녁으로 서면 김치삼겹살집에 가서 삼겹살에 또 밥 볶아먹고 야식으로 집에서 불족발을 시켜 또 밥을 얹어먹으며 행복해했다.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지 않냐면서 우린 잘 살고 있다며 샴페인 없는 자축을 했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우리는 내색하진 않았지만 속으로는 지금 이 상황을 측은하게 생각했으리라고. 이 좋은 날 난 돼지처럼 이 년과 단둘이 뭘 하고 있는 건가라고.


탄수화물 중독자마냥 푸짐하게 하루종일 먹고선 10주 차 임산부배처럼 한가득 부풀어 있는 배를 드럼 두드리듯 둥기-둥기 두드려가며 H와 나는 늦은 밤 찹찹한 방바닥에 나란히 누워 남이 들을까 무서운 영양가 없는 유치한 이야기를 나누며 낄낄거렸다. 그리곤 자연스레 연애와 결혼으로 주제가 흘렀다. 왜 우리 주변에 있는 친구들은 다 결혼을 했는가, 왜 결혼을 해야 하는가, 왜 우리는 아직까지 잘생긴 연예인이 좋은가에 대해 심각하게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눴다. 우리도 이제 정신 차릴 때가 되지 않았냐며 3초 정도 질책했지만 아이돌 못 버려. 잘생긴 연예인 만세 만만세.


긴 대화의 끝에 우리는 연애를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거라 스스로를 다독이며 비뚤어진 자기애에 사로잡혀 영원히 결혼하지 말고 이렇게 친구와 함께 재밌게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서로를 위로한 뒤 곧바로 등 돌려 잠을 청했지만 나는 안다. 우리는 속으론,

흐어어어 흐어어 엉. 울고 있다는 것을. 이렇게 늙은순업쒀. 으허허헝ㅇㅎ.

평생 이렇게 하루 내리 3끼 돼지고기를 먹으며 조카뻘 되는 남자 연예인 이야기에 낄낄거리고 싶지 않다고. 




그러다 나는 문득 궁금했다. 과연 정말 누가 최후의 노처녀가 될 것인가. 과연 누가 '걔 아직도 그러고 혼자 살아.'의 '불쌍한 걔'가 될 것인가. 잠이 막 들려는 H를 깨워 그냥 심심풀이 땅콩으로 노처녀 서바이벌을 한번 해보자 제안했다. 우리 주변에 남아있는 노처녀들을 싹싹 긁어모아 분석한 뒤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누가 정말 최후에 남을 것인지 솔직하게 말해보자 했다.


다들 양손 가득 자녀의 손과 남편의 손을 다정히 잡고 동창회에 나올 때 누가, 어느 누가 혼자서만 스스로 오른손왼손 다소곳이 양 깍지 낀 수녀가 되어 올 것인지 농담반 진담반으로 한 명을 꼽아보자고 했다. 보자 보자. 우리 주변에 결혼 못한/결혼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은/주변에 남자가 거의 없는 사람이 누가 있는지 비트코인 채굴하듯 긁어모아보니 맙소사 딱 세명뿐이었다. 나, H 그리고 우리의 희망의 아이콘 Y.


아 우리의 Y여.

내 삶이 바쁘고 힘들어 잊고 지낸 Y. 나의 초등학교 동창이자 지금은 인천도시여자가 되어버린, 그래도 1년에 의무적으로 한 번씩은 꼭 만나는 나의 가장 오래된 벗 Y. 나는 Y를 처음 본 순간부터 저년은 나와 영원히 단둘이 함께 늙어갈 것임을 깨닫고 친하게 지냈는데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나의 촉이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틀리지 않았다. Y는 정말 나와 영원히 남자친구 없이 함께 늙어가고 있다. 물론 단둘이 가 아닌 H도 같이 늙어가고 있지만. 관계정리를 하자면 나와 Y는 초등학교 친구, H는 고등학교 친구, Y와 H는 고등학교 친구이다.


사실 H가 소개팅을 여러 번 할 때마다 '이번엔 설마 H가 솔로탈출을?' 하며 날 제쳐두고 먼저 연애할까 봐 똥줄이 타들어갔어도 나의 깊은 무의식 속에 '그래도 나에겐 모태솔로 Y가 있잖아 괜찮아' 싶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분명 Y도 나와 H를 생각하며 저 멀리 인천에서 아무리 그래도 재네들보다는 내가 낫지 암 그럼 그럼 하고 안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리 셋 중 누가 가장 먼저 떠나고 누가 최후에 남을까.

일단 첫 번째 후보인 H는 어린 시절 배구를 한 덕에 키가 175.9cm까지 자라버린 장신으로 별명은 팔 척 귀신이다. 매년 조금씩 더 크고 있다는 괴소문도 있다. H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적절한 타이밍에 귀신같이 찰떡같은 맞장구를 잘 받아쳐줘서 리액션 하나만큼은 맛집이다. 때로는 귀찮은 걸 너무 귀찮아하는 성격으로 태어난 김에 살아가는듯해 보여 여자 기안 84라 불리기도 한다. 구체적인 그녀의 이상형으로는 안경이 잘 어울리는, 똑똑해 보이며 호리호리하고 키 큰 남자라 한다. 연예인으로 치자면 안경 낀 강동원. 안경 낀 박서준. 안경 낀 최우식, 안경 낀 이석훈이라 한다. (...) 본업은 공무원이고 투잡으로 연예인 핥는 일을 하고 있다. 나와 만든 노처녀 모임 독사클럽의 명예회장직을 맡고 있다. 참고로 (고)독사클럽에서 앞에 붙은 '고'는 묵음이다.


두 번 후보로 교사인 Y는 남자를 만나볼 기회가 많았는데 스스로 통통한 게 콤플렉스라 생각해 매번 다이어트 성공하면 소개팅을 받겠다고 거절하고 거절하고 거절하다 지금껏 모태솔로가 되었다. 이목구비는 되게 예쁜데 살에 파묻혀 빛을 보지 못한 케이스라 생각한다. 흔히 말해 긁지 않은 복권. 근데 이 Y복권은 동전이 아닌 삽으로 긁어 파야지만 당첨인지 꽝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거절 못하는 착한 성격으로 본인 쉬는 날 하는 일이라곤 남의 결혼식과 돌잔치에 가서 축의금을 기부하는 것뿐이다. 본인은 남의 행사에 돈만 쓰다가 살림 거덜 나겠다고 언젠가는 꼭 본인도 뿌린 만큼 거두고 말 것이라 말하지만 나는 Y의 결혼식보다는 그녀의 비혼식이나 비구니 기념 삭발거행식 행사로 지인들에게 돈을 싹- 거둬들이는 게 더 빠를 것 같다고 말했다. 아 물론 속으로. Y는 본인의 이상형이 교회오빠라 했다. 참고로 Y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 (응?) 종교가 있는 것도 아닌데 자꾸 본인 이상형은 교회오빠라 한다. Y가 말하는 교회오빠가 도무지 어떤 사람인지 몰라 검색해 보니, 잘생긴 태민, 유연석이 나왔다.

걍 잘생긴 사람을 말한 거구나!



세 번째 후보인 무직 K. 바로 나야 나.

나는 mbti가 JJJJ라고 할 정도로 계획적인걸 좋아한다. 시간을 분단위로 쪼개 할 일을 정리하고 밥 먹는 시간까지 계산해서 오차범위 내에 성공하지 않으면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는 타입이다. 하고 싶은 일은 꼭 해야 하지만 포기도 빠른 편이다. 순간 욱하는 성격으로 분노조절이 아주 쪼오오오금 힘들지만 뒤끝은 없다. 개방적인 동시에 보수적이다. 활발하지만 눈치를 많이 본다. 부지런하지만 뭔가 게으르다. 이쯤 되니 자아가 두 개인 듯싶다. 나 역시 H와 마찬가지로 연예인을 굉장히 좋아한다. 빠순이, 집순이, 식순이로서 순이계의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사람으로 별명은 쓰리순이다. 나의 이상형은 검은색 문신한 귀여운 외모의 남자다. 연예인으로 치자면 배우 변요한과 가수 이창섭이다. 하지만 또 전혀 다르게 국가대표 사격선수 진종오, 배우 김대명도 이상형이다. 난 자아가 2개임이 틀림없다. 좌 김분주, 우 김분주은 오늘도 비혼과 졸혼의 로망을 가지고 싸우며 살고있다.


헹.



이렇게 적어보니 셋다 박빙이다.

난 항상 왜 우리가 친구가 됐을까 궁금했는데 이제 보니 왜 우리만 지금까지 여전히 친구일까에 대한 답을 알 것 같다. 눈먼 자들의 나라에서 애꾸눈이 왕이라고 우린 그렇게 '그나마 내가 제일 낫지' 라 생각하며 끈끈한 우정을 이어가는 듯하다. 사실 나도 내가 제일 낫다고 생각한다. 왠지 이번 노처녀 서바이벌에내가 이길 것 같다. 미리 축배를 들어야겠다.

ㅆㅣ이바알. 흑흑흑

수요 없는 공급이란 게 이런 기분이구나.

제발 우리셋 좀 데려가주세요.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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