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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Sep 11. 2023

유럽 반바퀴를 도는 내내 의심을 놓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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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부터 강행군으로 달렸더니 둘째 날 아침은 너무 피곤했다. 나와 H는 당연히 우리 일행 모두 피곤해서 버스 안 가득 곡소리가 날줄 알았는데 우리만 골골거렸다. 가장 젊은 우리만 가장 지쳐있었다. 다른 50~70대 어르신들은 소풍을 앞둔 아이들처럼 팔팔했다. 젊고 건강할 때 여행 부지런히 다니라는 옛말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젊고 건강한 거 그딴 거 필요 없고 즐기는 자가 이기는 싸움이다.  


나라 간의 이동 시간은 최소 3시간이다. 이동시간이 길다 보니 의무적으로 한 번씩 휴게소에서 쉬어야 했는데 그때마다 화장실을 사용하면 된다 다만 화장실은 무료가 아니라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한다. 대부분 70센트에서 많게는 1유로까지 받았는데 지금 유럽환율로 따지자면 소변 한 번에 1430원인 셈. 


화장실 앞에 줄도 어마어마하다. 우리 일행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인 관광객들도 휴게소에 들러 화장실을 사용하다 보니 여자 화장실 앞은 언제나 인산인해다. H와 나는 화장실 앞쪽에 있는 의자에 앉아 화장실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계산해 봤다. 짧은 20분 동안 총 35명 가까이가 되는 사람이 사용했는데 한국돈으로 50100원 정도의 돈이었다. 20분에 5만 원을 벌다니. 유럽 화장실이 나보다 낫구나. 나는 한 시간 뼈 빠지게 일해도 최저시급 만원 버는데. 저 화장실은 가만히 앉아서 시간당 십만 원이 넘는 돈을 벌다니. 변기가 부럽긴 처음이다. H와 유럽에서 화장실 사업을 하면 떼돈을 벌겠다 생각했다. 한국산 최첨단 비데를 사들고 와 화장실에 BTS 노래를 하루종일 틀어놓으면 장사가 잘될 것 같다고, 한국에서 잘 먹히는 1+1 마케팅 즉 오줌 한 번에 오줌 한 번 더! 혹은 커피 10잔에 1잔 무료와 같이 오줌 10번에 오줌 1번 무료 제공 등 가능성 전혀 없는 사업 아이템을 계획하곤 했다. 

 



두 번째 여행지로 오스트리아로 향했다. 인솔자가 이곳은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써 자동차 클락션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나라라 했다 그만큼 사람들이 여유롭고 어쩌고 저쩌고. 사람들도 어찌나 친절한지 한국과는 다르게 눈이 마주치면 방긋 웃어주는 매너 있는 사람들이라 했다. 아 정말 살기 좋은 나라구나. 이곳에 살면 스트레스받을 일은 없겠구나.


관광버스를 한쪽에 세워두고 본격적인 관광을 시작했다. 우리 일행이 30명이 넘어서 한꺼번에 신호등을 건너질 못했다. 중간에 끊기면 일행을 놓칠 수 있으니 파란불이 깜빡일 때 급하게 다들 우르르 뛰어서 건넜는데 그때 들리는 자동차 클락션 소리


빵빵빵빵빠아아아아아앙-

빵빵 빵빵.

어서 처 길을 건너라고오오. 동양것들아.


분명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여유가 많아서 자동차 클락션 안 울린다고 했는데. 뭐지.

아.

운전자가 오스트리아 사람이 아닌가 보다.


다다닥 붙어서 골목길을 걷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오던 작은 강아지와 주인을 마주쳤다. 눈처럼 하얀 털을 가진 작고 앙증맞은 사랑스러운 강아지였다. 가이드와 앞서 걷던 왕이모는 강아지를 보라면서 우리 일행들에게 말해줬고 우리 모두 동시에 강아지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는데 갑자기,

왈와와ㄹ.ㅇ.ㅘ왈와왈. 건들지ㅣ 마라ㅏㅏ. 뭘 봐.

으르렁 으르렁대.


마약탐지견이 마약을 발견한거마냥 엄청 짖어댔다.

음.

오스트리아 강아지가 아닌가 보다.

물리면 최소 손가락 절단이다.




관광지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다들 가이드 말대로 여유로워 보였다. 빠듯한 일정에 똥줄 타는 우리들과는 달리 햇볕을 쬐며 공원 잔디밭에 누워 광합성하는 사람도 있고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도 많았다. 관광 시한부인 우리들은 짧은 시간 내에 이것저것 보려면 마음이 급해 제대로 관광을 하는 건지 아닌지도 모른 체 가이드의 구령에 맞춰 빠릿빠릿 움직였다. 거북이처럼 목을 쭉 빼서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고 있는데 마침 마주 오던 외국인 아주머니와 눈이 뙇 마주쳤다. 오호 가이드 말대로 그녀는 나를 향해 웃어주겠지 싶었는데 무덤덤한 무표정이길래 그럼 내가 먼저 환하게 웃어줘야겠다 싶어서,

안녕하세요. 헤이 룩엣미. 아엠 프롬 코리아. 한국에서 왔습니다. 건치 발사.

어서 나를 향해 웃어주세요. 지금 당장. 롸이트 나우.


개무시. 나의 건치를 보자마자 고개를 휙- 돌리셨다. 

외국인 아주머니는 불쾌함과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내 옆을 그냥 스쳐 지나갔다.

아.

저분도 오스트리아 사람이 아닌가 보다.


그럼 도대체 이곳에는 오스트리아 출신이 어디 있단 말인가.

슬슬 인솔자가 의심되기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저녁으로 현지식을 먹으러 갔다. 분명 인솔자 설명으로는 현지인들도 즐겨 찾는 오스트리아 유명 현지식을 파는 식당 이랬는데 태국 사람들이 장사하는 오스트리아 음식점에 한국인 관광객들만 바글바글 했다. 이 무슨 인종 대통합의 현장인가. 쉽게 말하면 터키인이 만드는 한국 전통 돼지국밥 집에 독일 사람들이 가득한 상황. 혼란하다 혼란해.


음식은 짰다. 경상도 바닷가 출신인 부모님 밑에서 자란 나도 음식을 짜게 먹는데 오스트리아 음식은 정말 짰다. 설탕대신 소금, 깨소금 대신 소금, 소금대신 소금을 넣고 만든 맛이었다. 동유럽은 식당에서 물도 돈을 주고 사 마셔야 한다. 물을 팔려고 일부러 음식을 조온나 짜게 만들었나 싶은 합리적 의심도 들었다. 주어진 1인분의 반도 못 먹고 식사를 마쳤다. 호텔 가는 내내 목이 말랐고 짐을 풀고 근처 늦게까지 하는 마트에 가서 생수를 구입했다. 독일어로 적혀있어 대충 물처럼 보이는 것들 중에 가격이 제일 싼 걸로 골랐다. 난 가난한 여행객이니까.


목이 상당히 말랐던 나는 호텔방에 들어오자마자 허겁지겁 생수뚜껑을 열어 사막 한가운데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낙타처럼 물을 벌컥벌컥 마셨고 곧이어 나는,

으어어어ㅓㅓㄱ. 

'ㅠ'

한국산 인공 입 폭포 발사.

목구녕이 타올랐다. 메마른 식도를 비포장 도로에 문지른 기분이 들었다.

물이 아니라 탄산수였다. 검색해 보니 동유럽은 탄산수가 물보다 싸고 종류가 많으니 한국사람들은 꼭 잘 보고 사거나 직원에서 물어보고 사라고 다른 한국 사람들이 팁을 네이버에 올려뒀다. 아 미리 검색해 볼걸.


뭣도 모르고 이 물을 컵라면에 붓었다면 라면과 탄산의 환장의 대조합을 겪을 뻔했다. 

유럽에서 먹는 라면맛은 혓바닥을 톡 쏜다며 혼란스러울 뻔했다. 


그로부터 나와 H는 마트에서 물건 사는 것도 의심을 놓지 못했다.

 





유럽사람들은 쯔쯔가무시병이 안 무섭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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