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 대한 나의 사랑은 중학생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그 2002년 월드컵. 온 국민이 미쳐있던 그 시기에, 나 역시 붉은 악마 중 하나였다. 그렇다고 뭐 대단하게 광화문 광장까지 가서 태극기를 흔든 건 아니지만, 중학교 3학년이던 나는 대한민국 경기가 있을 때마다 장소 가리지 않고 관중들이 모인 곳이라면 집에 있는 온갖 빨간 옷이란 옷은 다 걸쳐 입고 길거리로 향했다.
그 전까지 나는 축구에 대해 전혀 몰랐다. 솔직히 대한민국 대표 축구선수들 이름도 그때 처음 알았다. 나에게는 축구장을 뛰어다니는 황선홍과 홍명보보다 대나무 밭을 날아다니는 황비홍과 홍금보가 훨씬 더 친숙했다. 그때는 축구 자체보다는 친구들과 함께 공설운동장에 모여 큰 화면으로 경기를 보며 목놓아 응원하는 것이 더 즐거웠다. 경기를 이긴 날은 집으로 걸어가는 길도 신이 났다. 도로 위의 차들과 오토바이들이 사람들을 향해 '빠-빠-빠-빵' 소리로 클락션을 울렸고, 사람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같이 '대-한-민-국'을 외치며 짧은 순간을 만끽했다. 앞으로 그렇게 대한민국을 목 터져라 외칠 날이 또 있을지 싶을 정도로 사람들의 응원은 진심이 넘쳤다.
대한민국이 3번째 경기를 치룰 때쯤, 나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이름을 거침없이 외울 수 있게 되었고, 이제 나의 머릿속에는 중국인 황비홍과 홍금보보다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황선홍과 홍명보가 깊이 각인되었다. 20년이 흐른 지금, 경기 자체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온 국민이 하나 되어 한마음 한뜻으로 대한민국을 응원하던 그 뜨거운 열기는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한다. 4강의 기적을 이뤄낸 후 독일에 패배했을 때는 앞으로 살아생전 독일이 있는 방향으로는 눈길도 돌리지 말자 다짐하고, 독일 소시지를 입에도 대지 않겠다고 인종차별적인 생각을 품기도 했다. 그 이후 월드컵과 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는 빠짐없이 붉은 악마가 되어 대한민국을 응원해왔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당시, 방음이 전혀 안 되는 오피스텔에서 혹시나 소리가 새어나가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입을 틀어막고 혼자 조용히 응원했다. 붉은 옷을 걸쳐 입고 사람들과 함께 응원하고 싶었지만, 코로나의 영향인지 예전만큼 열렬한 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예전처럼 한골 들어가면 로또 1등 당첨 된 것처럼 미친 듯 기쁘고, 상대방이 골을 넣으면 나라가 뺏긴것처럼 꺼이꺼이 울지 않는다. 감각이 무뎌진 것일까, 아니면 생계에 대한 고민으로 열정을 잃어버린 것일까.
침대에 걸터앉아 핸드폰으로 우르과이와의 경기를 보는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질것 같았다. 축구는 작은 공 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긴장감 넘치는 스포츠라 보는 내내 어깨가 결렸다. 대한민국이 지게 된다면 슬픔이 밀려와 나를 괴롭힐 것이고, 그 괴로움은 식욕을 떨어뜨려 식사를 전폐하게 만들 것이다. 내가 자주 이용하는 중국집과 편의점 사장님도 나의 식음 전폐로 인해 슬퍼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승패에 따라 호호중국관 사장님과 세븐일레븐 편의점 사장님의 매출이 오르락내리락할 것이라는 생각에 휩싸였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꼭 이겼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 경기인 가나와의 경기에서 한국은 패배했다. 그 순간 나는 앞으로 살아생전 절대로 가나 초콜릿을 먹지 않겠다고 10초간 다짐하기도 했다. 경기에서 진 다음날은 하루종일 우울한 기분이 지속되었다. 예상했던 대로 식욕이 떨어져, 매일 출근도장을 찍던 편의점 방문을 몇 일간 끊었다.
16강 진출을 위한 마지막 경기였던 포르투갈과의 경기. 고혈압이 유전이라 혈압관리를 위해 10분 정도 본 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경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했지만, 계속 지켜볼 용기가 없었다. 결국 영화를 틀어놓고 친구에게 카톡을 연타발로 보냈다.
'지금 몇 대 몇이야?'
'경기종료 몇 분 남았어?'
'이길 것 같아?'
'제발 말해줘.'
사채 빚쟁이보다 더 집요한 문자공격.
이럴 거면 차라리 경기를 보라는 친구의 짜증에, 치사하고 더러워서 경기를 볼까 싶었지만 눈앞에 호호중국관 사장님의 환한 미소가 어른거려서 끝까지 경기를 보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이 이겼고 16강 진출했다. 아 볼걸.
16강 브라질과의 경기는 큰 마음먹고 친구와 나의 오피스텔에 모여 함께 봤다. 친구에게 빨간 옷을 입고 오라고 했지만 내 말을 듣지 않고 파란 옷을 입고 온 친구를 보니 '이 년은 매국노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 겸상하고 싶지 않았지만 기쁨은 나누면 2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는 말처럼 친구와 결과의 감정을 나누고 싶었다.결과는 1대 4로 패했다.
괜히 느낌에.
내가 경기를 봐서 진 것 같다. 기묘하게도 내가 끝까지 게임을 본 날은 꼭 진다. 이 때문에 나는 대한민국 승리를 위해서는 경기를 보면 안 되는 사람임을 깨달았고,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앞으로 대한민국 승리를 위해 축구 경기는 시청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1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 아시안컵 축구 경기가 개최되었다. 나의 황당한 징크스를 지키기 위해 역시 경기를 실시간으로 시청하지는 않았다. 축구 시작 전까지 간절한 마음으로 텔레비전 신에게 기도하다가 선발 라인업만 확인하고 조용히 TV를 껐다. 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짓이지만 그만큼 한국 승리가 간절하다. 큰방에서 경기를 시청하는 아빠의 환호와 한숨, 그리고 앓는 소리로 경기의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축구공이 굴러가는 걸 보는것 만큼이나 나는 아빠의 목젖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요르단과의 경기 중 아빠의 탄식과 육두문자 가득한 욕설은 한국이 지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나도 막상 포기하려던 순간, 아빠가 아이처럼 기뻐하며 거실로 뛰어나왔다. 본인 결혼식때보다 더 기쁘다던 아빠. 나도 뒤늦게 부랴부랴 티비를 켰다.
고오오오오오올!!!!
한국이 마지막 순간에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리며 2대 2 무승부를 이끌어냈다. 마치 세상에 처음 태어난 신생아처럼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러자 소파에서 잠든 엄마가 깼고, 층간소음으로 살인까지 일어나는 요즘 시국에 목소리가 데시벨 20을 넘으면 안 된다고 나의 목젖을 통제했다.
괜찮아 엄마.
어차피 우리 옆집, 윗집, 그리고 그 윗집의 옆집은 다 이사 가서 비어있고 아랫집 할머니는 귀가 어두워서 초인종 소리도 못 들으시는 고령이셔. 내 고함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엄마뿐이야. 그리고 축구 경기 있는 날의 고함소리는 암묵적으로 용서해야 할 백색소음이여.
사우디와의 16강 경기가 열리는 날, 나는 결국 참을 수 없어 경기를 끝까지 시청하기로 결심했다. 축구 경기 관람의 국룰이라도 되는 치킨과 맥주를 주문하고, 전반전 휘슬 소리와 함께 나의 맥주캔은 '치이이-익'하며 오픈되었다. 평소 술을 거의 마시지 않지만, 흥이 오를 때는 마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따라 술이 달다 달아.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쭉.
그리고
소름 돋게
나는
잠이 들어버렸다.
... 눈 떠보니 승리.
너무너무너무너무 재밌었다는 후기를 읽고서는, 술을 마신 내가 병신이지 으이구 으이구. 봤어야 했는데. 내 간이 이토록 신생아 수준이었다니. 으이고 으이고. 승부차기까지 가서 을매나 꿀잼이었는디요.
잠깐,
진짜 내가 안 봐서 이긴건가.
흠.
호주와의 8강 경기가 다가왔다. 왠지 한국이 이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에 끝까지 보기로 했다. 전반전 40분까지 두 나라 모두 득점 없이 경기를 진행하다가 호주가 먼저 골을 넣었다. 큰방에서 경기를 보던 아빠는 엄마가 아빠의 철지난 군복바지를 버리던 그날처럼 화를 내며 "안 봐! 안 봐!"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곧이어 안방 TV가 꺼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오
제기라라라랄
10만원에 산 나의 삼성전자 주식이 7만원으로 떨어지는 그 날처럼 나는 깊은 빡침을 느꼈다. 소파에 누워 나를 바라보던 엄마는, 왜 그리 오버육바를 떠나며 이해가 안 간다며 혀를 찼다.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나라의 명예가 걸린 일인데 당연히 열정을 가지고 응원해야 되는 것이 아니냐고 엄마에게 따졌다. 그러자 그리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싶으면 유명한 의사나 국회의원이 되지 그랬냐는 엄마의 뼈때리는 말에, 듣다 보니 또 맞는 말인 거 같아서 조용히,
부들부들.
엄마한테 안 들키게 조용조용히 부들부들. 죄 없는 깡통에 못난 딸의 분노를 표출합니다.
이것은 깡통이 아닙니다. 백수 딸의 구겨진 자존심입니다.
잠들지 않으려고 무알콜 맥주를 마셨지만, 후반전 들어가서도 점수가 바뀔 것 같지 않자 불안한 마음에 그냥 티브이를 껐다.
안 보고 말란다.
진작에 TV를 껐던 아빠도 거실 TV 꺼지는 소리에 나와서 "혈압이 200을 찍을것 같으니 그냥 다 같이 잠이나 자자!"며 거실불을 타악- 끄고 방에 쏙 들어갔다. 나는 그대로 거실 바닥에 엎드린 채 분한 마음에 짓눌려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눈뜨자마자 뉴스를 보니,
예?
한국 승리했다고라고라고요? 언제요??? 나 80분까지 보고 잤는데.. 예??
머선 일이여. 이겼네.
끝까지 봤어야 했는데. 으이구으이고. 황희찬이 페널티킥 차고, 손흥민이 마지막 골 넣는 걸 봤어야 됐는데. 으이구으이고.
역시 내가 안 봐서 이겼어.
앞으로 국가 대표 경기가 있을 때는 자진해서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외딴섬에 갇혀있던지 해야겠다. 나를 열두번째 국가대표멤버로 인정해줘요오오.
2002 월드컵 때만 해도 온 동네가 떠들썩했는데 이제는 나만 난리법석인 기분이다. 가끔 나는 인류애를 충전하기 위해 유튜브로 2002년 월드컵 때 영상을 찾아본다. 최선을 다해 열정적으로 뛰는 선수들과 함께 울고 웃던 사람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감동적이었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대단한 승리보다 예전처럼 온 국민이 하나 되어 선수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 시절의 뜨거운 열정이 너무나 그립다.
2월 7일, 요르단과의 4강 경기는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저 년 왜 저래,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난 진지하다.
끗
대한민국 파이팅
사랑해요 손캡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