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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Apr 16. 2024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

116 단편소설



 아빠 회사가 망했다. 엄마는 아빠가 잘못한 것이 아니며 친구를 너무 믿은 탓이라고 말했지만, 어린 나에게는 '보증', '파산'과 같은 어른들의 단어가 외국어처럼 들렸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우리 가족은 새벽 공기를 가르고 도망치듯 연고도 없는 깊은 시골로 떠났다.


 서울에서 살 때는 본 적 없는 아주 낡은 아파트 2층으로 이사를 했다. 오래된 동네는 공기도 무거웠다. 보이는 사람마다 나이가 많고 회색이었다. 이곳에 살면 나도 그들처럼 많은 색을 빼앗기지 않을까 두려웠다.

엄마는 우리의 존재가 들킬까 봐 밖에 나가지 않았고 나도 그림자처럼 조심스럽게 살아야 했다. 학교에서 친구와 제대로 어울리지 못했고 햇빛에 노출되지 않도록 최대한 조용히 외롭게 학교를 다녔다. 낯선 환경과 어둡고 낡은 아파트는 마치 흑백 사진 속 세상처럼 답답하기만 했다.


 우연히 1층의 열린 문틈으로 거실에 앉아있는 여자아이를 보았다. 순식간에 스치듯 봤지만, 그 아이는 창문을 쳐다보며 멍하니 앉아있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라면 친구를 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1층집은 아침엔 문이 굳게 닫혀 있었지만, 학교를 끝나고 올 때쯤이면 문이 열려 있었다. 마치 나에게 함께 놀자는 듯이 말이다. 항상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아이에게 먼저 말을 걸기가 부끄러웠고,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도 몰랐다. 차라리 그 아이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기를 바랐다. '집에 들어와서 같이 놀자'라던가, '윗집에 새로 이사 온 아이구나. 만나서 반가워'라던가. 하지만 그 아이도 지나가는 나의 발자국 소리에 반응해 눈만 꿈뻑꿈뻑할 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어느 날 밤, 아빠를 통해 그 아이가 걷지 못하는 병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몸이 약해 항상 집에서만 지낸다고 했다. 걷지 못하는 그 아이의 삶을 상상하니 마음이 복잡했다. 친구가 될 수 없을 것 같아 절망스러웠다. 대문 아래에 있는 아주 낮은 턱이 그 아이와의 거리를 가로막는 벽처럼 느껴졌다. 왠지 평생 넘어가지 못할 것 같았다. 갑작스러운 많은 변화로 마음이 아픈 나는, 몸이 아픈 그 아이에게서 묘한 감정을 느꼈다. 날 수 있지만 날지 못하는 나와 날수 없지만 날고 싶은 그 아이, 우리 둘 중 누가 더 자유로운 걸까?


 학교에서 만든 바람개비 하나를 1층 아이의 집 문틈에 밀어 넣었다. 같이 놀 용기는 나질 않지만 하루 종일 혼자 놀고 있을 그 아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따끔거렸다. 묘한 감정에 이끌려 매일 아이에게 바람개비를 만들어 선물해 주었다. 아이가 바람개비를 통해 세상을 느끼며 기쁨을 얻기를 바랐다. 그렇게 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형형색색의 바람개비를 만들어 아이의 집에 놓고 왔다.

매일밤 나는 그 아이와 함께 초록색 동산을 뛰며 바람개비를 날리는 꿈을 다. 그 아이의 이름도, 정확한 생김새도 모르지만 난 그 아이가 좋았다. 모든게 회색인 이 곳에서 유일하게 그 아이는 나에게 노란색이었다. 같이 달릴수만 있다면, 내 손끝이 그 아이에게 닿을수만 있다면 왠지 나도 그 아이의 색으로 물들수 있을것 같았다.


 한 달 뒤쯤, 늘 그렇듯 바람개비 하나를  쥐고 학교에서 전속력으로 달려 나왔다. 그 아이가 온몸으로 바람을 느끼며 달리는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찰나의 바람을 바람개비에 꾹꾹 눌러 담았다. 하지만 그 아이의 집은 평소와는 다르게 닫혀있었다. 그다음 날도, 그 다음다음 날에도 나는 그 아이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엄마는 나에게 그 아이가 더 이상 아프지 않은 곳으로 멀리 여행을 떠났다고 했다. 어린 나는 그 말의 뜻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곳이 어디든 그 아이가 더 이상은 집에 갇혀 살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나는 이제야 엄마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하늘을 동경하던 그 아이가 이제는 하늘에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가끔은 여전히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는 그 아이를 생각한다. 흑백에서 벗어나 자유의 색에 물든 나처럼 그 아이도 자유롭게 바람처럼 달리고 있기를.








갑자기 생각나서 후다닥 쓴 단편소설입니다 :)

실화 아니아니요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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