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뱃돈 앞에서 나는 늘 섣불렀다

by 김분주

설날이라 부모님께 세배를 했다. 가족 모두 건강하자는 말로 시작된 아빠의 덕담은 어김없이 되돌이표였다. 같은 문장이 몇 번을 맴돌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듣다 보니 어느새 10분이 지났다. 나의 지겨운 표정을 보셨는지 급하게 억지 감동 연설을 끝맺음하고는 아빠가 서랍을 열었다. 그리곤 주섬주섬 봉투 하나를 꺼내 내 손에 쥐여주셨다.



두툼했다.

끼야아앗호. 흥분돼.




티 나지 않게 햇볕에 슬쩍 비춰봤다. 일단 초록색은 아니다. 누런빛이 돈다. 오, 이건 오만 원권이다. 개이득.



요즘 나는 짠순이 모드라 돈의 무게를 안다. 아빠도 이 봉투의 돈을 모으기 위해 먹고 싶은 거 안 사 먹고, 사고 싶은 걸 참으며 지냈겠지. 그 생각을 하니 봉투가 더 묵직해졌다.


처음에는 마음에도 없는 거절을 1초쯤 했다. 괜찮아요, 아빠 쓰세요, 하다가 이내 곧 감사하다고, 잘 쓰겠다고 말을 바꿨다. 그러고는 봉투 속 금액이 궁금해 개업 풍선처럼 몸이 들썩이고 있었고 어수선한 틈을 이용해 후다닥 방으로 들어와 봉투를 열었다.



아, 왠지 열 장일 것 같다.

용돈은 대부분 5의 배수로 주니까.


그렇다면 오.. 오십만 원...!

오랜만에 심장이 뛴다. 역시 금융치료가 최고다.



막상 금액을 보니 이 돈을 모으기까지 아빠는 얼마나 아꼈을까 싶다. 먹고 싶던 것 안 사 먹고, 사고 싶은 거 하나 참아가며 천천히 모았을 돈들. 이 돈을 받고 기뻐할 내 모습을 상상하며 모으셨겠지. 이건 그냥 돈이 아니라 아빠의 식욕과 물욕을 조금씩 덜어낸 봉투 같았다.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고마워요 아부지.

지이인인짜 아껴서 소중히 쓸게요.



고이 지갑에 옮겨 담으려고
돈을 모두 꺼내는 순간,


50000에서 0이 사라졌어요.


매직아이 버금가는 찰나의 속임수였다.
나는 한참을 다시 들여다봤다. 오천 원 열 장이면 오만 원이 맞네. 맞네 맞아.



아.
내가 너무 빨리 감동했다.




우리 아빠는

먹고 싶은 거 다 사 먹고
사고 싶은 거 다 샀나 보다.









우리 아빠는 잘 살고 계신가 보다.
그게 제일 큰 용돈이다.





+

올해는 0 하나쯤은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는
그런 한 해가 되셨으면 합니다.
즐거운 새해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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