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윗집에는 공룡이 산다

by 김분주

아주 오래된 구식 아파트에서, 학교 기숙사를 거쳐 고시원, 그리고 외국 생활까지. 나는 지금까지 층간소음이 뭔지 모르고 살았다. 대신 경험한 건 벽간소음이었다. 종이짝만큼 얇은 벽 때문에 옆집 남자와 거의 동거 중인 것 같다. 이제껏 내 기침 소리가 벽을 뚫고 옆집까지 전달될까 봐 새벽에 기침이 나오면 주먹으로 입을 막고 참는 게 유일한 고통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주 토요일.

내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감기 때문에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끙끙 앓고 있었다. 새벽 1시가 조금 지난 어둑한 밤. 갑자기 우리 집 공기를 가르는 미세한 울림이 시작됐다.


그리고 곧,


쿵.

쿵.

쿵.


천장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내 전두엽에 꽂혔다.

누군가가 위에서 걸어 다니는데, 마치 천장을 엑스레이로 보는 것처럼 동선이 느껴졌다.


아, 지금은 부엌 쪽으로 가고 다시 안쪽으로 걸어 들어오네? 그리고 갑자기,



쿵쾅쿵쾅쿵쾅



뭔가를 미친 듯이 내려치기 시작했다.

자취 20년 차인 나의 경험으로 봤을 때, 이건 분명 뭔가를 조립하며 만드는 소리다.

그것도 새벽 두 시에.


이 인간은 이 야밤에
집을 짓고 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계속





수십 번을 발도장을 찍으며 왔다 갔다 하더니 두 시간쯤 지나서야 겨우 조용해졌다. 나는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층간소음이구나.


천장에서 떨어지는 소음 마찰이 내 귓싸대기를 때리네.

ㅛㅣ이이이이이이ㅣ발

시끄러웟 신경쓰여 미치것다




문제는 그다음 날부터였다.

윗집 사람은 낮에도 밤에도 하루죙일 계속 쿵쿵거렸다.

내가 사는 오피스텔은 6평 남짓이라 창문에서 문까지 열 걸음도 안 된다. 그런데 윗집 사람은 하루 종일 6평안에서 무한 러닝을 하고 있다.



침대에 누워 나는 곰곰이 생각해 봤다.

도대체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그래서 몇 가지 가설을 세워봤다.



가설 1.

누군가가 손발이 묶인 채로 감금되어 있다.

유일한 탈출 방법은 아랫집에게 SOS를 보내는 것.

그래서 누운 채로 머리를 바닥에 열심히 찧어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가설 2.

60년 차 베테랑 목수가 산다.

그래서 밤낮없이 작품 활동을 한다. 3톤짜리 나무를 장인의 정신으로 내리깎아 뭔가를 만들고 있음이 분명하다.



가설 3.

유튜버가 산다. 24시간 라이브 방송 중이다.

천 원 후원에 앞 구르기, 만원 후원에 각개전투, 그리고 십만 원 후원에 탭댄스를 추는 게 아닐까.


가설 4.

몸무게 700kg 사람이 이사 왔다.


가설 5.

발바닥에 굳은살이 겹겹이 쌓여서 나무토막처럼 딱딱한 사람이 산다. 그래서 걸을 때마다 발도끼를 찍는다. 저렇게 걸어 다니다가 조만간 천장을 깎고 또 깎아 무너져내려 결국 나랑 동침하는 날이 올 것 같다.


가설 6.

전자발찌를 찬 범죄자가 집안에서만 돌아다닌다. 답답한 마음에 세상을 향한 분노를 바닥에 내려찍는다.


가설 7.

공룡이 산다.



하루 종일 감기약에 의지한 채

컨디션 회복을 위해 누워있는데 ,,,


시이이발 잠을 잘 수가 없네?

눈-뜬 산송장

심청이 아버지도 이 정도 소음이면 두 눈이 번쩍 뜨이것다.


층간소음이 졸음을 유발하는 항히스타민 성분을 이겼다.

소음이

현대 의학을 이겨버렸다.



일주일 동안 윗집의 발망치 소리를 들으며 나는 많은 고민을 했다.

나의 분노가 담긴 협박성 쪽지를 붙여볼까.


"발소리 한 번 드럽게 시끄럽네요.

최근 출소해서 소음에 민감합니다.

서로서로 조심합시다 -최두팔-"



아니면 모든사람들이 알게끔 엘리베이터에 대자보를 붙일까.


"1500호 주민은 들으시오.

당신 발 밑에 사람이 삽니다. 발레리나처럼 발끝으로 걸을자신 없으면 처 기어 다니세요."



그것도 아니면 그냥 관리실에 말해버릴까.

하지만 요즘 세상이 워낙 흉흉하지 않은가. 층간소음 때문에 무서운 일도 많이 생기는데 솔직히 무섭다. 이 건물 구조상 윗집에 민원 넣은 사람이 누군지 너무 쉽게 들킨다. 그래서 쫄보인 나는 결국 이런 결론을 내렸다. 윗집이 바뀌길 바라기보다 내가 바뀌는 게 낫다. 윗집이 쿵쿵거릴 때마다 나는 억지 자기 최면을 걸었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윗집에 살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윗집에 살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윗집에 살고 있다.


윗집 새끼의 쿵쿵 거림은 나의 아이돌님의 발소리니라.

내 님이 나를 향한 끝없는 구애의 발소리니라.

아이돌이 내 윗집에 산다고 생각하니 그나마 마음이 진정된다.


사실 윗집에 남자가 사는지 여자가 사는지, 몇 명이 사는지, 심지어 사람이 있는지 조차 모르겠지만, 내 마음 편하자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니 그나마 내가 숨통이 트인다.


그리고 윗집이 새벽에 망치인지 도끼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내려칠 때 마다,

는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한다.


까치가 울면 귀한 손님이 온다는 말처럼.

소음은 나에게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신호라고.



윗집에서 들리는

이건 까치처럼 행운의 소리다.

단지 겁나 시끄럽고 거슬리는 까치일뿐이다.



만약 이 까치의 울부짖음이 더 심해지면

나는 16층 사람과 친해질 생각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쿵쿵에는 쾅쾅이다.




천장 하이 kick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조금 잠잠해졌습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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