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분주 Jan 14. 2023

난해하고 불친절한 그것들

20

나는 어릴 때부터 미술에 소질이 있었다. 앙드레김 같은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했고 그림 그릴 때면 우주를 여행하는 것처럼 무아지경이 될 정도로 미술을 사랑했다. 하지만 미술대학으로 진로를 정했을 때 엄마의 반대가 무척 심했다. 엄마도 미대출신인데 미술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는 밥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 대학 동창들을 보면 미술 관련으로 일 하시는 분은 아무도 없다 굳이이이이 뽑자면 미대 나와서 가장 전공 살려 취업한 동창은 속옷 가게를 오픈한 게 다 일 정도니까.


부모님을 겨우 설득하여 디자인과에 입학했는데 현실은 생각과는 매우 달랐다. 4년이란 시간 동안 대학에서 배운 거라고는 자동차 바퀴 그리는 법이랑 포토샵이 다인데 엄마 말대로 미술은 내가 밥 벌어먹고 사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굳이 디자인 전공의 장점을 뽑자면, 현재 난 포토샵은 이미 저세상급이 되어서 사람 하나 여신으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대학 4년 치 등록금을 주고 오징어에서 인어공주로 재창조하는 능력 하나 배웠다 해야 하나.


이루지 못한 꿈 때문인지 나는 미술 작품을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일종의 대리만족으로. 유럽에 있는 웬만한 유명한 미술관을 다 방문했었고 한국에서 열리는 전시회도 빠지지 않고 관람한다. 이번 부산에서 열린 이건희 컬랙션도 오픈런으로 가서 보고 왔고 (사랑해요 삼성) 알려지지 않은 작가라 해도 전시일정이 뜨면 무작정 보러 간다.


근데 현대미술 영역은 뭐랄까 참 애매모호하다. 전 세계적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고전 작품은 그림의 배경이나 스토리가 잘 나와있어 딱 보자마자 한눈에 작가가 무엇을 그렸으며 보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자 하는지 알 수 있어 웅장하게 가슴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현대미술은 난 잘 모르겠다. 한번 보고 두 번 보고 옆에서 보고 거꾸로 보고 멀리서 보고 가까이보고 해설도 읽어보고 집에 와서 다시 인터넷 검색해 봐도 모르겠다. 나도 나름 미술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현대미술 작품 앞에서는 갓난아이처럼 1도 모르겠다.


어떤 이들은 현대미술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 작품의 의도를 각자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어서 매력적이라고 했다. 이 말에 공감하는 게, 몇 년 전 비엔날레 전시 행사 스케줄에 맞춰 이탈리아에 여행 적이 있는데 창고 같은 전시장에 불 꺼진 냉장고 한대만 아래위 문이 열린 채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제목은 아마 '현대인'이었나 '현대인의 삶'이었나. 아무튼 나는 작품 앞에서 서서 작가는 아무리 먹고 다시 채워도 비어있는 현대인의 고뇌와 상실감을 표현한 게 아닐까 싶은 마음에 한참을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행사장 직원이 와서는, 냉장고 전원이 고장 나서 지금 철거 중이니 나가달라고 했다. 이런 젠장. 그냥 그건 철거 중이던 냉장고였고 나는 앞에서 몇 분 동안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자 고민했으며 나름 의미를 작품에 부여시켜 감탄하고 있었는데 그냥 그건 이탈리아 냉장고였다. 내가 행동은 쉽게 말해 필리핀에서 여자가 열린 LG 디오스 냉장고 앞에 10분이나 서서 이것은 대한민국의 차가움과 텅 비어버린 이웃 간의 정 표현한 작품이구나 혼자 감탄한 셈이다. 여기 병신 추가요.


또 어떤 작품들은 나를 저게 뭐야라고 황당하게 만들기도 한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는데 비디오아트 형식의 짧은 영상으로 남자가 침대에서 자고 일어나 베개 위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한참 내려다보곤 쓸어 담고선 빈 화분에 뿌리더니 물을 주기 시작했고 화면이 빨기 감기 한 것처럼 빨라지더니 갑자기 화분이 가발을 뿅 하고 아기 낳듯 뱉어내면서 화면이 끝났다. 이런 시발. 약간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처럼 머리 심은 데 머리 난다의 연장선인 건가. 난해하다 난해해. 생 베이컨을 칭칭 두른 조각품을 전시해기도 하고 홀딱 벗고 숲 속을 날뛰기도 하고 개목걸이를 차고 개집 앞에 묶여있기도 하고. 휴. 한 번은 전시회 바닥에 초코파이를 몇 천몇 만개를 뿌려놓고는 작가가 가져가도 된다고 말했지만 관람객 모두 눈치 게임한다고 흠칫흠칫 거리며 어느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 못했다. 이거마저 작가가 의도한 걸까 줘도 못 먹는 현대인것들. 어려워 정말. 제발 누가 좀 날 이해시켜 줘.


화요일에 간 미술관에서도 정말 여러 난해한 작품을 봤는데, 이게 뭘까 도대체 뭘 말하고자 하는 걸까 여러 번 의문이 들었고 계속 보다 보니 참 기괴하다 기괴해 싶은 마음에 소름까지 돋았다. 미술작가가 아닌 일반 머글이라서 그런 지 속 보고 있으면 악몽을 꿀 것 같아 (정답 정말 악몽당첨) 전시장을 나와 그제야 전시회 타이틀을 봤는데 친숙한 기이한 이라 적혀있었다. 빙고. 내가 느낀 기이하고 찝찝한 기분은 정상이었군 그렇다면 작가의 의도에 맞게 제대로 감상한 것이다. 난 현대미술이라는 큰 뜻을 담기엔 아직 그릇이 작구나 싶은 생각이 전시회장을 나오는 내내 머리를 맴돌았다. 집에 와서 폭풍검색을 한 뒤 다른 사람의 해석글을 여러 번 읽은 후에야 '아' 감탄이 나왔다. 현대미술은 이렇듯 나에게 누군가 친절히 해석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 다른 나라 언어 같은 존재이다. 이게 나만 느끼는 어려움일까.


현대미술작품은 아무리 몇백 작품을 봐도 여전히 모르겠고 어렵고 불친절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계속 보러 다니는 건 작가의 생각과 언어 그리고 표현의 깊이를 언젠가는 이해하고 공감하는 날들이 오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 때문이다. 보다 더 큰 이유는 작품을 보는 게 재밌다 정말 상상치도 못한 표현 방법들과 예상밖의 결과물들이 나를 소름 돋게 하고, 보면 기분 찝찝하고 이상한데 안 보면 궁금한 그런 매력 때문에 계속 찾게 된다. 마치 강아지의 콤콤한 발바닥 꼬랑내처럼.



현대미술을 감상하는 본인의 모습을

간단하게 서술해 보시오

답:  ㄴ('0')ㄱ










 


  


작가의 이전글 난 명절 잔소리가 전혀 괴롭지 않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