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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Jan 13. 2023

난 명절 잔소리가 전혀 괴롭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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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다가오면 주변 사람들은 나를 걱정한다.

친척들이 결혼하라고 들들 볶지 않냐고. 전혀. 아무도 나에게 결혼하라고 하지 않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명절이며 가족행사며 사촌들이 애기들을 줄줄이 소세지마냥 줄줄 매달고 와도 친척들은 나에게 아무런 질문도 눈치도 주지 않는다. 어쩜 나는 가능성이 없다고 그들 선에서 이미 생각해 버려서 그런지 전혀 부담이 없다. 이뿐 아니라 연봉은 얼마냐 집 마련은 해뒀냐 재테크는 잘하고 있냐 등 난 모든 잔소리에서 아웃 오브 안중 인 사람이다.


친가 쪽에는 나랑 사촌언니 빼고 다들 결혼했다. 사촌언니는 의사라 친척들은 언니가 굳이 결혼하지 않아도 제 앞가림은 하지 않냐며 말하면서 나에게는 그 어떤 조언도 눈길도 주지 않는다. 내가 제일 막내여서 그런지 나이가 30이 훌쩍 넘었는데도 그들 눈에는 여전히 어리고 철없는 막내로 보이나 보다. 어릴 때부터 나는 말이 많았고 내 몸하나 불사 질러 남들 즐겁게 해주는 낙으로 살았던 터라 그런 내 모습을 쭉 본 친척들은 내가 진지해도 그저 우습고 내가 하는 말은 다 거짓부렁이고 나의 삶 자체가 그저 가벼운 해프닝이라고 생각하는 게 분명 있다. 무시한다고 하기에는 나를 잘 챙겨주지만 뭐랄까 그냥 그게 애매하다.


친가 쪽 사람들은 사람을 부를 때 그 사람의 지위나 직업으로 부르는 걸 좋아하는데 의사인 사촌언니는 김닥터, 대학교수인 사촌오빠는 김교수, 경찰인 오빠는 김순경, 공무원들은 우선생, 김과장 등등으로 남 들으라는 듯 당당하게 부르지만, 그 당시 내가 학생을 가르치는 몇 년차 영어강사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냥 걍 김분주다. 예를 들어 다 같이 모인 명절날, '김교수, 김순경, 우선생 어서 와서 식사들 하고, 김대리랑 김분주는 여기 와서 먹거라' 시발 왜 나만 김분주냐고. 나도 김선생이라 불릴 수 있는 거 아닌가. 어릴 때부터 공부랑 담쌓고 놀러 다닌 걸 아는 친척들은 내가 외국에서 살다와 영어강사를 한다고 했는데도 안 믿는 눈치다. 손담비의 니가 정도의 업신 눈빛은 덤이고. 왠지 내가 결혼해서 애를 낳아 데리고 가도 내 아기라고 안 믿을 사람들임이 분명하다. 이 애기가 니 애기라고? 니가?


비단 우리 친척들 뿐만 아니라 부모님도 나의 혼사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다. 가끔씩 엄마의 통화를 들어보면 엄마 친구 아들이 곧 40대인데 주변에 좋은 아가씨가 없어서 걱정이라며 둘이서 수다를 떤다. 엄친아 정도면 스펙도 좋고 인물도 좋은데 왜 아가씨가 없냐며 엄마가 괜찮은 아가씨로 한번 알아보겠다고 전화를 끊고는 이리저리 전화해서 아가씨를 물색한다. 근데 있잖아 엄마 나는? 그 스펙 좋고 인물 좋은 친구 아들 나 소개해주면 되잖아라고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은근히 바랬는데 엄마한테는 나는 고민의 대상도 안되나 보다. 설사 엄마에게 나를 소개해달라는 전화가 오면 엄마가 알아서 칼같이 끊어낸다. 우리 딸은 그런데 관심 없어. 물론 내가 결혼에 관심은 없지만 가능성은 열어둘 수 있는 거 아닌가.


사실 예전에 엄마와는 사건이 있었다. 엄마랑 앉아서 티브이를 보는데 굉장히 잘생긴 농촌 총각이 나왔다. 오 저 정도면 나는 결혼할 수 있을 것 같아 라 했더니 엄마가 나에게 결혼조건을 말해보라 해서 얼굴은 꼭 잘생겨야 하고 농사짓는 게 로망이었으니까 큰 마당 딸린 집 있는 시골총각한테 시집갈래 라 했더니 엄마는 앞에꺼는 다 잘라먹고 시골총각만 기억에 남았는지 그때부터 각 지역 시골총각 번호를 우표 수집하듯 수집해서 나에게 알려줬다. 그 일이 있은 뒤로 나는 더 이상 엄마하고는 결혼에 대해 일절 대화조차 하지 않기도 했다.


감사하게도 엄마 친구들은 나를 굉장히 좋게 생각한다.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엄마 친구분들이 내 이야기만 나오면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칭찬한다고 엄마가 어깨가 으쓱하다고 한다. 얼굴도 반반한데 (이건 그냥 내 생각) 생활력이 얼마나 강한지부터 시작해서 손재주 있고 어른공경 하고 요리 잘하고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내 아들 짝으로는 안줘못줘왜줘.힝.


글을 쓰다 보니 마치 내가 굉장히 결혼하고 싶어 하는 여자로 비칠 수 있겠다 싶다. 현재는 딱히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없지만 1%의 가능성은 늘 열어둔다. 내가 언제 어디서 잘생긴 시골총각을 만날지는 모를 일이니까. 나는 매년 1%씩 가능성을 열어두려고 마음을 오픈하지만 친척과 엄마 그리고 엄마친구들이 나의 그 작디작은 가능성을 굳이 닫아버리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으로 그들 덕에 반강제적 비혼주의가 되어가고 있다.

다들 고... 고마워요.



여담으로,

나는 내 친구들과 결혼하지 않는 여자들의 모임 하나를 만들었다. 

이름하야 독사 클럽.

살모사처럼 독하게 이 험한 세상 꿋꿋이 살아가자의 의미에서 독사클럽이라 지었다 생각하지만

사실 앞에 붙은 ''자는 묵음이다.







다들 실버타운에서 만나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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