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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Feb 07. 2023

전설의 한국인이 되다

나의 네 번째 직장은 호주 퀸즐랜드에 위치한 골드코스트로 많은 사람들이 휴식과 여가를 즐기는 황금빛 해변의 휴양도시이다. 리조트일을 못 구하더라도 이 도시에서 한 번쯤은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덜컥 단기 숙소부터 구해버렸다. 사실 공항에 내리자마자 왠지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약속한 인터뷰날이 되었다.

영어로 대면 인터뷰를 하는 게 처음이라 긴장했지만 뭘 물어볼지 몰라서 준비도 하지 않고 될 대로 돼라 식으로 마음 비우고 갔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슈퍼바이저 사무실에 들어가니 깐깐해 보이는 호주 아줌마가 이력서를 들고 있었다. 예상한대로 자기소개부터 해보라고 했다. 자기소개 하나만큼은 원어민 수준으로 기계처럼 술술 읆어댔고 예의상인지 그 사람은 함박미소를 지어보였다. 웃음장벽이 낮아보이는 그녀에게 손짓발짓호구짓을 하며 적극적으로 어필했고, 그 사람의 눈에서 하트 뿅뿅이 나오고 있는 걸 느꼈다. 그리고 나의 필살기. 두유노 싸이를 시전 하며 말춤까지 넉넉히 옛다 받아라.


언제부터 일 가능하냐고 묻길래 건방지게 나는 정착 준비를 해야 하니 다음 주부터 일할 수 있고, 기숙사 동생과 함께 일해야지만 여기 리조트 일이 가능하다고 하며 코리안 외노자 주제에 건방을 떨었다.하지만 호오오옥시나 싶은 불안한 마음에 노예의지를 보여주는 온갖 노동 영어 단어를 줄줄이 나열하며 워킹 머신이라 스스로를 일컬어 목숨 바쳐 이 한 몸 불사 지르겠다 뽑아달라 엉엉 마지막 짜는 소리까지 완벽하게 굿굿.



그날 밤 합격 메일이 도착했다. 꿈의 직장답게 시급이 다른 일보다 1.5배로 높았다. 주말출근이나 야근추가수당은 2배로 처줬다, 같은 계열사인 놀이공원, 워터파크, 아웃백 등 직원혜택으로 모두 무료로 입장 가능했다. 직원카드만 있으면 사실상 무적으로 처음 보는 다른 계열 직원들도 리조트 직원카드만 보면 친절히 대해주고 할인도 해주고 더 퍼줄라고 해줬다. 마패 수준이던 직원카드 덕분에 막판 호주 생활이 즐거웠다.


오리엔테이션날, 새직원들을 위해 리조트 투어 및 돌고래 관람 (...왜?)을 해주고, 유니폼 전달 및 사진 촬영, 직원카드를 발급받고 스케줄표까지 받아보니 실감이 났다. 유일한 한국인 직원으로써 국위선양 국가대표 마음으로 열심히 해야겠다 다짐했다. 그래봤자 아시안 외노자지만 그 순간은 꽤나 진심이었다.


나는 Room Attendance로 객실 청소를 했다 영어로 적어서 멋있어 보이지만 걍 청소해주는 아줌마다. 원래 손이 빠르고 성격도 급한 편이라 뭐든 빨리 해치워버려야 조급증을 달고 사는 나는, 항상 객실 한 개를 남겨두고 초스피드로 청소한 다음 느긋하게 점심을 먹으러 갔다. 마지막 객실에서 노래를 들으며 아주 천천히 시간을 보냈다. 체크하는 슈퍼바이저도 나의 이런 밉상 행동을 알고 있었지만 딱히 뭐라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청소를 잘했기 때문이다. 그냥 잘한게 아니라 매우 잘했다고 한다.


슈퍼바이저들은 객실을 돌아다니면서 객실 청소 검사를 한다. 청소가 제대로 안되어 있으면 직원을 다시 불러 재청소를 시키고 나서야 메인 프론트에 전화해 컨펌을 받고 손님을 받는 식이다. 나는 한 번도 재호출 받은 적도 없다. 일한지 3주 뒤에는 슈퍼바이저는 내가 청소한 방은 검사할 필요 없으니 바로 프론트로 무전을 치라고 직통번호까지 알려줬다. 이것이 경력직의 위엄이다.





슈퍼바이저들이 나를 좋아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객실 침대를 잘 정돈해서이다. 군대 내무반 수준의 칼각으로 신경써서 혼신의 힘을 다해 정리했는데 다른 직원들은 침대를 대충 만들었다. 물론 나만큼 노예처럼 일하지도 않았다. 하루는 아침 조회시간에 매니저가 침대정리 언급을 하면서 오늘은 특별히 Miss 분주가 침대 만드는 걸 다 같이 관찰하고 배우면 좋을 것 같다고 의견을 냈다. 물론 내 의견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 몇십 명의 직원들 단체로 우르르 가장 가까운 방으로 향했다.


나를 가운데 자리로 이끌었고 다들 잘 보라면서 이것이 우리 리조트의 명성에 걸맞은 하이 레벨 침대다의 말도 안 되는 애사심 가득한 발언으로 시선을 모아줬다. 


고-고마워요. 

아리가또 고자고자.

렇게 나는 몇십 명의 호주인 직원 앞에서 휘리릭 뿜뿜 침대매트를 들었다가 놨다가 시트를 돌렸다가 놨다가 금난새 지휘자처럼 침대를 가지고 놀았다. 이 순간 나는 애국자요 독립운동자니라.

어머 이건 찍어야 돼.

몇몇 직원들은 동영상까지 찍었다. 마 지금도 나의 동영상이 리조트 신입들에게 전설적인 코리아 외노자의 야무진 침대정리쇼 영상이 되어 대대손손 내려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는 이어지는 동료들의

박수갈채. 휘우 멋있다 박연진. 이제 모든 청소는 니가 다  해라.

소득없는 노동.



동양인 직원이 나밖에 없다 보니(동생은 3개월 일하고 한국으로 들어감) 동양인 손님들이 오면 통역해 달라고 항상 나를 찾았다. 아시안 손님들이 와서 호주 직원들에게 말을 걸면 꼭 나에게 도와달라고 억지로 끌고 갔는데 막상 따라가보면 90%가 중국인이다. 나는 한국인이라서 중국말 모른다고 하면 같은 나라 아니냐고 악의 없는 인종차별발언을 다. 언어가 다르다고 하면, 너 싸이 나라에서 왔잖아 싸이 중국인이잖아라고 은근히 맞는 뼈때리는 말을 하곤 했는데 왠지 그럴싸한 논리라 반박을 못했다.


일을 잘하다 보니 남들보다 일을 많이 했다 물론 일한 만큼 통장에 꽂히는 숫자도 컸다. 내가 외노자라 그런지 외화벌이에 도움이 되라고 2배 수당을 쳐주는 날이나 깐깐한 VIP룸도 나만 배정해줬다. 진짜 힘들고 너무 고단하고 내가 멀리 외국에 와서 뭐 하나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통장을 보면,

꺄 너무조항. 

내레 김 외노자, 내 고향 남조선에 비즈니스석 타고 금의환향할 수 있갔시요. 충슁.


그렇게 호주에서 돈도 꽤 벌고 자연스레 영어실력도 쌓았다. 

내 인생에 가장 최고의 시간이 언제였냐고 물으면 난 호주에서 보낸 매일매일이 최고였다고 대답할 수 있다. 이로써 외국 노예생활은 끝이 났다고 생각했는데 계획에도 없었던 뉴질랜드로 가서 다시 노예가 될 줄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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