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시작한 두 번째 아르바이트는 지금으로 치면 스타필드 푸드코트에 있는 음식점 같은 개념으로, 하루 방문 손님만 어림잡아 200명은 됐고 주말은 훨씬 더 많았다. 서브위에 샌드위치 가게처럼 손님이 원하는 재료를 눈앞에서 약간의 퍼포먼스와 함께 바로 뚝딱뚝딱 만들어주는 곳이었다.
앞서 일했던 커피숍과는 달리 이곳은 일분일초가 전쟁이었다. 워낙 다양한 인종의 손님이 방문하다 보니 매 순간 긴장을 하지 않으면 안 됐다. 생각해 보면 영어실력이 단기간에 제일 빨리 늘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 가게는 60대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하는 곳으로 역사가 깊은 곳이라며 사장님은 본인 가게를 자랑스러워했다. 그만큼 단골 손님도 많았고 장사도 잘됐다. 장사가 잘된다고 시급이 올라갈 일이 없으니 나는 장사가 잘되는게 너무 싫었다.
사장님은 호주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가진 학생들만 알바를 시켜줬는데 (도망 방지..?) 사모님이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바람에 사장님은 내키지 않았지만 날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해 줬다. 그래서 언제나 사장님은 내가 실수라도 하길 바라는 못마땅 한 눈빛으로 나를 관찰했었다.
아이고. 이런 귀한 곳에 누추한 분이 오시다니.
네 년을 CCTV 처럼 관찰할테야.
주문 방식을 설명하자면, 종이 접시 뒷면에 손님이 원하는 재료와 손님의 인상착의를 간단하게 적어 사장님께 전달하면, 사장님이 주문을 보고 그 자리에서 바로 만들어 특정 손님에게 쨘-하고 전달하는 방식이다 약간의 과한 요리 퍼포먼스와 함께. * 예시) 양파 치즈 토마토 베이컨 바질 소금 후추_ 파란 옷코 피어싱 남.
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때 손님이 줄지어 서있는걸 보고 급한 마음에 인상착의를 '외국인'이라고 적었다가 가게 뒤편으로 불러갔다
"분주씨, 여기 어디죠? 호주입니다. 다 외국인이죠? 이런 식으로 쓰면 여기서 일 못합니다."
그렇게 한번 혼났다,
앞으로는 주의하고 열심히 일하겠다 말하고는 다시 주문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노란 머리 남'라고 적었다. 그리고는 또 뒤편으로 불려갔다
"분주씨, 여기 사람들 대부분 밝은 노란색머리입니다. 이런 식으로 쓰면 같이 일 못합니다."
내가 마음에 안드니 뭐든 꼬투리 잡는 느낌이었지만 돈을 벌어야 하기때문에 꾹 참고 일했다. 사회에서는 아르바이트생이 을이니까 어쩌겠는가. 죽으라면 죽는시늉을 해야하는게 내 위치인것을.
두 번이나 혼났다. 분했다.
언젠가는 인정받으리라 이를 갈고 손님을 기다리는데, 안경 낀 호주인 할머니가 왔다. 주문사항을 빠르게 받아 적고 밑에 '안경낀 호주 할머니' 라 구체적으로 인상착의를 적었고 사장님께 칭찬받을 생각에 설레였다. 하지만 옆 아르바이트생의 손님도 안경을 낀 호주인 할머니가 있었다.
ㅈ됐다.
또 혼나겠구나.
....아니지? 옆 아르바이트생도 분명 안경낀 할머니라고 썼을 테니 둘 다 혼나거나 그냥 넘어가겠지 싶었는데 이번에도 뒤편으로 나를 호출했다. 그것도 나만.
또 죄인처럼 쭈볏쭈볏 서있는데 사장님이 옆 아르바이트생은 '안경낀 진주목걸이 할머니'라 적었다 했다. 그 야시 같은 아르바이트생이 언제 할머니의 진주목걸이를 봤는지 그 한 단어 더 적었다고 사장님은 나보고 그런 센스를 배우라며 이런 식으로 하면 일 못한다고 했다. 이것이 경력직과 신입의 차이인가.
너무 분해서 나는 매일밤 TV를 보며 연예인들의 인상착의를 빨리 적는 연습을 수없이 했다. 연습을 하니 손님의 특징이 눈에 잘 보이기 시작했고 어느 시점부터는 '초록나시 링귀걸이 여학생' '백발 빨간 안경 할머니''대머리 문신 인도남'등 CSI 몽타주급으로 아주 정확하게 적었는데, 또 뒤편으로 불려 갔다.
"분주씨, 안 그래도 가게 바쁜데 그렇게 자세히 적고 있을 시간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면 같이 일 못합니다."
이런ㅆ.
나 안 해 안 해. 어느 장단에 맞춰주리오.
그냥 나를 잘라라 잘라.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더니 노력이 아니라 사장 니놈이 나를 배신하는구나.
그렇게 사장 눈치를 보며 일하던 어느 날, 재료 손질을 하다가 큰 도끼칼에 손가락을 베여 피가 굉장히 많이 났다. 같이 일하던 아르바이트생들과 사모님 모두 엄청 놀랬지만 정작 나는 무덤덤했다. 손가락이 꽤나 깊게 베여 심각해보였지만 그때는 별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평상시 오버를 잘하는 어린 아르바이트생이 내 손가락이 절단되어 달랑달랑거린다면서 경악을 했고 (그 정도까진 아닌데..) 당장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아야되는거 아니냐고 걱정했지만 한참 가게가 가장 바쁜 토요일이고 내가 빠지면 나머지 사람들이 힘들걸 알기에 일단 바쁜 점심시간까지만 하고 가겠다 말했다.
사모님이 사온 응급처치약을 바르고 시간이 지나니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하도 옆에서 호들갑을 떨어대니 왠지 모르게 아파야 할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래서 괜히 움직일 때마다 으아아ㅏㅏㅇ악 괴성을 질렀다. 이미 진작에 멈춘 피를 아주 쥐어짜 내 붕대를 피로 젖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일부러 사장 옆에서 알짱거리며 손님이 주문하면 다친 손가락을 치켜들어 'one? just one?' 손가락을 사장 코앞에서 보란 듯이 살랑살랑 흔들어댔다.
사장님 사장님 날 좀 봐주소 여기 좀 봐주소.
관심좀 주시오.
보다 못한 사장이 나를 뒤편으로 호출했다. 그리고는 처음보는 표정으로 나처럼 책임감 있는 아르바이트생은 처음 봤다며,
이런 식으로 우리 평생 갑시다
일한 지 한 달 만에 드디어 나를 가게 식구로 인정해 줬다.
손가락 절단사건이 있은 뒤로 (고작 손가락 베인 것뿐이지만) 사장님은 나에게 무한 사랑과 신뢰를 표현했고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에게 간식으로 햄치즈 크라페를 만들어 줄 때, 나에게만 베이컨과 올리브를 잔뜩 몰래 넣어줬다. 사랑과 관심이 필요했던 나는 사장님의 정성에 더욱 노예처럼 일했다.
더 이상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없으니 가게는 엄청 바빴지만 일하는 게 너무 즐거웠다. 가게 앞을 지나가는 손님들에게 농담도 하고 호객행위도 하면서 그렇게 5개월을 일했다. 커피숍과 마찬가지로 영어학습에 대한 다른 목마름이 왔을 때쯤, 리조트 알바 자리를 알아보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배 타고 섬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