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분주 Feb 09. 2023

짧지만 한방

35

한동안 영어 에피소드를 적다 보니 글감이 화수분처럼 쏟아진다. 영어가 내 인생에 들어온 지 10년이 넘었으니 그동안의 에피소드들이 무궁무진할 수밖에. 오늘은 내 인생 레전드급인 짧은 에피소드를 적고자 한다.


내가 뉴질랜드에 있었을 때 생긴 일이다. 때는 12월 31일, 제야의 종소리를 몇 시간 앞둔 늦은 밤이었다. 친구와 같이 다운타운 술집에서 새해 카운트다운을 하려고 집에서 온갖 멋이란 멋은 다 부리고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 서있었다. 5분가량 기다리고 있는데 술 취한 뉴질랜드 남자 2명이 우리를 쓰윽 보고는 가던 길을 다시 되돌아와 알코올 가득한 느끼한 눈빛으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How much?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나에게 소비자 가격을 묻다니.

나는 뭔 병신이지 싶은 마음도 잠깐 들었지만 당연히 버스 요금을 묻는다고 생각해서

4천 원이다 이놈아.


그랬더니 그 남자가 화들짝 놀랬다. 고작 버스비 4천원에 저리 놀래나 싶었는데  술 취한 외국인이랑 엮여봤자 좋을 거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무시하려고 했다. 그랬더니 나에게 조금 더 가까이 오더니,


남자: Wooooowww. For real?4 dollars? Sooo cheap. 와우웅우ㅜㅇ우 진짜루? 4천원? 핵 저렴하구나

나: yeah, I know, it's pretty cheap. 엉 나도 알아. (버스요금) 킹왕짱 싸다 싸

 

당황스러운 반응으로 짐작컨대 이 남자가 버스를 처음 타나 싶은 마음도 들었다. 나는 버스카드를 사용하기에 사실 정확한 요금을 몰라 대략 4달러 라 했는데 갑자기 자기 주머니를 뒤적뒤적하고는 5달러짜리를 호다닥 꺼내더니  코앞에 대고 살랑살랑. 뭐지 이 병맛스러운 전개는.


그리고는 나를 아래위로 끈적한 눈빛으로 훑터보더니 자기 집에 가자느니 어쩌느니 버스와는 전혀 맞지 않는 말들을 하기 시작했고 그제야 나는 이 남자가 버스 가격을 묻는 게 아님을 알아챘다.


그 남자의 입장에서 굳이 생각해 보자면 늦은 밤 길거리에 헐벗은 여자 2명이 오늘 4천 원입니다 라고 말하니 콧구멍이 벌렁벌렁 심장이 콩닥콩닥 우왕굳. 이렇게 나는 또 한 번 모든 말에는 주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 주어란 상태의 주체를 말한다.


아마 남자의 속마음은 이랬을 듯

미치겠구만 아이고 좋다

데이트 비용이 사딸라 라니. (환율적용 3180원)





작가의 이전글 영어공부 포기하지 말아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