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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Feb 10. 2023

독일의 그 날밤 1, 내가 본 것은 악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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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보다 무섭습니다. 경고합니다 삐용삐용.


오늘은 소름 끼치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때는 2008년, 내가 20대 초반에 생긴 일이다.

당시 나는 혼자 유럽여행을 하고 있었고, 마지막 여행지인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 한인 숙소에서 마지막 하루를 머물기로 했다.


보통 유럽의 한인 숙소는 남녀 방 한 칸씩 해서, 여러 대의 침대가 있고 거실 및 주방, 화장실은 공용으로 사용한다. 여행을 한 시기는 11월 말쯤이라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어 대부분의 숙소는 한산했다. 숙소 주인은 어렴풋이 생각나지만 50대 아저씨로 다른 곳에서 가족들과 지내면서 출퇴근하시며 숙소를 관리하셨다. 그날은 마침 여자 관광객이 나밖에 없다며 편하게 방을 쓰라고 했다. (참고로 공용숙소는 문을 잠글 수가 없습니다. 도난 방치 차원에서)


아침에 뮌헨에서 프랑프푸르트로 도착한 나는 숙소에 간단하게 짐을 풀었다. 그곳에 이미 몇 일째 머물고 있던 친구사이인 A군과 B군, 그리고 세계일주를 하고 있던 C군이 있었다. 다들 나보다 오빠들이었고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나를 재밌어하며 동생처럼 잘 챙겨줬다. 그 오빠들이 없었다면 난 아마 그것이 알고 싶다의 주인공으로 세상에 알려질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다.


그날 우리 4명은 스케줄이 맞아 같이 나가기로 했고 밤까지 관광을 하며 9시쯤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는 남자 여행객이 한 명 더 와있는데 살찐 성시경처럼 생긴 30대 초중반의 남자로, 그는 서울말을 구사하며 우리들에게 굉장한 관심을 보였다. 본인은 독일을 첫 여행지로 들어왔으며 유럽 한 바퀴를 돌고 미국인가 캐나다로 건너간다고 했다.


그냥 돈 많은 집 자식이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남자가 갑자기 남자방에서 한 봉지 가득 소주를 가지고 나왔다. 한인마트에서 샀는지, 공항에서 샀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소주가 굉장히 많았다. 오랜만에 소주를 마셔본다며 같이 있던 오빠들은 즐거워했고, 그렇게 우리들은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며 다 같이 마시기로 했다.   


10시쯤 술판이 벌어졌고, 직사각형 식탁에 그 남자와 C군이 나란히 앉았고 그 맞은편에 나와 A군이, 왼쪽면에 B군이 혼자 앉았다. 우리들은 각자 여행지에서 생긴 재밌는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웬만하면 밖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 편이라 술은 거절하고 혼자서 주스를 마셨고, 나머지 남자 4명은 부어라 마셔라 술을 술처럼 술술 마셔댔다.


그렇게 2시간가량 시간이 흘러, 한두 명씩 취하기 시작했고, 특히 물처럼 깡소주를 벌컥벌컥 마시던 그 남자가 가장 많이, 그것도 빨리 취했다. 그리고는 슬슬 우리들에게 말을 놓으면서 듣기에도 민망한 야한 농담을 안주삼아 툭툭 내뱉었다. 분위기가 쌔해지는걸 느낀 A군이 "에이 형님, 여기 어린 여자애도 있는데, 그런 이야기는 우리끼리 하시 허허" 분위기를 전환시키려 노력했지만 실패. 그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왜, 이 여자애가 니 이거라도 되냐." 말함과 동시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 새끼손가락을 흔들어댔다. 아오 씨 비엔나 소세지 같은 새끼손가락을 뺀찌로 뽑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남자는 한 명씩 돌아가면서 이 새끼 저 새끼 욕을 하며 시비를 걸었고, 술 취한 미친놈 건드려봤자 득 될 거 없다고 느낀 오빠들은 그냥 다들 참고 있는 분위기였다. 오빠들의 무반응이 재미없었는지 나를 타깃으로 바꿔 시비를 걸었고, 유일한 여자인 나에게 또다시 성희롱급 유머를 던지며 혼자 낄낄거렸다.


이러다가 끝도 없을 것 같았는지 B군이 남자들끼리만 술을 더 마셔야겠다고 나보고 들어가서 자라고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냥 벌떡 일어나면 분위기가 심각해질 것 같아 괜스레 입 찢어져라 과도한 하품 리액션을 보이며 너무 잠이 와서 먼저 들어가 보겠다고 하고 혼자 여자방으로 들어왔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무섭거나 뭔 일이 날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않았고 문을 잠그거나 문이 열리지 않게 뭔가를 막아둬야겠다는 생각은 일체 하지 않았다. 그냥 저 술판이 빨리 끝나서 조용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혼자 방 안에서 몇 시간 남지 않은 귀국을 준비하며 리어를 정리했고 갑자기 잠이 쏟아지듯와 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창가  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웠는데 스르륵 잠이 들어버렸다.


몇 시간쯤 흘렀을까,

나는 평상시도 꿈을 자주 꾸는데 대부분이 나의 무의식과 관련된 말도 안 되는 내용의 꿈이다. 근데 그날은 달랐다. 귀신이나 조상님의 계시 혹은 경고 같은 건 믿지 않는 편이었는데 그날은 분명 뭔가가 나를 도왔다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한참 자고 있는데 꿈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소리쳤다 '일어나!!!!' 짧고 굵은 외침. 여자목소리인지 남자목소리인지도 분간 안될 정도로 목소리톤이 이상했고 현실에서인지 꿈에서인지 구분 못할 정도로 너무 또렷한 목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에 벌떡 일어나 시계를 보니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많이 피곤하니 별 이상한 꿈을 꾸는구나 싶어 다시 누워 눈을 감으려는 그 순간, 여자방 문이 천천히 열리더니, 그 남자가 조용히 들어왔고 내 발끝  살포시 앉아 나를 가만히 빤히 쳐다봤다.


그 순간 나는 고함을 지르거나 그 남자를 자극시키는 큰 행동을 하면 안 될 것 같은 찰나의 판단으로 그냥 정말 아무렇지 않게 (온몸은 벌벌 떨렸지만) 금방 잠에서 막 깬 것처럼 " 어? 오빠 여기서 뭐해요? 안 주무셨어요?" 내가 정신이 멀쩡하다는 걸 은근히 알렸고, 어두운 새벽이었지만 그 남자의 안개 같던 흐리멍덩한 눈빛이 정확히 보였고 그의 진한 술냄새에 질식할 것 같았다. 그의 눈과 내 눈이 마주치는 그 순간, 침묵을 깨고 그 남자가 한마디 했다.


" 안 잤네?"



 







2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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