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분주 Feb 21. 2023

글쎄 주식이 있었는데 없어요

44

큰일 났다. 폭망 했다.

2년 전에 산 주식이 전부 모두 몽땅 폭락해 버렸다. 그냥 폭락도 아니라 불꽃놀이 후 우수수 떨어지는 잿더미처럼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아빠는 잊은 듯 잘 묻어두면 결국에는 몇배 뻥튀기될거라 신경 쓰지 말고 살라고 했는데 얼마 전 SM관련 기사가 뉴스에 연신 보도되면서 '개꿀 나 SM 주식 산 것 같은데' 하는 기대감에 이러다 갑부 되는 거 아닌가 설레었다.


몽땅 팔아서 예쁜 봄코트 몇 벌 사고 아이패드도 사고 엄마 금목걸이도 해주고 가족끼리 한우 투뿔로 외식해야지 덜덜덜 떨리는 마음으로 몇십 개월 만에 주식 앱에 로그인하니,

아참! 난 SM주식을 안 샀구나! 낄낄.

나는 SM도 없고 하이브도 없었다. 난 도대체 뭘 산 걸까. 분명 SM 주식 산 것 같은데 꿈이었나. 있었는데 업ㅅ...


나는 투자 같은 거도 잘 모르고 무식하게 저금만 하는 타입이라 큰 부자는 되지 못할 거라고 유튜브로 하루아침에 쌉부자가 된 신흥재벌들이 나 같은 저금쟁이들이 안타깝다면서 주식에 투자하라 유혹했다.


때마침 노처녀지만 불쌍히 늙고 있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과시용 명품백  개 사려고 모아둔 명품백적금이 만기 되면서 그냥 그 돈을 몽땅 주식에 올인해 버렸다.


사실 주식이 뭔지도 모르고 어디서 사는지도 몰라 네이버 지식인에 물어 겨우 어플하나 깔고 계좌 개설하여 돈을 두둑이 채워 넣은 다음 다이소 쇼핑하듯 이것저것 사모으다 보니 종목만 30개가 됐다. 돈의 실체가 보이지 않으니 공짜로 생긴 게임머니처럼 쉽게 생각해 싸다 싶은 거 한주 한 주 사모으면서 잔고를 0원으로 만들었다. 그러다 총알이 부족하면 월급통장에까지 손을 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갖다 바쳤다. 난 평소에 내가 놀고먹는 걸 좋아하는 배짱이인줄 알았는데 주식판에서는 힘없는 개미였고 개미핥기의 1순위 제물이 될 줄은 몰랐다.


난 종목토론방의 사람들이 쑥떡거리는 거짓 정보에 눈이 멀어 뭐 그냥 대에에에충 어제보다 싼 것 같으면 덜컥 사버리는 조급함의 끝을 보여줬다. 그리하여 나는,


야-호. 여기 사람 있어요.

삼성전자 최고점에 물려 1주에 10만 원 주고 산 펜트하우스 꼭대기 입주자가 되어버렸다 허허. 혼자 외롭네요. * 참고로 지금 삼성전자는 62,700원.


어디 삼성전자뿐이겠는가. LG전자도 그렇고 항공도 그렇고. 몇 십만 원씩 사다 보니 티끌 모아 태산이 아닌 개거렁뱅이가 되어있었다. 명품가방대신 재활용 쓰레기봉투에 물건 담고 다니게 생겼다. 주식은 무릎에서 사고 어깨에서 팔라고 했지만 난 정수리에서 사서 엄지발가락에서 팔게 생겼다. 처음엔 한자릿수였던 마이너스 숫자가 이제는 우리 엄마 나이만큼 되어버렸다.

이거시 지금의 내 상황. 아무도 나에게 무릎이 있다고 말 안 해줌.


주식은 최소 며칠간 지켜보다가 싼 가격에 신중히 사야 하는데 주린이였던 나는 주식이 품절될까 걱정돼서 똥 마려운 개처럼 후다닥 질러버렸다. 파랗게 멍든 내 가슴처럼 매일 나의 주식장은 퍼랬고, 가격이나 낮춰보자는 마음으로 여윳돈이 생길 때마다 슬금슬금 물타기를 시도하다가 듣보잡 종목 대주주 될뻔했쟈나. 


코로나 상황이 끝나면 사람들이 분명 비행기 타고 해외여행을 갈 것이라 미래를 예측한 (아마 전부 그렇게 예상했겠지) 나는 대한항공을 사려다가 그날 눈이 침침했는지 손가락에 살이 쪘었는지 왜 그랬는지 대한... 제당을 사버렸다. 호롤ㄹ로롤.


그것도 산 직후 알게 된 게 아니라 사놓고 3주나 지난 뒤에 내가 모르는 주식이 있어 이걸 언제 샀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대한항공을 사려던 그날이었다.


으이그 호구새ㄲ... 자책을 하던 중 대한제당이 액면분할인가 뭔가를 하는 바람이 주가가 올랐다. 개꿀. 처음 보는 빨간 숫자 작... 작고 소듕해..  후다닥 팔아버리기에는 뭔가 아까운 것 같아 그대로 뒀더니 마늘 다지듯 내 주식이 잘게 다져져서 지금은 -62프로. 아오 팔걸 그때 팔걸 그냥 매도해 버릴걸. 껄껄껄.

 

마이너스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이 돈이면, 굶고 있는 아프리카 아이들 몇백 명 정도는 배부르게 먹일 수 있고, 추운 겨울날 집안 온도를 100도로 설정해 놓고 뜨뜻하게 지낼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맘스터치 싸이버거세트를 매일 몇 년이나 먹을 수 있고, 버스 한정거장만 타고 바로 내릴 수 있고, 케이크 비닐에 묻은 생크림을 더 이상 혀로 핥지 않아도 되는 돈일 텐데 싶은 마음에 가슴이 쓰라린다.   


주식은 장기 투자가 정답이라고 고점에 물린 사람들이 자기 위안으로 말하곤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 말은 틀렸다.


왜냐하면,

30년 전에 산 엄마의 주식은 아직도 30년 전 그 금액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끼아아ㅏ아아ㅏㅏㅏ욧.




주식 대박 나면 개인출판하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땅에 묻힐 때까지 출판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한다.




작가의 이전글 독일의 그 날밤 3, 누가 그를 탓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