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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Feb 24. 2023

우정만으로 우정이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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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나 인스타그램을 잘 들여다보진 않는다. 괜히 보면 나보다 다들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용심이 나고 밴댕이같이 속 좁은걸 굳이 스스로 느끼고 싶지 않아서다. 그러다 우연히 업데이트한 친구 프로필 사진으로 고등학교 동창 3명의 셀카가 보였고, '얘네는 아직도 만나나' 싶은 마음에 눌러보니 친구들 사이에 '하준'이 있었다.  


아, 하준이여.

빌어먹을 하준이여.


하준이는 나의 고등학교 친구이자 나와 고3 내내 짝지를 했던 하미숙의 별명이다. * 미숙은 가명입니다. 그녀는 교과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범생의 표본이었다. 왜 그런 애들 있지 않는가  남한테 절대 자기 필기노트 안 빌려주고 공부만 죽어라 파는 애들. 선생님 눈에 들려고 쉬는 시간까지 질문하는 그런 분류.


어쩌다가 나와 짝지가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예 그녀의 경쟁자로 신경 쓸 가치도 없었는지 그녀는 특이하게 나에게 친절했다. 수업 시간 내내 팔을 베고 자는 나의 오른손에 쥐가 날 때마다 하준이는 친히 먼저 손을 주물러 줬다. 심지어 손바닥 지압을 해주면서 이 혈자리는 뭐에 좋고 어디에 좋다며 혼신의 힘을 담아 꾹꾹 눌러주는 그녀의 손은 상당히 야무진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명의 허준대신 하준이라 불렀다.


어미새가 아기새한테 먹이를 주듯 그녀는 수업시간 내내 자던 나에게 매번 시험 범위나 시험에 나올법한 부분을 친절히 설명해 줬고, 수능이 다가오는데 '너도 이제는 마음 잡고 공부해야 하지 않냐'는 잔소리까지 해댔다. 챙겨줘서 고마웠으나 가끔씩 선 넘네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그녀의 오장육부혈이 뚫리는 야무진 손마사지를 잃고 싶지 않아 기분 나쁜 티는 절대 내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불치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간호하듯이 쉬는 시간마다 손을 주물러줬고 손에서 점점 범위를 확장해 가면서 등짝까지 주물러줬다. "목뼈에서 엄지손가락 세 마디 밑으로 내려가 이곳을 누르면 호이짜 호이짜.."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을 느끼보라느니 어쩌라느니, 그녀는 상당히 동의보감스러웠다. 매번 나를 길 잃은 어린양 취급을 하며 본인이 나를 좋은 길로 인도해야 된다는 이상한 사명감이 있는 듯했다.

내 반드시, 너의 혈을 뚫고 말 것이다 아ㅏㅏ 그것이 나의 소임이니라.


나는 미술 실기 준비하느라 수능 뒤 학교를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흐지부지 고3 생활이 마무리됐고 내 인생에 다시는 하준이를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공부 못... 안 했던 나는 수능시험을 생각보다 잘 쳐서 A국립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어느 봄날, 본관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데 학교 정문으로 걸어 들어오던 하준이를 마주쳤다.


하준이는 내가 다니는 A대학교 4년 장학생이 됐다고 얼핏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실제로 마주치게 되니 나는 너무 반가워서 소리 높여 아는척했고 그녀 역시 나를 보고는 깜짝 놀란 기색이었다. 대학생이 되면 예뻐진다는 말처럼 그녀는 두꺼비같이 두꺼웠던 뿔테안경을 벗고 렌즈를 꼈는지 쌩눈이 되었고, 거칠었던 여드름 자국을 에뛰드 2호 쿠션팩트로 가린듯했고 4월의 따뜻한 봄바람처럼 웜톤의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 이야ㅑㅑㅑㅑ! 하준! 오랜만이야."

" (상당히 놀래며) 어?... 어?"

 " 너 장학생 됐다는 소문은 들었어. 축하해 다시 보니 반갑다아아ㅏ."

" 어?... 고마워 근데 누구....?"


나는 상당히 반가워 이산가족 상봉하듯 엄청 들떴는데 그에 비해 하준이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맞이했다. 졸업식 한 지 겨우 몇 달밖에 안 됐는데 그새 고등학교 시절을 잊은 건지 자꾸 나를 모른 척하려고 했다. 나는 길가에 서서 내가 누군지 구구절절이 설명했고 그제야 이내 똥 씹었던 표정이 풀려서는 한발 늦은 힘 빠진 아는 척을 했다.


".. 그래 분주야,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 응, 나야 항상 잘 지내지."

" 그래 좋아 보인다. 학교는 어디다녀?"


참으로 이상한 순간이었다. 난 분명 A대학교 안에 서 있는데, 그것도 교양책을 손에 들고 본관 앞에 떡하니 있는데 나에게 학교를 묻다니. 그래 전공과를 물어본 거겠지,


" 나? 디자인과 붙었지."


그리고 친절히 손가락으로 정문 옆 첫 번째 디자인과 건물을 가리켰다. 그랬더니 이 년이,


" 어?... B대학? 잘됐네!"


* 대학교에 대해 설명하자면 가까운 거리에 2개의 대학교가 있는데 A대학은 국립대로 공부를 좀 하는 학생들이 가고, B대학은 사립대로 돈 많고 공부를 덜 했던 학생들이 가는 곳입니다. 물론 과마다 조금씩은 다르지만.


" 아니 아니, 나 여기."


이번에는 친절히 본관 건물 한가운데 자랑스럽게 붙어있는 학교 간판을 가리켰다.  


" 어...? A대학? 여기? A대학?"


나랑 스무고개를 하자는 건가.

년이 안경을 빼면서 안구도 같이 빼버렸나. 못 믿는 건지 안 믿고 싶은 건지 자꾸 나몰랑 권법을 시전 했다. 그래서 기분 나쁜 친절한 톤으로  A. 대. 학. 교라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하게 말해줬더니 그제야 아-아 찝찝한 수긍을 해줬다. 계속 안 믿었으면 학생증까지 까서 증명해야 될 판이었다.


마치 그녀는 고3 시절 내내 잠만 자던 나와, 열심히 필기하며 밤새 공부한 본인이 같은 대학교를 다닌다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도 더 이상 찝찝해하는 하준이를 굳이 붙잡고 있고 싶지 않아서 '우리 앞으로 종종 만나서 밥이나 먹자' 라니 '그래, 동창이 있으니 좋네 가끔 만나서 같이 놀러 다니자'며 서로 마음에도 없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우리 둘은 헤어지고 나서 깨달았다. 서로의 연락처를 모른다는 사실을.


마음 맞으면 텔레파시가 통해 만나겠지 뭐. 

그렇게 우리는 대학 4년 내내 단 한 번도 만나서 밥을 먹은 적이 없다.

흐업..


나와 대학동문이 된걸 탐탁지 않아 하던 빌어먹을 하준이는 어느새 멋진 국어교사가 되었고 나 역시 영어강사가 되었다. 물론 하준이를 앞으로 만날 일은 내 평생 절대 없겠지만 소문을 통해 그녀가 나의 직업을 알게 된다면 또 그날처럼 여어어러번 되물을 듯싶다.


"어? 분주가 뭘 가르친다고?"

"어? 영어? 어?"

어?

...





하준아

너의 혈 뚫리는 손마사지 봉사 덕분에

수능도 잘 치고 실기도 잘 쳐서 지금 많이 벌고 살고 있어

니 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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