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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Feb 27. 2023

동상이몽

48

몇 달 전, 내가 살던 오피스텔에서 영화 촬영을 했다.

백수가 된 뒤 집에서만 머무르고 있던 나에게 친구가 문자를 보내 오피스텔 A동 밑에서 촬영을 하고 있으니 나와서 구경하라고 했지만 귀찮고 연예인한테 관심 없다고 답장했다.


침대에 누워 동네 네이버카페에 들어가니 손석구가 출연하는 영화 촬영이라면서 운 좋으면 손석구를 실제로 볼 수 있다면서 다들 들떠있는 게 느껴졌고 손석구는 못 참지 싶어 부랴부랴 옷을 걸쳐 입고 나가보니 이미 영화 촬영은 끝났는지 통제되었던 오피스텔 입구가 휑했다. 아까비.


늦은 오후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오피스텔에서 영화 촬영한 이야기를 해줬다. 조금만 부지런했으면 연예인을 코앞에서 볼 뻔했는데 못 봤다 아쉽다 전하니 엄마가 연예인 누가 왔길래 그리 호들갑을 떠냐고 물어 손석구라고 했다. 그러자 엄마는 귀한 연예인을 코앞에서 놓쳤다고 상당히 안타까워해줬다.


우리 엄마가 신세대인걸 알았지만 손석구를 좋아할 줄이야. 사실 나는 손석구가 나온 드라마나 영화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친구들이 보내주는 손석구 화보사진에 오 나이스 괜찮네 생각한 정도다. 하지만 엄마는 손석구 팬클럽급 뜨거운반응을 보이며 그가 참 똑똑한 사람이라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 손석구, 그 사람 참 똑똑해서 엄마는 좋더라."

" 그래? 똑똑하다고는 들은 것 같아."


예전에 테레비에서 손석구가 어릴 때 미국인가 캐나다인가 유학을 갔다고 들은 바 있어서 엄마의 말에 긍정으로 받아쳤다. 평소 나와 엄마는 사람 보는 눈이 천지차이라서 서로 절대로 같은 연예인을 좋아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웬일로 우리는 손석구로 한마음이 되었고 계속해서,

손석구 없는 방구석 손석구 팬미팅을 이어갔다.


" 사람이 참 깔끔하고 바르게 보여."

" 그래? 깔끔한 이미지이긴 하지 …."

" 엄마는 그 사람이 처음 텔레비전 나올 때부터 딱 눈여겨봤지."

" 그래? 나는 최근에 알게 됐는데."


무한 손석구교 김여사의 손석구 칭찬이 참 어색했지만 젊은 연예인을 좋아하는 엄마를 보니 뭔가 모르게 엄마도 소녀 같은 면이 있다는 걸 깨닫고 콧등이 시큰했다.


" 엄마, 나는 곱상한 연예인을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손석구는 눈이 가긴 가드라, 운동해서 그런지 몸도 멋지고."

" 오메, 그 양반이 몸도 좋아?"

" 응, 친구가 손석구 웃통 까고 찍은 사진 보여줬는데 운동 열심히 하나 봐."

" 오마야, 그 얌전한 양반이 웃통을 까? 반전매력이 있구먼."


계속해서 이어지는 손석구 매니저급 손석구 칭찬 퍼레이드. 엄마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계속 손석구 이야기를 했고 그는 어머니들의 워너비라면서 손석구가 실제로 오피스텔에 영화 촬영을 왔는지 안 왔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그의 싸인 한 장 받아두지 않은 나를 원망했다.


" 그래도 싸인 하나 받지, 명색에 큰 회사 사장인데."

" 응? 손석구가 회사도 가지고 있나? 쌉부자네."


대화를 할수록 엄마는 손석구에 대해 나도 모르는, 그리고 전혀 들은 바 없는 디스패치급 이야기를 해댔다. 뭔-가 쎄-함을 느낀 나는 일단 전화 끊고 카카오톡으로 손석구 사진을 보내고는,

" 근데 엄마, 이 사람 말하는 거 맞아?"





그랬더니 엄마도 사진으로 답변을 했다.

"이 사람이 손석구 아-녀?"





응 아니야 엄마.








상대방과 대화 종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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