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구와 시간이 맞아 우리는 남포동으로 놀러 갔다. 남포동은 항상 북적이고 볼 것도 먹을 것도 많아 나는 남포동을 좋아한다. 그날도 나와 친구는 설렘 가득 품고 지하철에 나란히 앉았다. 전날 늦게까지 일한 친구는 잠시 눈을 붙인다 했다. 친구와의 수다 부재로 인해 심심한 나는 가방에서 소설책을 꺼내 읽었다. 20분 정도 갔을까. 지하철 문이 열리자 이보시오 나 좀 보시오 식의 큰 소리를 내는 아저씨가 탔다. 그분은 혼잣말을 연신 하시면서 승객들에게 시비를 걸었다.
이미 친구는 잠들었고 나는 소란스러움에 고개를 들어 문쪽을 바라보니 그분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빈자리에 앉고서는 앞, 양옆 가리지 않고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계속 말을 거셨다. 아 제발 나만 아니길. 고개를 푹 숙였다. 시선은 책을 향했지만 나의 양쪽귀는 그 아저씨를 향해 있었다. 저런 소란은 궁금하긴 하니까 꿀잼은 놓칠 수 없지.
옆쪽 좌석에서 미션 클리어를 한 아저씨가 우리 쪽 좌석으로 듬성듬성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절대 고개를 들지 말아야지. 고개는 숙였지만 나의 안구는 책 넘어 아저씨를 찾느라 바빴다. 잭팟. 아저씨가 하필 내 맞은편에 앉았다. 모르는 척해야지. 신경 안 쓰는 척해야지 싶었는데 아저씨가 불특정다수에게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무슨 뺨치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고 사람들도 수군거리는 것 같고 너무 궁금해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 사람은 똑똑한데 얼굴이 영 아니네, "
난가?
나를 두고 하는 말인가?
아저씨는 무슨 궁예처럼 내 맞은편에 앉아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안돼. 눈 마주치면 그 똑똑한데 얼굴이 영 아닌 사람이 나인 게 되니 최대한,
눈 회피.
저 아저씨가 설명하는 사람 나 아닙니다.
괜히 '똑똑한데 얼굴이 영 아닌 사람'을 찾는 듯이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팔꿈치로 자고 있는 친구를 강하게 눌렀다. 혼자 당할 순 없지. 나의 간절함으로 친구를 깨우고자 했는데 친구는 이미 잠에서 깨어 이 사태를 즐기고 있었다. 움찔움찔.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억누르는듯이 친구는 입술을 꾹 깨물고 있었다. 마치 응 나 말고 너 말이야 식으로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나의 무반응에 아저씨는 무안했는지 조금 더 강도 높게 발설하셨다.
"요즘 것들은유식한데 얼굴이 어수선하네."
내 살다 살다 얼굴이 어수선하다는 말은 처음 들어온 것 같다. 아 물론 나한테 한말은 아님. 무시가 답이다 싶어 절대 아저씨를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다. 아저씨도 우리의 리액션이 재미없는지 이내 자리를 떠나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 다른 승객에게 또 시비를 걸었다. 이것이 다이내믹 부산이라 칭송했다.
한바탕 별 희한한 상황을 겪고 우리는 유명 커피숍으로 갔다.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지나가는 사람구경을 했다. 잠시 친구가 화장실에 간 동안혼자 멍하니 창가를 바라보고 있는데 귀 모양이 특이한 남자가 내 앞으로 쓰윽 지나갔다. 곧바로 자리로 돌아온 친구에게 야 저 남자 봐 어서어서 라 말했지만 그 남자는 이미 우리의 시야에서 벗어나버렸다.
그의 귀모양이 평범하진 않았다. 뭐랄까 뾰족하고 상당히 컸다고 할까. 친구에게 본 그대로 말하니 자꾸 나보고 거짓말하지 말라 했다. 억울한 마음에 핸드폰 메모장에 본 대로 그림을 그려서 친구를 보여줬다. 그림을 본 친구는 헛걸 본 게 아니냐고 오히려 나를 놀렸다. 분명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레골라스 같은 귀였는데.
뀨?
친구는 간혹 사람 중에 귀 위쪽이 유난히 뾰족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서 흥분한 나를 애써 달래줬다. 아니다 분명 그건 정말 요정귀였는데. 가만 내가 진짜 요정을 봤나 싶었는데 요정치고는 덩치가 꽤 있었고 왠지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할 것 같은 인상이었다. 친구는 나보고 신경쓰지말고 신나게 놀자고 했다. 그래 내가 헛걸 봤겠지.
지하철의 수모도 잊고 요정귀도 잊고 전부 다 잊어버리고 재밌게 놀았다. 늦은 밤이 돼서야 집에 도착했고 침대에 누워있으니 갑자기 그 남자의 귀가 떠올랐다.
정말 그 귀는 뭐였을까. 인간의 귀 치고는 분명 너무 신기했어. 꼭 풀어야 되는 의문 같았다. 나는 남포동 요정귀, 남포동 요정,남포동 레골라스 등 생각나는 대로 검색을 했고 드디어 해답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