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분주 Jan 01. 2023

99%의 냄비근성과 1%의 재능

08


나를 움직이는 9할은 쉽게 끓어올랐다가 금세 식어버리는 냄비근성이다. 좋게 말하면 호기심이 많아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어 도전하고, 적성에 맞지 않다 싶으면 또 다른 흥밋거리를 꾸준히 찾아다니는 모험가지만 나쁘게 말하면 끈기가 없고 싫증을 쉽게 낸다.


연애도 그러했다. 항상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해 혼자 좋다고 북 치고 장구치고 가슴 치고 하루에도 온탕 냉탕을 왔다 갔다 하다가, 상대방이 넘어오면 그걸로 끝이다. 짜게 식어버린다. 상대방과 사랑이라는 고점에 도달하는 끓는 속도가 다르다고 할까. 혼자 먼저 팔팔 끓고, 서서히 끓어오르는 상대방의 느린 속도를 참지 못해 답답해하다 상대방이 정점에 도달했을 땐 이미 난 차갑게 식어 마음이 돌아선다. 빠에 냄비근성까지 더해지니 내가 연애를 못하는 것도 어쩜 당연한 듯싶다.


항상 그랬다. 성냥처럼 불만 붙으면 혼자 앞뒤 안 가리고 열열이 이 한 몸 태우다가 얼마 가지 않아 마른 장작만 남은 것처럼 흥미가 바짝 말라버린다. 내 친구들은 말했다. 내가 초반에 너무 온 마음을 바쳐 더 이상 탈 열정이 남아 있지 않는 거라고. 마라톤으로 치면 혼자 초반에 전력 질주를 해버린 바람에 30프로도 가지 못해 지쳐 나가떨어져 버리는 거라고,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시작하라 매번 조언을 해준다. 물론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어쩔 수 없다. 한 번 시작하면 짧게 라도 온몸을 다 해 타올라야 한다. 잠시 고삐가 풀려 자유를 얻는 망나니 마냥 중간에 잡혀 의지가 겪이더라도 초반에 힘껏 달려야 한다. 그게 재밌다.



불타올랐다가 짜게 식어버린 나의 취미활동에 대해서 적어본다면,


1 DSLR 사진 찍기

어릴 때부터 사진 잘 찍는다는 말을 들은 터라 취미가 곧 직업이 되지 않을까 싶어 큰 마음먹고 고오오오급 장비와 편집 프로그램을 결제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접어버린 슬픈 고급 취미.


2. 책갈피 만들기

우연히 생일 선물로 금속 책갈피를 받았는데 가격을 보고 놀랬다. 이 정도 퀄리티를 이렇게나 많이 남겨먹는다는 생각에 나도 하겠다 싶어 당장 재료와 장비를 구입했다. 초반에 공장에서 찍어내듯 엄청 만들어 주변에 선물했는데 재료가 너무 작아 만들 때마다 눈이 침침해져 안구 보호 상 포기.   


3. 그림 그리기

원데이 클래스 검색하다 완성 작품을 보고 이 정도면 집에서 혼자서도 할 수 있겠다 싶어 바로 그날로 유화물감, 오일파스텔, 스케치북을 구매했다. 생각보다 그리는 게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려 재빠른 포기.


4. 이탈리안 요리

교양 있는 여자라면 양식 하나 정도는 만들 줄 알아야 생각해서 요리학원에서 하루 4시간씩 이탈리안 요리를 배웠지만 재료비도 비싸고  메뉴가 그 메뉴고 그 맛이 그 맛인 거 같아 지겨워져서 포기.



5. 일본어와 중국어

최애의 일본어노래를 해석 없이 온전히 이해하고 싶어 유튜브로 독학 시작. 일주일 만에 히라가나/가타카나를 독파했지만 유니클로 사태로 불매운동으로까지 이어진 나라 분위기상 애국심이 발동하여 포기데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대한민국 만세.

그리고 2년 뒤 54부작 중국 무협 드라마에 나온 중국 변발남에게 반해 열정적으로 중국어 독학을 시도했지만 중국 4 성조 발음에 대혼란을 겪어 포기.



어디 이뿐 이겠나.

나만의 패션 스타일을 만들어 보겠다고 호기롭게 거금 주고 구입한 브라더 재봉틀과 신선한 유기농 야채를 집에서 직접 길러 먹을 수 있다는 텃밭 세트, 집에서도 고급 네일아트샵 뺨 칠 정도로의 퀄리티를 뽑을 수 있다는 젤 네일 아트 세트 등 셀 수없이 많다. 돈은 돈대로 낭비하고 작렬하게 전사하여 좁은 원룸 어딘가에 고이 잠들어 있는 나의 반짝 취미들. 왜 나는 항상 가난한가에 대해 의문이었는데 이렇게 나열해보니 내가 돈을 못 모은 이유가 있었네.




‘이 정도면’ 이 4글자가 나를 움직이고 지갑을 열게 한다. 자존심을 건드는 마법의 글자라고 할까.

이 정도면 나도 하겠는데, 이 정도면 쉽겠는데, 이 정도면 해 볼만 한데. 이 정도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투자해야 할 노력과 시간은 생각하지 않고 막연히 나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여 일단 질러보는 것이다. 해보고 아니면 말고의 단순한 생각으로. 하지만 나는 나의 냄비근성을 사랑한다. 해보지 않으면 어찌 알겠는가. 만원을 투자하든 백만 원을 투자하든 빠른 포기를 하더라도 한번 해보는 것에 가치를 두면 좋지 아니한가.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고 도장 깨기 하듯 도전해야 할 과제가 많아 나는 멈춰서 있을 수 없다. 이 나이에 하고 싶은 게 무수히 남아있다는 건 참으로 축복이지 싶다.



비록 빨리 식어버릴지는 몰라도

한 번쯤은 정점에 도달해보는 삶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2023년에는 무엇이 날 끓어오르게 할까.



해피뉴이어

우리 2023년에는 도전해 보지도 않고 토끼지말아요.
















작가의 이전글 내 집 찾아 삼만리 Part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