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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 이름은 앤디 Feb 29. 2016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의 작품 마지막 장을 덮을 때면 난 항상 어딘가 아팠다.


정확히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짚어내지는 못하지만 묵직하고 어두운 아픔을 시간을 항상 겪어야했다. 내가 읽었던 그의 모든 책이 나에게 아픔으로 다가왔지만 그중에서도 제일은 역시 상실의 시대.


그날, 나는 급성장염으로 응급실에 실려갔다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온몸의 기력이 다 빠진 상태라 잠을 자거나, 가만히 누워 책을 읽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때 내 곁에 있었던 책이 바로 상실의 시대. 꽤 두꺼운 책을 손에서 떼는일 없이 한숨에 읽어 내려갔고, 마지막 페이지를 읽은 후에 밀려오는 상실감 때문에 나는 한참 동안 괴로워했다.


그때의 나는 내 곁에 있는 것들을 잃어버릴까 봐, 내 곁에 있는 이들이 나를 떠나가버릴까 봐 두려워하며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나는 곁에 있어주던 네 품에 안겨 나는 꽤나 뜨거운 눈물을 흘렸고 너는 그렇게 많이 아프냐며 나를 위로해주었다. 나는 아파서 우는 게 아니라고, 슬퍼서 우는 거라고, 네가 내 곁을 떠나갈까 봐 그게 너무 두렵다고. 네가 떠나면 내 가슴이 미어질 거 같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 말을 뱉는 순간 나의 말이 현실로 변해버릴까 두려워 나는 결국 눈물만 흘리고 네게 한마디도 전하지 못했다. 그 이후로 꽤 오랫동안 상실의 두려움에 사로잡혀있었지만 몸이 회복되면서 그 감정은 한 순간의 기억으로 잊혀져갔다.


그리고 3년의 간격.


얼마 전 친구에게 상실의 시대를 빌려주기 위해 책을 꺼내 두었다가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았다. 그런데 고작 2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내가 이제까지 살아오는 여러 길목에서 잃어버린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잃어버린 시간, 죽었거나 또는 사라져 간 사람들,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지난 추억들, 그리고 그 모든 상실의  아픔들을.

그리 길지도 않은 이 문장을 읽자마자 눈물이 터져버린 것이다.


요즘의 나는 그리 멀쩡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그리 슬픈 상태도 아니다. 내가 생각해도 대견할 만큼 꽤나 잘 지내고 있었는데 저 한 문장에 무너져버리고 만 것이다.


지난 3년 전의 눈물이 떠올랐고, 지금은 그때와 다른 이유로 눈물이 난다는 사실이 나를 더 아프게 했다.


그때는 혹시 다가올지 모르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에 눈물을 흘렸다면, 지금은 이미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상실감으로 눈물을 흘린 것이다.


고작 3년인데 나는 뭘 그리도 많이 잃어버렸는지.

아무리 꽉 쥐려고 해도 점점 더 빠져나가기만 했다.

가슴이 먹먹하고 머리가 어지럽다.


지금 와서 이렇게 눈물 흘리고 아플 거면, 3년 전에는 울지 않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모순적이고, 비효율적이다.


나는 고작 눈물이 헤픈 사람밖에 되지 못한 거다.


이젠 곁에서 눈물을 닦아줄 사람도, 눈물을 고백할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데.


나는 오롯이 혼자다.

새벽 2시.


나는 여기 이렇게 혼자다.


나는 지금 상실의 시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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