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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탄 Aug 15. 2023

덜컹덜컹, 길 위로 나설 시간

16시간 40분짜리 다낭행 침대 기차

16년째 1~2년에 한 번씩 받아오던 남편의 '외국인 노동 비자' 신청이 불허되었다. 남편에게도 나에게도 처음 있는 비자 문제다. 노동비자 신청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서류가 필요한데, 그중 하나가 이 외국인이 베트남에 와서 일하는 게 자국에 어떠한 도움이 될 거라 증빙하는 ‘경력 증명서’도 있다. 그러나 왜인지 올해는 남편이 베트남에서 일했던 15년의 경력으로는 전문가라는 경력 증명이 어려워졌다. 불허의 이유인즉슨 남편처럼 베트남에서 전기, 건설 일을 15년 해 온 ‘베트남인 전문가’는 천지에 널려 있다는 것이었다. 15년 경력의 베트남인을 넘어서는 다른 경력이 필요했다. 너무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지만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맞는 말이기도 했다. 요구하는 서류를 추가해서 비자를 다시 신청하기 위해 대행사에 여권을 맡겼다. 되는 것도 없지만, 안 되는 것도 없는 곳이 바로 베트남이니까.


하지만 우리에겐 다른 문제가 있었다. 2학년을 마치고 두 달간의 여름방학을 맞은 만두와 함께 어디론가 여행을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당장 여권이 없으니 비행기를 탈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 기차를 타는 데는 여권이 필요 없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침대 기차를 타보고 싶어 하던 만두의 소원이나 들어주자’ 마음을 먹었다. 하노이에서 밤기차로 갈 수 있는 가장 적합한 거리인 베트남 북단 고산지역 ‘사파(SAPA)’가 먼저 생각났다. 사실 매일매일 더 관광 상품화 되고 있는 사파는 내가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 여행지였다.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는 사파에 가면 소수민족 아이들이 너도나도 관광객들을 상대하고 있는 현실이 보였고, 다른 지역에서 온 관광객들이 배려나 이해 없이 소수민족 옷을 입고 예쁜 사진만 찍어대는 보기 싫은 모습도 마주해야만 했다. 나는 몇 년에 한 번씩 사파를 가게 될 때마다 후회하며 다시는 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엄마의 속마음도 모르는 만두는 '이번엔 호기롭게 사파 트레킹에 도전해 보고 싶다'라고 했다. 최근에 자신의 한 시간짜리 성공적인 –실제는 엄마 아빠가 밀고 당기고 어르며 간신히 오른– 등산 경험에 한껏 어깨가 올라가 있던 차였다. 아이와 각자의 배낭을 멘 채 걷다가, 나중엔 아이의 배낭도 나의 어깨에 둘러질 것이 분명한 사파 트레킹을 도전하는 것이 맞는 결정일까? 잠시 힘든 상상을 해봤다. 결국 나는 소수민족 여성들이 가이드가 되어 인솔하는 사회적 기업 여행사를 통해 최소한의 트레킹으로 사파 중심가에서 떨어진 마을로 이동하며, 만두의 또래가 있는 소수민족 홈스테이에서 며칠 지내다 오는 걸로 여행의 가닥을 잡았다. 혹시나 사파의 불편한 현실을 마주한 아이와는 그 아래 숨겨진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또 하나의 배움이 될 거라고 위로했다. 기차표를 구매를 하기 직전,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일기예보를 확인했다. 그런데 어랏! 일주일 내내 사파 지역에 비소식이 있었다. 만세 만세 만만세!!!!! 사파를 가지 않아야 할 명분이 생겨버렸다. 잠자리를 준비하던 만두를 불러 옆에 앉혔다.


“만두야, 사파에 일주일 내내 비가 온데. 우리 사파는 못 가겠다.”

“왜? 비가 오면 어때?”

“비 오면 우리 트레킹도 힘들 것 같고, 밖에 구경하거나 나가 놀지도 못하잖아.”

“그럼 숙소에 있으면 되지.”

“우리 여러 날 동안 여행을 갈 건데, 맨날 맨날 숙소 안에서만 있게?”

“응, 숙소에서 그림 그리고, 책 보고, 쉬고 하면 되잖아.”

“에이. 그러려면 여행을 왜가? 집에서 그림 그리고, 책 보고, 쉬고 하면 되지.”

“왜? 창밖에 비 오는 사파 보면서 지내면 좋잖아. 하노이랑은 다르지 엄마.”


맞는 말이었다. 생활이 여행이고 여행이 생활인 우리 삶을 내가 잠시 잊었었구나. 본투비 여행자인 만두의 삶 속에도 어느덧 여행이 깊숙하게 들어온 듯했다. 그래, 사파든 다른 곳이든 내일은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자는 말과 함께 만두를 재웠다. 한낮의 40도 더위가 가시지 않은 어두운 하노이의 밤, 생각해 보면 하노이에서 기차로 갈 수 있는 베트남 땅 어디든 더운 건 마찬가지였다. 빗 속에 아이와 단둘이 하는 사파 트레킹은 엄두가 안 났고, 그렇다고 사파 시내에만 머물다 오는 건 너무 싫었다. 기차 사이트를 천천히 살펴보던 나는 무작정 내일 저녁에 출발하는 다낭행 기차표를 끊어버렸다. 베트남 북부 하노이 역에서 베트남 중부 다낭 역까지 16시간 10분 기차를 타고 간 뒤, 다시 한 시간가량 차로 호이안으로 이동해서 일주일쯤 지내다 다시 기차로 돌아오는 계획이었다. 어차피 가려던 밤기차 여행에 몇 시간을 더하면 어떠냐 하는 생각이기도 했다. 호이안이라면 몇 년 전에 한달살이도 해봤고, 그때 알게 되어 연락하고 지내는 호이안 친구들도 있고, 여권이 없이 비자 사본 만으로도 우리를 재워줄 수 있는 지인 소개의 숙소도 있고, 좁은 동네의 길도 가게도 바다도 낯설지 않은 곳이니 아이와 뭘 하든 마음 편히 잘 지낼 수 있는 곳이었다. 만약 6월의 호이안에 내리쬐는 태양이 하노이의 숨 막히는 더위와 별다를 것 없더라도 만두의 말처럼 집과는 다른 풍경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다른 이야기를 나누면 될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뜬 만두에게 나는 '오늘 저녁에 기차를 타고 호이안으로 출발한다'는 일정을 말해주었다. 호이안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기차를 타면 어디든 좋다는 생각인지 아이에게 사파를 못 간 아쉬움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8살의 하노이 촌놈 만두는 종일 콧구멍을 벌렁이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짐을 최소화해서 가져간다'는 이번 여행의 콘셉트에 따라 만두는 여행 때마다 늘 가져가던 인형도 집에 두고, 노팬티로 다니겠다며 팬티도 챙기지 않았다. 순간 만두가 부러웠다. 만두는 잘 마르는 재질의 편한 상하의 몇 벌, 수영복, 색연필이 든 필통과 얇은 그림 노트를 가방에 넣고, 두 권의 책을 신중하게 골랐다. 나는 낡아서 한 번만 더 입고 버리고자 결심한 허름한 옷가지 몇 벌과 속옷, 수영복, 충전기, 간단한 세면도구, 책 한 권, 여행용 체스와 그림노트 한 권을 넣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 중 처음으로 체온계와 상비약을 챙기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는 가족이 운영하는 숙소에 묵을 예정이었고, 필요하다면 천지에 널린 약국에서 사면 됐고, 더 위급상황이라면 오래전 한번 가봤던 호이안의 소아과나 다낭의 큰 병원에 가면 될 일이었다. 생각해 보니 여권마저 챙기지 않은 정말 가벼운 여행이었다. 그렇게 우린 텅 빈 가방을 챙겨서 하노이 역으로 갔다.


만두는 하노이 기차역까지 데려다준 아빠와 눈물 나는 이별 신을 찍으며 기차에 올랐다. 만두의 인생 첫 번째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아이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아직 하늘에 낮달이 남아있는 이른 저녁시간, 내가 좋아하는 푸르스름하고 서늘한 하늘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창 밖으로 기찻길 옆 가게와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우리는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저 거봐, 저 거봐.' 하며 창 밖 풍경을 유심히 바라봤다.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기찻길 옆에 멈춰있는 수많은 오토바이의 전조등 불빛이 번지는 모습은 가히 몽환적이기까지 했다. 늘 그 길 위에서 지나는 기차를 바라보던 우리가 이번엔 그 기차 안에 있었다. 만두는 연신 감탄을 내뱉었다. '편안한 비행기 대신 이렇게 재미있는 기차를 타게 해주는 엄마 아빠가 있어 행복하다'며 눈웃음을 쳤다. 덜컹덜컹 기차의 움직임에 맞춰 만두의 머리 위 '빨간 하트'가 대롱대롱 흔들렸다. 자주 깜빡깜빡하는 엄마가 여행길에서 자기를 잃어버리면 안 된다며 머리 위에 꼽고 나온 하트 핀이었다. 문득 나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아이 덕분에 10년 만에 타게 된 침대 기차였다. 딸린 식구가 있으니 예전만큼 맘 편히 즐길 수만은 없겠지만 그래도 새록새록 기차를 타고 다니던 옛 추억들이 떠올랐다. 아이는 나중에 엄마와 탔던 이 첫 번째 침대 기차를 어떻게 기억할까? 나는 우리가 앉아있는 4인실이 계속 우리 둘뿐 인 채로 다낭 역까지 도착할 수 있기를, 만약 꼭 누가 타야 한다면 말이 많지 않은 여성이 타기를, 그것도 아니라면 코를 좀 덜 골고, 발 냄새가 조금 덜 나는 누군가가 타기를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아이의 첫 번째 야간침대기차


9시가 넘으니 만두, 소시지, 삶은 계란과 닭죽을 파는 야식 카트가 기차 복도에 지나다니기 시작했다. 방금 양치를 하고 온 만두는 어딘가에서 흘러들어오는 맛있는 냄새를 맡으며 간식을 먹고 양치를 더 할 것인지, 그냥 참고 잘 것인지를 세상 심각하게 고민했다. 기차가 덜컹거려 잠을 못 자면 어쩌나 걱정하던 만두는 아래층 침대에 눕자마자 세상모르게 곯아떨어졌다. 나는 데굴데굴 구르며 자는 아이의 침대 옆에다 가방을 쓰윽 밀어놨다. 어두워진 창밖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자 나는 커튼을 닫았다. 그사이 기차는 닌빈 역, 타인호아 역을 지났다. 같은 칸 옆 방으로 왁자지껄 사람들이 타는 소리가 들렸지만 다행히 우리 4인실에는 더 이상의 승객이 들어오지 않았다. 깜언!




분명 소프트 침대 표를 구매했는데 내가 잘못 본 걸까? 등은 왜 이리도 딱딱하게 베기는 건지, 나는 밤새 뒤척였다. 게다가 왜 이리 에어컨을 세게 트는 건지 나름 긴 팔과 긴 바지를 입고 대비를 했는데도 여러 번 한기가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 건너편에 누워있는 아이의 이불을 확인했다. 다행인 건지 불행인 건지 만두에게 갈 바람까지 모두 내 쪽으로만 온 모양이다. 머리만 대면 길바닥에서도 잠을 자던 나였는데 나이 앞자리가 바뀌니 확실히 편치 않은 잠자리가 생겼다.


밤새 신체의 노화를 실감한 엄마와 달리 아주 숙면을 취한 만두는 새벽 6시에 벌떡 일어나 커튼을 열었다. 그리곤 어제와는 다르게 밝은 창 밖 풍경을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만두는 차마 눈을 뜨지 못하는 나에게 다가와서는 '엄마, 창 밖 풍경이 너무 예뻐! 이건 꼭 일어나서 봐야 해!!'라고 소리쳤다. '우아 정말 예쁘다'라며 성의 없는 호응을 몇 번하고는 다시 잠이 들었는데 아침 7시, 누군가 우리 방의 문을 똑똑 두드렸다. 만두가 문을 열어보니 어제 기차를 탈 때 몇 마디 나누고 기념사진도 찍었던 그 승무원 청년이었다. 승무원 아침용으로 죽이 두 그릇 나왔는데 다른 한 명이 안 먹는 한 그릇을 먹겠냐고 물었다. 정말 정말 맛있는 돼지고기 죽이라는 아저씨의 말에, 어제저녁 야식 카트에서 풍기는 죽 냄새를 그리워하던 만두가 쾌재를 불렀다. 비몽사몽이던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생전 잘 먹지도 않던 죽을 맛본 만두는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이렇게 멋진 풍경을 보며 먹는다고 감탄하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아저씨가 정말 친절하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나는 맞장구를 쳐줬다.


세계 10대 절경이라는 '하이번(Hải Vân) 고갯길을 지나는 기차


세계에서 아름다운 기찻길 중 하나로 손꼽히는 후에-다낭 구간의 하이번 고개를 지나며 만두는 차장 밖 멋진 바다 풍경에 더 신이 났다. 하지만 여전히 피곤한 어미는 '예쁜 풍경이긴 하지만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는 아니지 않나' 속으로 생각하며 왕년에 다녀봤던 더 멋진 기찻길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마침 지나가던 승무원이 30분 연착 소식을 전해주었다. 16시간 10분 예정이었던 기차 이동 시간이 총 16시간 40분으로 늘었다. 우아아아아. 절경이고 자시고 간에 갑자기 시간이 더디게만 가는 느낌이 들었다. 멈춰있는 시간을 돌리기 위해서 기차 탐방을 하기로 했다. 아이가 가고 싶었던 기차 반대쪽 끝의 식당 칸으로 출발했다.


베트남 기차에서 가장 좋은 침대 칸들은 뒤쪽에 있는데 각 칸마다 다른 회사들이 운영을 하고 있어 인테리어도 서비스도 가격도 상이하다. 그중 우리가 탄 칸은 국영회사인 베트남 철도청(Vietnam Railway)에서 운영하는, 4인실 침대칸 중에 가장 오래되고 저렴한 곳이었다. 만두는 이동을 하며 새로운 디자인의 침대 칸이 나올 때마다 소리를 질렀다. ‘다음에는 여기에 타보자’, ‘다음에는 여기도 타보자’라는 아이의 말에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얘야, 여긴 비행기보다 비싼 자리란다.’ 여러 종류의 4인실 침대 칸을 지나, 6인실 침대칸을 지나,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좌석 칸을 지나, 마침내 제일 앞에 있는 식당 칸에 도착했다. 만두는 어디서 무슨 식당칸 사진을 봤던 건지 베트남 길거리 식당 같이 허름하고 작은 간이매점 분위기의 식당칸에 큰 실망을 했다. 무언가 요기를 할 생각이던 우리는 결국 마실 것만 사가지고 식당칸을 나왔다. 우리 칸으로 되돌아오는 길에선 반대로 점점 쾌적해졌다. 마치 달리는 설국열차 위를 걷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마침 그 복도 어딘가에서 아침에 죽을 건네준 직원을 다시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지나가려는데 뭐가 생각났는지 그가 나를 다시 불러 세웠다. 청년은 방긋방긋 웃으며 죽 값 3만 동(약 천오백 원)을 달라고 했다. 에라이, 어쩐지…. 나는 오늘 아침 아이가 감동받았던 그 ‘친절’에 실망을 할까, 몸을 돌린 채로 재빨리 돈을 꺼내 주었다. 그래, 이래야 좀 베트남 여행답긴 하지.


내려오는 눈꺼풀, 느려진 말투를 보니 만두는 졸린 모양이다. 낮 12시가 지난 시간, 침대로 돌아가 한숨 자라고 하니 그럴 수 없다며 완강히 버틴다. 스멀스멀 빈 2층 침대에 올라가 누워 창밖을 멍하니 구경하던 아이는 정확히 도착 15분 전에서야 잠이 들어 버렸다. 곧이어 다낭 역 도착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울렸다. 일어나라 만두야, 우리 다시 길 위로 나갈 시간이다!!


"일어나라 만두야, 우리 다시 길 위로 나갈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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