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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탄 Jun 08. 2023

반짝반짝, 헤어질 준비

나에게 온 손님, 만두

“어머, 나 큰 만두를 봤어!”


만두를 아는 내 지인들이 지나가다 만난 낯선 남자를 보고 만두의 아빠임을 한눈에 알아차렸다. 맞다. 만두는 아빠로부터 대부분의 외적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두상이 작은 베트남에서는 더 독보적인 크기의 얼굴, 넓게 퍼진 옅은 눈썹, 무 꺼풀의 긴 눈, 옆으로 벌어진 큰 콧구멍, 웃으면 들어가는 인디언 보조개, 그리고 늘 뽈록한 배, 둥글고 좁은 어깨, 햇볕에 많이 그을렸지만 알고 보면 하얀 피부까지…… 부자가 나란히 누워 있거나 걷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유전자의 신비로움이 그대로 느껴졌다. 굳이 따지자면 만두의 머리카락, 입, 귀, 그리고 손과 발 정도가 엄마인 나를 닮았을까? 어느새 갑자기 커버린 아이의 발을 바라보다가 길어진 두 번째 발가락이 다른 발가락들 위로 빼 꼼 튀어나온 걸 발견했다. 이런, 나를 닮은 줄로만 알았던 발가락 마저 아빠를 닮은 모양이었다. 아빠의 하드웨어에 엄마의 소프트웨어를 물려받은 아이. 부모가 원하든 원치 않든, 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아이에게 남겨지는 것들이 분명 있는 것 같다.




올 상반기 목표 중 하나인 만두의 수면 독립을 시작한 지 일곱 번째 되는 날이었다. 만두의 목표라 불렀지만 사실 아이의 발에 치이지 않고 좀 편히 자고 싶은 나의 목표이기도 했다. 만두는 유독 겁이 많은 탓에 곁에 누운 엄마가 자신보다 먼저 눈을 감는 것조차 싫어했다. 자신이 자기 전까지는 절대 먼저 잠에 들면 안 된다고 하면서도, 잠에 들지 않기 위해 깜깜한 방에서 휴대폰을 보는 엄마가 눈이 나빠질까 걱정을 하던 여린 아들이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스스로 수면독립을 다짐한 그날 만두는 바로 자기 방에서 혼자 잠을 자기 시작했다. 여전히 자기 전까지는 옆에 엄마나 아빠의 존재를 필요로 했지만 그래도 새벽에 깨어서 안방으로 넘어오던 일은 멈춰졌다. ‘새벽에 깨더라도 다시 눈감고 자보겠다’ 말하는 그 노력이 기특하고 고마워 나는 자려고 누운 만두에게 뽀뽀를 마구 퍼부었다. 그 말랑하고 부드러운 볼의 촉감이 너무 좋은 나머지 ‘이렇게 뽀뽀한 채로 계속 있다가 내일 아침에도 이렇게 학교에 가면 안 되는지’ 물었다. 그러자 만두는 자신의 볼에 여전히 붙어있는 엄마의 입술을 떼내며 난색을 표했다.


 "어?? 이렇게 학교에 가면 어떻게 해? 꼬(Cô, 선생님)한테는 뭐라고 말해?”

 "왜~~ 선생님한테는 ‘그냥 여기 볼에 뭐가 붙어 있는 거예요.’ 그러면 되지."

 "아…… 근데 이렇게 계속 붙어있으면 너무 무겁고 불편하잖아. 이쪽으로는 눕지도 못하고."

 "에이……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엄마는 만두 볼에 계속 뽀뽀하고 싶은데 안돼?"

 "아니, 엄마가 이렇게 있으면 학교에서도 잔소리할 거 아니야."

 "엄마가 무슨 잔소리를 하는데?"

 "똑바로 앉아라, 펜 바르게 잡아라, 정리해라, 눈을 쳐다봐라, 끝까지 들어라...... 뭐 이런 것들."

 "아하하하. 그럼 엄마가 이제 그런 거 말하지 말까?"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아이의 눈에 차오른 눈물이 반짝하고 비쳤다.


 "아니. 계속해줘."

 "뭐? 계속 잔소리를 해달라고?"

 "응, 나 나중에 엄마가 죽어도 엄마 잔소리 다 기억할 거야......"


인간의 죽음과 사랑하는 이의 부재에 대해 부쩍 여러 가지 생각을 하기 시작한 만두였다. 내가 죽고 나서도 아이가 계속 기억할 수 있는 엄마의 말은 뭘까? 설마 잔소리가 전부이진 않겠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새삼 인간의 ‘유한한 삶’이 떠올랐다. 나중에 나는 내 아이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 걸까? 내가 없는 세상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가슴이 찢어질 듯 상상하기도 싫은, 그러나 누구든 언제든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작년 여름 건강에 적신호가 생기면서부터 가끔씩 하게 된 생각이었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잠에 빠져 드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잘 자라는 인사를 나눴다. 더 오래오래 건강하게 아이 곁에 있어주고 싶어졌다. ‘언제 떠나도 아쉽지 않을 만큼 오늘만 신나게 살다 훅 떠나야지’ 하며 살던 내가 이런 다짐을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며칠 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들어서던 만두가 문득 현관에 있던 내 테니스 라켓을 집어 들었다.


 "엄마, 만약에 엄마가 죽으면 나는 이 테니스 라켓을 보면서 엄마를 기억할게."

 "어...... 그래? 테니스 라켓을 보면 엄마가 기억날 정도야? 엄마를 기억할 다른 건 없어?"

 "음…… 엄마 베개??"

 "그래, 베개에서 엄마 냄새가 나겠네."


느닷없는 아이의 말에 무척 당황했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반응을 했다.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 앞에서 끙끙대며 옷을 벗던 아이가 다시 물었다.


 "엄마, 근데 엄마가 하늘에 있어도 마음은 연결되어 있다고 했지?"

 "그럼. 사랑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마음으로 느낄 수 있지."

 "만약에 너어어어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어떻게 해?"

 "마음은 아무리 멀어도 느낄 수 있어. 거리랑은 상관없거든."

 "마음은 얼마나 긴데?"

 "음…… 무한대 길이야."

 "우아!! 무한대?? 근데 누가 자르면 어떻게 해?"

 "마음은 공기처럼 보이지 않는 거라 잘리지 않아. 공기를 자를 수 있어?"

 "응. 그러네."


대답이 마음에 드는 듯 만두는 옷을 마저 벗고는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욕실 문을 살짝 닫아주며 문 밖에서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잠시 후 물줄기 소리가 멈추더니 다시 아이의 외침이 들렸다.


 "엄마!!!"

 "왜???"

 "엄마는 내가 죽으면 뭘 기억할 거야?"

 "뭐?"


울컥, 눈물이 차 올랐다.


 "엄마? 음…… 만두가 죽으면 엄마는 못살지. 엄마도 같이 하늘나라 가야지."

 "으에엥? 엄마가 엄마를 칼로 쿡 찌른다고?"

 "아…… 아니. 음...... 만두는 엄마가 하늘나라에 같이 왔으면 좋겠어?"

 "음…… 아니! 엄마는 오지 말고 여기에 있어."

 "왜??"

 "아빠가 혼자 있잖아. 엄마는 아빠랑 있어 줘야지."


아이가 다시 틀어놓은 물소리에 내 목구멍에서 꿀꺽 눈물을 삼키는 소리가 묻혔다. 문 틈으로 홀로 샤워하는 아이를 바라봤다. 얼마 전 한 문화연대 활동가가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2022년 동국제강 산재사망 故이동우 님의 갓난쟁이 아들 주환이가 활짝 웃고 있는 사진. 옆에서 그 아기를 보며 더 밝게 웃고 있는 2014년 세월호 참사 故임경빈 엄마 전인숙 님, 2018년 태안서부발전 산재사망 故김용균 엄마 김미숙 님, 2022년 이태원 참사 故이지한 엄마 조미은 님의 모습. 아들을 잃은 엄마들이 뜬금없이 생각났다. 나와는 사적 연결고리가 하나도 없는 이들이었다. '엄마'로서의 삶을 관통하고 있는 순간순간 불현듯 내 발목을 붙잡는 존재들이었다. 아이가 없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아이 없이 자유롭게 살고 싶어 했던 내가, 누군가를 책임지고 싶지 않았던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그 사이 샤워를 마친 만두가 거실로 나왔다. 자기 몸을 수건으로 훔쳤다지만 젖어있는 아이의 머리에선 몇 방울의 물이 바닥으로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근질거리는 입을 꾹 다문 채 아이의 젖은 머리에 수건을 덮어주고는 내 품에 꼭 안았다. 엄마 속도 모른 채 꺄르르르- 기분이 좋아진 만두의 웃음이 퍼졌다.




아침마다 만두를 학교에 데려다주는 골목길, 우리 오토바이 앞으로 만두와 같은 학교 교복을 입은 한 아이가 보였다. 5학년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는 달리고 멈추기를 반복하는 엄마의 오토바이 뒤에 편안하게 앉아, 두 손으로 들고 있는 책에 얼굴을 폭 파묻고 있었다. 들고 있는 책만큼의 거리를 둔 엄마와 아이는 달리는 내내 한마디 대화조차 없었고, 우리보다 먼저 학교 앞에 도착해서도 별다른 인사 없이 각자의 길을 갔다. 여전히 교문 앞에서 헬멧을 벗은 뒤 엄마와 뽀뽀 인사를 하는 만두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문득 만두가 짧은 두 팔로 내 배를 꼬옥 감싸 안고, 내 허리에 자기의 말랑한 배를 찰싹 붙이고, 내 등에 무거운 고개를 기대고, 소리 높여 쫑알쫑알 이야기 나누며, 함께 노래하며 오토바이를 타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을 잘 기억해 둬야지. 그리고 아이가 나에게서 조금씩 멀어질 때가 오면 잡고 있던 손을 슬며시 놔줄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지. 그리고 마주하지 못한 채 마음의 끈으로만 연결될 수 있는 그 언젠가의 날이 오기 전까지 기억에 남겨질 순간들을 많이 만들어야지. 우리는 오늘도 반짝반짝, 헤어질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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