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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333

강박증

by 모래바다

근래 솔에게 기묘한 버릇이 하나 생겼다. 그것은 잠 들기 전 꼭 '아빠, 저 쉬 쌌어요?'하고 묻는 것이다. 혹은 '아빠, 저 쉬 싸는 소리 들었어요?' 하고 묻기도 한다. 문제는 그것이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재에 앉아 있으면 5분도 안돼 다시 나에게로 와 '아빠, 저 쉬 쌌어요? 소리 들었어요?' 하고 묻는다. 잠시 시간이 지나면 또 서재로 찾아와서 똑같은 질문을 한다. 세 번 정도 나를 찾아와 확인을 하고 나서야 잠에 빠진다.


밤에 자다가 쉬를 할까봐 걱정돼서 그런 걸까(솔이는 자다가 이불에 쉬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잠들기 전에 꼭 쉬를 확인해야 한다는 강박증 같은 걸까. 나는 그럴 때마다 솔이의 손을 잡고 침대까지 데려다 준다. 등을 토닥토닥 해 준 다음 볼에 뽀뽀를 하고 '사랑해'라고 속삭인다. 잠시 후 솔이가 다시 서재로 찾아오면 또 똑같이 침대에 데려다 주며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특별히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더더욱 어떤 치유방법을 알 수 없어 최대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그렇게 반응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리 크게 걱정하진 않는다. 가만히 관찰해 보니 많이 졸릴 때 그런 증상이 더 심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자는 중에 쉬를 해서는 안된다는 걱정이 강한 졸음과 함께 확인의 과정으로 확대됐다고나 할까. 이제는 솔이도 나도 그저 잠들기 전에 치러야 할 세리모니처럼 이 과정을 소화하고 있다.


아마도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을 것이다. 나는 하루종일 수시로 눈을 깜박였다. 너무 자주 눈을 깜박여서 주변에서 걱정이 많았다(지금 생각해 보니 일종의 틱과 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다). 침을 자주 뱉기도 했다. 입에 자꾸 이물질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구들이 많이 걱정했지만 1년 정도 경과하면서 그 모든 습관들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정신과 의사가 봤다면 일종의 강박증이라고 진단을 내렸음직한 행동들이었다. 하지만 별다른 치료 없이 그러한 습관들은 사라졌다.


그냥 생각해 본다. 인간들은 약하고, 조금씩 불안하고 그것이 신체증상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나이와 상관 없다. 하지만 작은 관심과 사랑만 주어진다면 그것은 저절로 치유된다. 너무 법썩을 떨면 불안이 불안을 불러내면서 더 불안해질 지도 모른다. 솔이가 몇 번씩 나를 찾아와 똑같은 질문을 해도 솔이의 손을 꼭 잡고 침대까지 데려다주고 볼에 뽀뽀를 하고 사랑해, 라고 반복적으로 말하는 이유이다.


전문가가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인 셈이다.


p.s 솔아 크거든 '불안'에 관한 참 앙증맞고 가슴아픈 그리고 따뜻하고 희망적인 영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꼭 보기 바란다.


인간은 불안하지만 탬버린을 흔들 수는 있다. 조금 불편하지만 인간이 지닌 근원적인 불안에 대응하는 한 방법일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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