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 30일 - 방콕에서
방콕에서의 둘째 날, 우리는 왕궁과 새벽 사원 등을 둘러 보았다.
캄보디아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이곳의 왕궁과 사원들도 거대하고 화려했다.
그들은 왜 부처를 금으로 만들고 싶어 했을까.
그들은 왜 사원을 크게 짓고 싶어했을까.
나는 우리나라에 그렇게 화려하고 거대한 종교적 구조물이 없는 것을 참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근래 들어 종종 그런 구조물들이 우리나라에서도 시도되고 있긴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신앙이 생활을 짓눌러서는 안 된다는 신앙에 철저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종교의 균형감을 갖게 되었던 게 아닐까.
우리나라에 그런 종교적 구조물이 없는 것이 감사했다.
그러한 종교적 구조물은 결국 민중들의 피와 땀을 희생으로 삼았을 것임에 분명하기 때문.
새벽사원에서는 좀 특이한 광경을 목격했다.
한 스님이 핸드폰을 받으면서 빗자루 같은 것에 물을 묻혀 신도에게 뿌리는 장면이었다.
신도를 축복하는 장면이란다.
태국에서는 스님들이 담배도 피운다. 이를 문화적 상대성에 의해 이해해야 한다는 책자를 본 적이 있었는데, 아무리 그렇더라도 핸드폰을 받으면서 신도를 축복하는 장면은 박제된 종교의 상업주의를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새벽 사원의 벽에도 걸터앉지 못하게 하면서 정작 인간에게는 충실하지 못하는 종교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종교란 말인가.
방콕은 강을 중심으로 보트문화가 많이 발달됐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의 서울도 조금만 연구를 한다면 보트를 버스처럼 운용해 교통난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밖의 태국 도심지는 우리나라와 비슷해 별로 특이한 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전반적으로 여행객들에게는 바가지를 씌우거나 자국인들과 다르게 대우하려는 인상을 받았다.
오후에 잠시 무에타이 경기를 관람할 예정이었으나, 이 역시 관광객들을 겨냥하여 가격이 너무 올라 포기해 버렸다.
게이(gay) 혹은 성전환자들이 꾸미는 칼립소 쇼는 예상보다 훌륭했다.
사랑에 실패하여 자살에 이른다는 섬뜩한 첫 드라마를 시작으로,
각 나라들의 춤과 노래 등을 모방하여 꾸미는 쇼는
빠른 전개와 다양한 연출로 여행에 지친 관객들의 심신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쇼를 보는 한 시간동안, 나는 연기자들의 삶을 생각했다.
노래에 열심일수록, 춤에 열정적일수록
한편으로 자꾸 흥겨워지고 다른 한편으로 자꾸 슬퍼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동성에게서 이성의 끌림이 생겨난다는 것, 마음의 병적 탐닉이라면 모를까,그것이 본능의 요구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2002년 12월 31일 - 코끼리를 타면서
칸차나부리에서 간단하게 트랙킹을 하고 연합군 포로 수용소와 콰이강의 다리를 지났다.
목재로 겨우 버티고 있는 절벽의 철로를 기차를 타고 지났다.
사람들은 이를 죽음의 철도라 불렀다.
정글 코끼리 투어를 하러 가는 길은 멀었다.
거의 미얀마 국경지역에까지 갔다.
사람들이 코끼리를 타고 환하게 웃으며 찍는 사진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그저 가볍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그리 간단한 상황이 아니었다.
등치가 크기 때문에 사람들 한 둘쯤 태우는 것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보통 4명 정도를 태우고 걸어가는 코끼리는 무척 힘들어했다.
한 눈에도 발걸음은 무거워 보였고 동작은 굼떴다.
코끼리의 발에는 굵은 착고가 채워져 있었고,
코끼리를 운전하는 사람들은 뾰족한 쇠꼬챙이같은 것으로 방향과 속도를 결정했다.
이곳에서도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코끼리를 도구로 돈을 버는 행위는 썩 유쾌하지 못했다.
코끼리의 임무는 그것이 아니다.
코끼리들은 저 깊은 정글에서 자연과 더불어,
온 몸이 요구하는 자연의 생체리듬에 맞게 살아야 할 것을.
고작 인간들을 태우고 한없이 지친 동작으로 정해진 코스를 걷는 일은
그 커다란 코끼리를 한없이 왜소한 동물로 만들어 버리고 마는 듯 했다.
그 코끼리를 운전하는 아저씨들과 아이들도 한없이 무료하고 피곤한 표정들이었다.
© razkoko3, 출처 Pixabay
에필로그
이번 여행을 다니면서 아쉬웠던 점 중에 하나는
가는 곳마다 일행들 중 일부가 우월감과 오만함을 드러내며 현지 사람들에 대한 존중심을 잃었다는 것이다.
식당에 가서도 손님으로서의 거드름만을 생각했을 뿐,
음식을 만들고 제공하는 이의 즐거움을 존중해 주지 않았다.
경제 후진국이기 때문에 당연히 뒤따를 수밖에 없는 더러움과 불편함,
때로는 그 나라의 독특한 국민성이나 문화차이에 대해서마저도 인정하지 않고 훈계하려 들었다.
예전에 서양이 우리에게 그랬듯,
단지 경제적으로 뒤떨어졌다는 이유 때문에
그 나라들에 대해 권력을 휘두르는 심리적 제국주의자나 되어있는 것은 아닌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여행에 대한 특별한 정의를 갖고 있지는 못하지만,
나는 여행, 특히 외국여행의 의미를 인간 삶의 확인에 두고 있다.
그것은 인류 전체가 삶의 공평성이나 인간의 동등성을 누릴 권리가 있으며,
그것이 인종이나 문화의 차이, 경제력, 국력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된다는 절대 명제에 대한 확인을 의미한다.
어느 곳을 여행하든, 그곳에도 인간이 살고 있으며
그들도 보편 인간이 가져야 할 존엄함과 아름다움을 갖는다는 것을 여행을 통해 인정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편향되거나 왜곡된 폐쇄성이 남아 있다면
그것의 일치를 위해 우리의 지식과 의지가 그 평등성을 향해 전진해 나가도록 장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때로 가난한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이 인간 보편의 존엄성에 미치지 못한다면,
그 해결의 출발점을 삼는 것이 바로 여행의 한 좌표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 doran_erickson, 출처 Unsplash
늘 여행을 그리워하면서도 쉽게 떠나지 못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외국 여행에 대한 두려움을 많이 떨쳐 버릴 수 있었다.
함께 여행했던 이들에게 감사한다.
여행을 다녀온 지 두 달이 지나서야
그나마 이 투박하고 거친 기행문이나마 올릴 수 있었던 것은,
나에 대한 약속 때문이었다.
크고 멋진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나는 수많은 것들을 버렸다.
별 것 아닌 여행,
별 볼 일 없는 기행문이나마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버리는 것보다 차라리 낫다는 것을
꽤 나이가 들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잘은 모르지만
베트남에서, 캄보디아로, 캄보디아에서 태국으로
버스와 보트를 이용하는 이 여행 코스는 비용과 시간등을 고려했을 때 괜찮은 코스라고 생각한다.
혹시 인도차이나를 여행할 계획이 있는 사람은 연락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