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차이나3

by 모래바다

2002년 12월 26일 - 앙코르 유적지를 향해

우리는 또 아침부터 서둘렀다.
시엠립으로 가는 날이었다.
시엠립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앙코르 유적지’가 있는 곳이었다.
우리 나라의 읍 정도에 해당하는 조그만 도시.

우리는 스피드 보트를 탔다.
우리는 또 메콩강을 타고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것이었다.
앙코르로 가는 길이어서일까.
배는 낡긴 했지만 제법 컸다.
족히 기 백명은 탔음직했다.

선착장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벌써 배 지붕에까지 가득 차 있었다.
배 안은 비좁았고 의자도 딱딱해 불편했다.

가도가도 메콩강은 여전히 끝이 없었다.
강은 그 폭의 굵기를 완만하게 그려내며 이어졌다.
그저 새 몇 마리가 생명체의 전부인 듯 한적한 곳도 있었고,
도대체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깊은 강가에서

드문드문 고기잡이를 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얼마나 달렸을까.

마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듯, 좌우사방 오로지 황톳빛 물만 보이는 지점에 이르렀는데

그곳이 바로 톤레삽 호수였나보다.
좌우사방 둘러봐도 우리가 타고 있는 배 이외의 사물은 눈에 띄지 않았다.
메콩강이 넘치지 않는 것은 톤레삽 호수 때문이라더니.
바다도 아닌 강이 이렇게 넓을 수 있다니, 도대체 바다와 강의 차이점은 무엇이란 말인가.

거대한 호수를 보니 경외감마저 들었다.

그랬다.
메콩강 물줄기들의 아웅다웅하는 다툼은

이 호수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화해와 용서로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 어디선가 우리의 다툼을 조절하는 거대한 화존(和存)의 댐이 존재했던 것이다.

새벽녘에 출발한 보트는 정오를 넘어서야 시엠립에 도착했다.
톤레삽 선착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숙박지의 주인들은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손에손에 안내 표지판을 치켜들고 일제히 배 가까이 접근해 왔다.
알전구로 몰려드는 나방들처럼 그들은 배 가까이로 다가왔다.
어쨌든 이곳은 세계적인 유적지였던 것이다.

저녁에 압살라 댄싱 디너쇼를 관람했는데, 별 동작도 아름다움도 없는 압살라춤을 보니 우리 나라 춤의 위대함이 더욱 실감났다.


2002년 12월 27, 28일 - 앙코르에서의 상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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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luda,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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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co, 출처 Pixabay


앙코르 유적지를 돌아보았다.
앙코르는 산스크리트어로 도읍이라는 뜻.

9세기 초부터 15세기까지 약 600여년 동안 융성했던 왕국이었다.
주변의 태국이나 미얀마, 말레이시아, 베트남으로부터 조공을 받을 정도로.

하지만 주변국들과의 전쟁이 장기화되고 내부적으로 더 쇠약해져 끝내는 멸망을 길을 걷게 된다.
세계의 강대국들이 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았던가.

우리는 보통 앙코르 와트라고 말하지만

사실 앙코르 와트는 수많은 앙코르 유적지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유적들은 그 이름을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
한마디로 앙코르 유적은 거대한 조각 유적이었다.
거대한 돌들을 쌓아올리고 거기에 섬세한 조각을 해 넣음으로써

오늘날처럼 빠른 템포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좀처럼 납득되지 않는 감동을 안기는 것이다.

앙코르에서 누구나 처음으로 갖게 되는 의문은

‘그들은 왜 이렇게 많은 돌을 쌓아 올리고 조각을 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것은 왕국의 힘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또 그 거대한 왕국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인간들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거대함과 예술성을 나타내는 곳은

대다수 분명 이러한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그곳엔 곧 인간의 세계를 신의 세계로 만들고 싶은 인간들의 오만이 숨겨져 있었을 것이다.
인간의 나약함을 모르는 이들은 자신들의 힘이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이러한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정말 몰랐을까.
비교적 단단한 육질을 가진 돌도 언젠가는 세월의 비바람에 씻겨 녹아 없어진다는 것을.

몰랐을 리가 없다.
그들은 혹 눈앞의 영광을 조작해내기 위해 일부러 모르는 척 했던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그것은 왕국의 자기만족 같은 게 아니었을까.

앙코르는 인간이 지니는 종교성의 증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인간만의 성정과 욕심으로 이런 거대한 일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신을 잃어버린 인간들의 영원에의 집착.
가짜 신에 대한 갈증이 왕들의 마음을 부추기면,

백성들은 그 부추김을 영원에 대한 그리움에 섞어 동참했을 것이다.

누군가 말했다.
왕들은 좋았겠지만 석수장이들이 정을 두드리며 얼마나 불평했겠느냐고.
하지만 석수장이들은 절대 불평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신에게 한 걸음씩 다가간다는 마음에 행복했을 것이다.
어차피 석수장이들은 피지배 계층이었을 것이고,

그들에겐 현실보다 종교의 세계가 훨씬 편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증유의 조각 유적 앞에서 한 왜소한 인간의 상념은 끝이 없었다.





"많은 앙코르 유적들은 무너졌거나 무너지기 시작한 것들이 많았다.
영원에의 사모가 컸던 것만큼, 인간의 힘에 대한 믿음이 거대했던 만큼,
인간의 절망도 큰 법."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거대한 열대 수목들이 앙코르의 유적들을 비집고 나와 제 목숨을 열렬하게 이어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앙코르는 무너졌어도 나무는 살아남았다.

돌로 만든 인간의 허약한 꿈.
단단한 돌은 부드러운 나무에게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거대한 인공조각품은 보잘 것 없는 나무에 힘없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나무가 돌 사원을 무너뜨린 장면을 보니

지금 앙코르는 생장과 쇠멸이 동시에 진행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대한 왕국은 도시의 배경으로 나무를 선택했지만

아, 결국 나무는 도시를 삼켰던 것이다.

이를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면 그들은 나무를 도시의 배경으로 삼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세대, 곧 눈 앞에 벌어지는 일에만 너무 마음을 빼앗겼을 것이다.

인간이 자기가 살아있는 시대 이후를 생각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다시 한번 인간의 허황된 꿈이 크면 클수록 후세에게 좋은 교훈이 된다는 생각을 해본다.
절망을 가르치는 교훈.
그런 허황된 꿈을 꾸어서는 안 된다는.





앙코르와 만리장성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리장성은 타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한 실용적인 효용성이 있었던 반면,
앙코르 유적은 도시 전체를 아름다운 조각상으로 꾸미려고 했다는 점에서

효용성보다는 예술성이 돋보였다.

앙코르 왕국을 유지 발전시켰던 이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 엄청난 에너지를 예술성, 혹은 예술성을 이용한 주술같은 것에 이용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앙코르인들은 훨씬 자신만만하고 우아하게 자신들의 왕국을 존중했다고 볼 수도 있으리라.

앙코르에서 가장 마음 아팠던 부분은 크메르 루즈가 복원지도를 없애 공사가 중단된 곳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공산 혁명을 주창하는 그들이 이런 앙코르 유적을 고운 눈으로 보았을 리 없다.
이념적 평등성의 눈으로 볼 때 절대 왕권 시대의 유물인 앙코르가 좋게 보일 리가 있었겠는가.

그들 또한 인간의 삶을 멀리 내다볼 줄 몰랐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에 대한 대대적인 파괴만이 현재의 이념성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크메르루즈 또한 마음이 조급했던 것이다.
설사 그것이 악이라 한들, 그 악은 결국 오늘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약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앙코르에는 미완성된 사원도 있었는데,

그것은 결국 왕국의 멸망이 바로 코 앞에 다가오고 있는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거나 혹은 인정하지 못하고 오기를 부렸던 인간들의 허망함을 보여준다.





이튿날이면 마지막 기착지인 태국으로 떠난다.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시엠립에서 발견한 평양 냉면집은 우리의 마음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가라오케까지 갖춘 평양 냉면집에서 일행은 밤이 깊도록 개성 인삼주를 마셨다.
평양의 어느 전문학교에서 서비스 교육을 받았다는 평양 처자들은

민족적 동질감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그 순수하고도 앳된 얼굴로 일행들을 감동시켰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쓰러지도록 마셔댔다.

어머니가 생각났다.
어머니의 고향 황해도 송화.
나는 일부러 주방으로 들어가 아줌마들에게 황해도 소식을 물었다.
한 아줌마는 ‘송화군’이 ‘과일군’으로 바뀌었다는 뜻밖의 소식을 전해 주었다.
과일이 너무 많아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이것이 공식적으로 변경되었다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그냥 그렇게 부른다는 뜻인지 구별이 잘 안 된다).


나는 가슴이 탔다.
어머니는 짬만 나면 친정집의 복숭아밭과 사과밭 이야기를 늘어놓곤 했던 것이다.

이튿날, 시엠립을 떠나는 버스가 마침 그 냉면집 앞을 지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앞에서 쉬고 있던 평양 처자들이 버스를 좇아오며 손을 마구 흔들어대
마지막까지 일행들의 가슴을 서글프게 했다.



2002년 12월 29일 - 방콕에서의 첫 밤


시엠립을 출발 태국과의 국경도시인 포이펫으로 떠났다.
이 길이 포장이 안 돼 아주 곤혹스럽다는 이야기를 여러 사람들에게 들은 터라

자못 걱정이 되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했다.
때에 따라 다르지만 거의 예닐곱 시간쯤 걸린다는 안내도 받은 터였다.
과연 그 길은 울퉁불퉁하기가 마치 자동차 랠리 코스를 가는 느낌.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치는 사람도 나타나고, 멀미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거의 수행의 과정.

그러나 다행히도 생각했던 만큼 그 길은 고생스럽지 않았다.
우기가 끝나고 건기를 맞아 대대적인 도로 정비를 했다는 것이었다.
우기 때는 12시간이 걸리기도 한다고 했다.

우기 때는 다리가 물에 휩쓸려 가면 도랑을 만날 때마다 나무로 임시 다리를 가설하고 건너간다는데.
우리는 경험자들의 고생담을 즐겁게 들으며 네 시간여 만에 국경 도시인 포이펫에 도착할 수 있었다.
출국과 입국 수속을 밟고 태국땅에 들어간 후 이번에는 봉고차를 타고 방콕으로 향했다.

봉고차는 오후 내내 잘 정돈된 태국의 고속도로를 달렸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보았던 튀김들이 떠오른다.
바퀴벌레, 메뚜기, 개구리 등 이름도 알 수 없는 곤충들을 까맣게 튀겨놓아 조금 재미있었는데.

방콕의 여행자 거리인 카오산에 도착한 것은 이미 어둠이 깃들고 있을 무렵이었다.

전 세계의 여행객들이 모인다는 카오산 거리는 인종 전시장이었다.
왠지 그곳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괜찮을 것 같은, 혹은 무슨 일이든 허용될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하루종일 자동차에 시달린 몸을 풀어주자며 일행 전체가 마사지 하우스로 향했다.

마사지.
베트남에서도 태국에서도 마사지는 아주 일반화되어 있었다.
마사지 하면 왠지 음습한 어둠을 떠올리는 우리나라와 달랐다.

마사지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을 불식시키려는 듯 대부분의 마사지 하우스는 아주 환한 형광등을 켜고 손님들을 받았다.
실제로 마사지하는 장면들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우리는 3층으로 안내됐다.
우리가 갔던 곳은 거의 기업형이었다.
3층 건물은 온통 마사지를 받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줌마로 보이는 사람들과 사내들이 들어왔는데, 그들은 아주 정성스럽게 온 몸을 마사지했다.

마사지를 받는 동안 내내 생각했다.

다시는 마사지를 받지 않으리라.

단정하게 무릎 꿇고 앉아 무슨 도를 닦듯이 정성을 다해 마사지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육체가 과연 타인의 육체로부터 이런 공손한 대접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가 생각을 했다.
자격이 있다면 그것은 순전히 돈 때문이었다.
돈이 아닌 순수한 존중심이나 사랑 때문이라면 몰라도

돈을 매개로 직접적인 육체의 헌신성을 요구하는 일이 왠지 마뜩찮았다.

어차피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도구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돈이 모든 일을 가능케 하는 신은 아니다.
내 육체에 대한 충성심.
그들이 마사지를 하는 동안 나는 마치 노예를 부리는 것 같아 미안했고,

이는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실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어봐도,

마사지가 그 날의 피로를 회복시킨다는 사실에 대해서 동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면 더더구나 이런 관계는 좋지 않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육체를 이용한 돈벌이를 창조해낸 것이고,

우리는 다소의 돈으로 내 육체에 대한 충성심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나 아니었을까.
더군다나 이런 류의 노동이 산업화된다는 것은 어딘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뭐, 그런 생각들을 했다.

돈을 수단으로 인간이 인간에게 육체적인 충성심을 요구하는 일은,

노동을 매개로 만나 월급을 주고받는 관계와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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