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에 다녀와2

북한땅을 밟다

by 모래바다


북한땅을 밟다


첫 하선

도착한 뒤 잠시 주의사항을 들은 후, 우리는 곧바로 하선했다.
여행은 길지 않았다.
하선하자마자 초소를 지키는 북한 사람을 만났다.
내 생전 처음으로 직접 목격하는 북한 사람.

키가 작고 가무잡잡한 피부의 젊은 사내는 검정 장화를 신고 있었다.
나는 떨지 않고 긴장하지 않으리라 수없이 다짐했다.
다행히 일행이 많고 또 매스컴 등을 통해 접한 경험들이 있어서인지 특별하게 긴장되지는 않았지만

그 오랜 세월의 분단교육 탓인지, 자꾸만 그들의 모습을 남측 사람들과 견주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 이후로 북한에서 만난 사내들의 인상은 대부분 비슷했다.
작은 키에 가무잡잡한 피부 그리고 흰 셔츠에 검정 바지.
옷은 후줄근하고 잘 몸에 맞지 않아 낯설음을 주었다.
머리도 부스스하고 표정도 굳어 있어 무뚝뚝한 인상이었는데,

그러한 겉모습은 적어도 그들의 경제생활이 원만치 않음을 보여주었다.
왼쪽 가슴에 꽂힌 김일성 뱃지조차도 그 외모로 인해 누추함을 면치 못했다.

입국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근 열흘은 빨지 않았을 것 같은 흰 셔츠에 허리가 맞지 않는 옷을 혁대로 질끈 동여맨 사내들이

우리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서 서류를 심사했다.

입국절차(북한 입국은 완전히 외국과 똑같은 절차를 거친다 한다)를 담당하는 사람들조차

저 정도라면 이른바 그들의 '인민'은 얼마나 더 할지 처음부터 마음이 불편했다.

그들의 표정은 너무 딱딱했고 태도는 무덤덤했다.
입국절차를 밟는 일행들이 관광증을 내밀며 인사를 했지만 잘 대꾸를 안했다.
그런 상황이 답답했는지 바로 앞에 가던 선생님이 유별나게 큰 목소리로 인사를 했는데도

입국 심사를 하던 북한 사내는 아무 대꾸를 안했다.

나는 내심 걱정이었다.
저렇게 크게 인사를 건냈는데도 대꾸를 안 한다면,

뭔가 저들이 우리의 여행에 관해 혹은 남측 사람들에 대해 심각한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 담당 청년은 절차를 다 마치고서야 관광증을 돌려주면서 비교적 반갑게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건냈다.
씨익, 하는 미소와 함께.

어쩌면 그들의 표정이 겉으로만 그런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선입견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들의 무뚝뚝함이 경제적 열세에서 오는 열등감이 아닐까 혼자 생각해 보았다.

아니면 남한 여행객들의 천박한 졸부행세에 견딜 수 없어 굳어지게 된 표정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기도 하였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기계처럼 똑같이 딱딱한 표정을 짓고 있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






북한이었다


버스는 온정각을 향했다.
온정각은 <현대>에서 금강산 관광을 위해 새롭게 조성한 전초기지같은 곳으로


그곳 지명인 온정리를 따른 것.

예로부터 좋은 온천이 많아 붙여진 이름 온정리.
그곳에서 피부병이 낳았다는 수양대군, 세조에 얽힌 이야기를 가이드가 들려주었다.
온정리는 금강산 여행의 입구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배에서 온정각까지 15분여 가는 동안 내내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하지만 철조망이 우리의 시야마저 가릴 수는 없었다.
나는 버스의 전후좌우를 살피느라 재빠르게 고개를 움직였다.

이곳이 남측의 산하와 크게 다르지 않을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이 특별한 장면을 그냥 밋밋하게 지나칠 수는 없었다.
이 산하를 꿈속에 그리다가 숨을 거둔 사람이 얼마던가.
아니 꿈조차 꾸지 못하고 저승길로 떠난 사람은 또 얼마던가.

마침 온정각 가는 길 곁으로, 큰 도로와 기찻길이 평행선을 이루며 달리고 있었다.
도로가 있다는 사실조차도 신기했다.
거기에서 비로소 나는 북한 주민들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대부분 여인들이었는데 머리와 등에 짐을 지고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가끔 남한의 재래시장에서 볼 수 있는 손수레같은 것을 끌고 가는 사람도 보였고

자전거를 타는 이들도 드물게 보였다.
동네마다 배정된 공동 소유인지, 자전거에는 번호가 크게 새겨져 있었다.

기회가 많지는 않았지만 북측의 길을 훔쳐 보면서 느낀 것은

그들 중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천천히 걷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모두가 상체를 약간 앞으로 내민 채 어디론가 바쁘게 걸어갔다.
더운 날씨 탓이었는지 가끔 그늘에서 쉬는 사람들도 목격됐다.

남한에서라면 그저 평범한 시골풍경에 불과했겠지만, 나의 눈엔 모든 것이 새로웠다.
북한에 뿔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평범한 확인.
어쩌면 나는 그 즐거움을 확인하기 위해 그렇게 두리번거렸는지도 모른다.

온정각까지 가는 동안 몇 백미터 간격으로 북한군 병사들이 정복차림으로 서 있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그들은 부동자세로 관광버스를 쳐다 보았다.
그들은 언뜻 보기에도 아직 앳된 표정이 가시지 않은 어린 소년 병사였다.

비맞고 있는 것은 소년 병사만이 아니었다.
종종 비스듬히 누운 나무 전봇대들도 비에 맞고 있었다.
가끔 담배 피우는 초병도 볼 수 있었다.
철로 위에서 염소가 서성거리고 있었고 밭에서는 누런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비가 내려서인지 밭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북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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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가는 길



이튿날.

우리는 전날과 똑같은 길을 따라 온정각으로 향했다.
어제 잠깐 보았던 길인데도 훨씬 친숙하게 다가왔다.
너무 익숙한 적응에 나도 놀랐다.

여전히 소년병사들은 우비를 입은 채 부동자세로 우리를 맞았고,

그 어린 병사들의 긴장된 표정이 오래도록 마음 아프게 기억에 남았다.

만물상 가는 길.

우리는 우비와 우산까지 준비했지만 다행히 비가 내리지는 않았다.

우리는 버스에 올랐다.

만물상 등산로 입구까지 가기 위해 우리는 구불구불한 길을 올랐다.
비로봉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총 일백 여섯 개의 굽이를 돌아야 한단다.
일본이 이 길을 내기 위해 10년을 투자했어도 완공하지 못했던 길을,

북한이 한국전쟁 때 무기 수송을 위해 두달 보름만에 완성했다는 가이드의 말은 많은 생각을 불러 일으켰다.

우리 민족의 강인한 정신력과 함께 전쟁의 치열함까지 함께 보여주는 길.
자부심과 아픔을 함께 보여주는 길이었다.

버스는 한하계(寒霞溪)를 곁에 두고 계속 구불구불 숨차게 올라갔다.
한하계는 물이 너무 차고 안개가 자주 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같았다.
계곡 주변으로 적송(赤松)들이 계절폭포들과 어우러져 여백의 아름다움을 빚어냈다.
적송은 아름다운 건축물에 많이 사용되는 나무여서 미인송이라고도 불리는 나무.

출발할 땐 날이 맑았지만, 굽이를 돌 때마다 안개들의 부침이 반복돼 일행의 걱정을 부추겼다.
금강산에 갔다가 안개만 보고 돌아왔다는 누군가의 말에 모두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저 마음 속으로 안개와 구름이 오늘은 아래로 아래로 침전되어

기암괴석의 봉우리들이 마음껏 온 자태를 뽐내기를 기도할 뿐.
30일중에 40일동안 비가 내린다는 금강산이 아니던가.

몇 굽이나 돌았을까.
버스는 우리를 산중턱에 내려주었다.
우리는 드디어 그 금강산의 초입에 와 있는 것이다.
고려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기 전에 한번 와보고 싶어한다는 금강산.
이제야 비로소 금강산에 오른다는 흥분이 밀려왔다.

사실 금강산의 자연풍광에 대한 기대는 그리 크지 않았다.
자연이란 그냥 자연일 뿐이었다.
자연의 아름다움이란 자연의 아름다움일 뿐이었다.

나는 사실 사람이 보고 싶었다.
북한 사람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평범한 북한 사람들의 생활이 보고 싶었다.
그들이 나와 비슷한, 우리와 비슷한 평범한 사람임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한번도 직접 금강산을 본 적은 없었지만,

일찍이 '금강산은 보고 느끼기나 할 것이요. 형언하거나 본떠낼 것은 못됩니다.'라던 육당 최남선의 말을 철저하게 믿었다.

처음부터 금강산의 아름다움에 대해 어떤 기대를 한다거나, 그 감탄을 타인에게 전하지 못할 바에야

아예 맞부닥뜨리기 전까지는 좀 차분하자고 스스로 다짐하였던 것이다.

금강산의 아름다운 협곡을 날렵하게 날뛰는 기기묘묘한 암석들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수사로 살려놓았던가.
그 아름다운 표현력을 능가할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금강산은 그냥 내 눈으로만 담아가겠다고 결심을 하니,

그 풍광에 대한 긴장감도 좀 덜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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