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에 다녀와3

by 모래바다


아 미치겠구나!


수많은 형상을 보여주는 암석을 지니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만물상(萬物相).

가이드는 기다렸다는 듯 암석의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그 모양을 설명하기에 바빴다.
채 10분도 오르지 않아 수많은 형상들이 등장했다.

세 신선에 얽인 전설을 담고 있는 삼선암을 시작으로 물개, 거북이, 토끼, 원앙, 풍산개, 메뚜기.....

동물들과 관련된 이런 풍경은 절부암(折斧巖)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누군가 도끼질을 해댄 듯 뾰족뾰족한 바위들이 하늘 높이 치솟아 있었다.
오락가락하던 산 안개들도 그 기묘한 풍경만은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건 이제 시작이었다.
사실은 만물상 전체가 도끼자국이요, 휘갈겨 쓴 붓글씨요, 조각이었다.
그 바위들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은 그 자체가 구속이었다.

목적지인 천선대와 망양대는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비가 내릴 것 같아 비옷에 우산까지 준비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뜻밖에도 햇빛이 났다.

중간중간 서 있던 북한측의 한 환경 관리원은 '오늘 오신 분들은 착한 분들인 모양입니다.
이렇게 햇빛이 나는 걸 보니 말입니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금강산의 봉우리들은 햇빛 가운데서도 걸핏하면 안개와 구름을 호령해, 수줍은 색시처럼 자태를 감추었다.
그럴 때면 누군가 백발가를 불러 더위에 지친 일행들을 위로해 주었다.
그럴 때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다람쥐도 우리 곁을 맴돌았다.
다람쥐가 몇 마리씩 도망가지 않고 우리들 주변을 어슬렁거려

일행중 누군가 초코파이를 주기라도 하면 낼름낼름 잘도 받아 먹었다. 남한 여행객과 북한 다람쥐.
참 어색하면서도 황홀한 구도라고 혼자 생각하며 웃었다.

너무 깨끗한 자연환경을 빗대 어떤 이는 '금강산 물은 간이 안 맞아서 목먹겠어'라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금강산에서는 함부로 볼 일을 보는 사람이 없다는 설명에 그런 대꾸를 한 것이었다.

습기가 차 올라서인지 일행들은 더위에 지쳤다.
한참을 올라가는데 한 선생님이 그늘에 앉아 있었다.
내가 가까이 가자 그이는 두꺼운 비옷을 벗어 젖히며 말했다.

"햇볕 정책이 별게 아니네. 이게 햇빛정책이지."

그이도 나도 하하 웃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이렇게 금강산 여행까지 하게 된 데에는

여러 사람들의 땀과 수고가 있었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햇볕 정책.

누가 뭐래도 그 햇빛정책이라는 것이 남북한을 가깝게 하는데 일정을 역할을 했으리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땀흘려 올라간 망양대는 천하영봉임에 분명했다.
속인이 밟은 신선의 땅.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구름과 안개들 사이로 드러난 금강 준봉들의 모습에 우리 모두는 어쩔 줄을 몰랐다.
그것은 천선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 미치겠구나. 이런 절경을 보고도 실성하지 않는 놈이 있다면,

그 놈이 실성한 놈이다.'라고 말했다는 고은 시인의 탄성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거칠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유약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웅혼한 기상과 미려한 산악미를 보여주는 비경의 극치.

우리 모두 사진찍기에 바빴다.
사진으로 그 풍경을 담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사진을 찍지 않고 눈으로만 담기에는 또한 미련이 남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도 전에 구름이 봉우리들을 점령해버리는 일이 잦아,

등산객들의 아쉬움의 탄성이 감탄의 탄성과 함께 금강산에 메아리쳤다.

너무 자주 구름과 안개가 봉우리들을 가려,

나중에는 그 구름이 산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산하는 길에는 북측에서 나온 환경 관리원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천천히 내려왔다.



환경 관리원이라고 나온 이들은 남측의 관광객들이 그렇듯이, 남녘의 고유 유적들에 관심이 많았다. 남원에서 온 선생님을 보고는 이도령와 춘향이의 고장이라는 점에 무척 신기해하는 눈치였다. 그 신기함이 넘쳤는지 그 선생님에게 변사또를 닮았다며 농담을 걸기도 했다. 한 여성 관리원은 갑오동학혁명 기념이라고 적힌 내 조끼를 보며 전봉준 장군에 대해 물어 보기도 했다.


나는 학교에서 근무하는 만큼 북한의 교육이나 학교 생활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물었다. 종종 남측 선생님들의 경제 자랑과 자유연애, 신앙의 자유등 민감한 문제에 대한 질문 때문에 다소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활발하게 동족끼리의 궁금증들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시간에 쫓기는 짧은 시간을 통해 나는 요즘 북한에서도 정보화사회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지식이 힘이다'라는 구호가 유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북한에서도 대학 진학에 대한 욕망이 충만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국에 대한 그들의 생각과 심지어는 대통령 선거에 대한 그들의 견해까지도 엿볼 수 있었다. 대화는 하산을 끝마친 뒤에도 계속돼, 열 댓명의 북한 환경 관리원들과 선생님들이 곳곳에서 뜨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과의 안타까운 대화를 통해 한가지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남과 북 사이에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우선 우리는 모두 훈민정음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평양 교예단.


서커스가 아니라며 굳이 교예단이라는 이름을 고집한다는 북한. 한국의 정서와 기상을 가장 아름답게 구성했다는 북한의 교예단. 나는 마음 속으로 그것이 북한의 오만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교예단의 공연을 보면서 그런 나의 생각은 점점 바뀌기 시작했다.


세계 서커스 대회에서 대상과 금상을 수 차례 수상했다는 장대 묘기와 줄넘기 묘기, 공중 4회전 돌기 묘기, 접시 묘기등을 보면서 그것이 단순한 묘기가 아니라 그들의 주장대로 무슨 예술의 경지에 다달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의 동작은 단순히 힘차고 빠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단순히 테크닉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무슨 전통무용을 연상시키는 느린 동작과 우아한 몸짓으로 좌중을 압도했고, 때로는 슬픈 시를 연상시키는 애조 띤 음악으로 우리의 심금을 울렸다. 오히려 교예단의 악단은 전체적으로 빠른 템포의 음악보다는 슬픈 음악을 많이 연주해 교예와 무대공연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박수를 쳐보기는 처음이었다.


나중에 듣고 보니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교예를 보며 두 가지를 생각했다.



그 하나는 인체의 아름다움과 무한한 재주였고, 다른 하나는 그 인체의 아름다움과 재주를 우리와 같은 민족인 북측 사람들이 보여주었다는 점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적어도 공연장에서 남북은 통일이 이루어진 상태였다.


공연이 끝나자 우리의 박수는 길게 이어졌고 음악을 담당했던 오케스트라도 오랫동안 떠나는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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