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6
운동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현관에 솔이 크록스가 그대로 있다.
피아노 학원에 가야할 시간인데.
방에 가보니 침대에서 휴대폰을 보고 있다.
- 어디 아프냐?
- 응, 열이 조금 나네...
- 몇 도?
- 37.2도? 3도?
- 그래서 학원에 안갔어?
- 응, 몸도 으스스하고...
순간 슬쩍 짜증이 난다.
그 정도 열로 학원에 가지 않다니.
아무 말 하지 않고 내 방으로 왔다.
솔이는 입맛이 없다며 저년밥도 안 먹겠단다.
제 엄마가 사온 빵조차도 거부한다.
평소와 조금 다른 아빠가 불편했는지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다.
나도 일부러 아무 말 안했다.
제가 먼저 가고 싶다고 해서 등록한 학원이었다.
그 정도 열로 학원에도 가지 않고 휴대폰만 보고 있는 모습을 보니 살짝 짜증이 난 것이다.
새벽 1시 10분.
솔이가 부스스 일어나 체온을 잰다.
- 아, 열이 38.7도네.
- 응?
나는 마음이 분주해진다. 코로나 이후 이렇게 고열이 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맥시부펜을 먹이고 혹시 몰라 타이레놀도 테이블 위에 준비해놓았다.
한 시간 후에 열을 다시 측정하기로 하고 서재에 앉아 기다리는데 마음이 덮다.
진짜로 아픈 거였는데, 솔이의 판단을 믿지 못한 것이다.
평소 거짓말을 하는 아이도 아니고, 피아노 학원도 스스로 잘 가는 아이였는데
주관적인 판단으로 짜증부린 것이 미안하다.
많이 조심한다고 하지만 나이 들어서도 좀처럼 변치 않는 나쁜 습성.
타인을 정죄하려는 유혹이다.
나는 옳고 나 이외의 인간은 정죄해야할 인간으로 여기는 마음의 습관.
정죄보다는 너그러움으로 포용하자고 늘 다짐하지만,
이런 순간 나는 전혀 그렇지 못한 인간이다.
더욱이 반론의 능력도 별로 없고, 자기 상황을 논리적으로 차분히 설명할 능력도 없는 초딩에게
마음의 폭력을 행사한 것 같아 미안하다.
#체온#정죄#너그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