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367

초딩6

by 모래바다

솔이가 슬그머니 다가와 뜬금없이 말한다.

- 나는 철학적인 거 싫어. 심각한 것도 싫어.

내가 대꾸했다.

- 그래. 철학적일 필요 없어. 진지하고 심각하게 살 필요 없어. 아빠도 살아보니까 재밌고 즐겁게 사는 게 좋더라구...

솔이가 다시 입을 연다.

- 어두운 것도 싫어...

- 맞아... 솔이가 어두울 필요가 뭐 있어? 아빠는 어렸을 때 할아버지, 그러니까 아빠의 아빠가 이른 나이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14년을 누워계셨어. 당연히 가난이 뒤따라왔고, 작은 욕구조차 달성되지 않았어...그래서 좀 심각하고 어두운 면이 있을 수 있을거야. 솔이는 굳이 그럴 필요 없어...럭키비키, 응, 원영적 사고...응?

둘은 웃었다.


조금 뜸을 들이던 솔이가 또 이야기한다.

- 뜻은 정확하게 모르겠는데 나는 '시니컬'이라는 말이 좋더라구...

- 맞아, 나도 어릴 때 시니컬이라는 단어 좋아했는데...

- 정말? 정말?

솔이가 웃으며 맞장구친다.

- 시니컬이 우리말로 냉소적인데...그 단어도...좋더라구...

- 맞아맞아... 냉소적이라는 말, 그 어감도 멋있지...


웃으면서 대꾸했지만 내심 놀랐다. 초등학교까지는 아니지만 나도 중학생이 될 즈음부터 시니컬(cynical) 같은 단어들이 좋았다. 'solitary'(고독한)나 'crazy'(미친) 같은 단어들도 좋았다.



이럴 때마다 신기하다. 이런 것도 유전되는 것일까.

아니면 나의 표정이나 언어나 습성같은 것들이 암암리에 솔이에게 전달되었던 것일까.

되돌아보면 나는 평생 우울감 속에서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평생 그것을 모르고 살았다. 내 허벅지의 큰 점처럼 자연스레 내 몸에 박혀 함께 자라왔던 것이다. 타인은 모르고 나조차도 모르는 어떤 내밀한 업보처럼...


나의 우울감을 타인에게서 확인하고 싶어했던 적이 있다.

교실에서 종종 아이들에게 '비오는 날이 미치도록 좋은 사람?' 하고 묻곤 했다. 주로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었는데, 30명 아이들 중 두 세명만 손을 들어 나를 실망시켰다. 나는 적어도 25명 정도는 손을 들을 거라고 예상했던 것이다. 그럴 때 타인들의 우울한 감성이 나와 똑같지 않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긴 했었다. 물론 비를 미치도록 좋아하는 것과 우울감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긴 하지만.


누구나 자기 세계를 산다. 타인들은 결코 알지 못하는. 그러므로 타인에게 지나친 이해를 기대할 필요도 없고 나 또한 타인을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을 해서는 안된다. 그래야 비로소 일말의 소통이 시작될 것 같다.





#시니컬#냉소적#타인#이해#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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