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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바다 Oct 16. 2024

어머니께 미안하다

연지동 일기6

어머니는 아흔 두살에 돌아가셨다.

마지막 3년을 요양병원에서 지냈다.

직전 몇 년은 허리가 기역자로 굽은 채 살았다.

기역자 허리로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장을 보았다.


어머니는 굽은 허리를 펼 때마다 '아이고아이고' 신음소리를 냈다.

아니 신음소리라기보다는 기합소리에 가까웠다.

운동 선수들이 순간적으로 힘을 쓸 때 내지르는 소리 말이다.


어머니는 집 근처의 작은 가정의학과에서 물리치료를 받곤 했다.

치료라기보단 굽고 아픈 허리에 대한 위안같은 것이었다.

큰 병원에 모시고 가야할 것 같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며칠 전 우연히 책갈피를 뒤지다가 구겨진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어머니가 다니던 병원의 의사가 보낸 편지였다.


강00 할머니 보호자께.

할머니께서 요통 및 신경통으로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동안 보조적 요법으로 심한 통증은 호전된 상태이나 조금씩 걷다가 쉬어야하는 현상(보통 파행이라고 합니다)은 별로 호전되지 않고 있습니다. 금일 요추 엑스레이 사진 상에는 골다공증으로 인한 뼈의 퇴행성 변화 및 골변화 소견이 보이고 있습니다.


사진상으로 할머니의 정확한 병명을 진단하기에는 어려움이 많고 제가 추측컨대 골파괴 및 변형으로 오는 척추 협착증이라는 병이 의심되고 있습니다. 특히 심한 통증과 보행장애가 없으면 상기와 같이 물리치료와 약물요법으로 보전적 치료를 하면서 지내셔도 문제가 없지만 점점 증상이 심해질 경우 엠알아이 등의 정밀 사진을 통해서 정밀진단 및 치료 방침을 결정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됩니다. 양가정의원 양00 배상.


이제야 생각난다. 어느 날 어머니가 내민 이 편지를 보고도 나는 아무런 대책을 생각지 못했다. 이렇게 아픈데도 그냥 내버려두는 나를 나무라는 지적질 같았다. 나에게도 변명은 있었다. 그당시 나는 몇 개의 보증문제로 휘청이며 내 몸조차 지탱하기 힘들었다.


어머니께 미안하다. 자식은 다 필요 없다. 아니 타인은 필요없다. 타인은 나의 통증에 반응하지 않는다. 타인들이 나의 통증에 반응하지 않을 때 나는 우울하고 외로웠지만, 나는 정작 타인의 고통에 관여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 인간들에 대한 기대를 많이 내려놓았다. 늙으면서 얻은 지혜이다.


그런데 아, 

이 의사 선생님 너무 감사하다. 아직도 이 도시 어딘가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

꼭 가서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다. 잊었더라도 상관 없다. 자신이 어떤 의사인지 꼭 알려드리고 싶다.




#의사#어머니#타인#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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