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동 일기7
종종 스트리밍으로 영화를 보다가 '멈춤' 버튼을 누를 때가 있다.
갑자기 화장실에 가거나 다른 볼 일이 있을 때다.
그러면 공교롭게도 평소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배우들의 표정들이 잡힌다.
금방까지 봤던 배우라고 보기에는 너무 다르고 일그러진 기괴한 표정.
사랑스럽던 여배우의 달콤한 표정은 구겨진 사진처럼 이지러지고
방금 전까지 근엄하던 성직자의 표정도 개그맨처럼 우스워진다.
우리의 눈이 포착하지 못했을 뿐,
우리의 표정은 수많은 다양한 표정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오히려 우리의 눈에 잡히는 표정은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의 얼굴엔 멋진 미소와 포근함과 엄숙함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일그러지고 비틀어진 표정들이 그 사이사이를 메꾸고 있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일듯 하다.
겉으로 보이는 삶의 표정이 우리 삶의 전부는 아니다.
삶의 매끄러움과 자연스러움 사이사이, 수많은 투박함과 예측 불가능한 부자연스러움이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내 표정과 삶이 일그러지고 문드러져서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는 지경에 있더라도
너무 걱정할 것 없다.
누군가 갑자기 우리네 삶의 '멈춤' 버튼을 누르고 우리를 왜곡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 기다리면 화장실에 다녀온 누군가가
우리의 기괴해진 표정과 삶을 다시 되돌려 놓을 것이다.
그러면 재밌는 영화가 다시 시작되듯,
우리의 삶도 신나게 되살아날 것이다.
#고통#인생#표정